◆…박근혜 대통령
'대통령 수사대상' 거론되자 급거 사과문 발표
"순수한 마음" 감정호소…사태 인식 '안일' 지적
진심에서 우러난, '순수한 마음'이 깃든 사과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비선실세인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자료 등을 사전에 받아보고 수정하기까지 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을 시인하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상황은 대통령 사과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야권은 일제히 박 대통령의 사과가 '얼렁뚱땅 사과'라며 "이제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게이트'가 됐다"고 맹비난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최씨의 부정비리 차원을 넘어 대통령의 공직수행까지 관여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한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지고 자신에 대한 수사까지 거론되는 등 정조준 되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문을 발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 朴 대통령 "최순실, 나를 도와준 사람" 비호 =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45분 춘추관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최씨에 대해 "아시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며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며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 있다"고 관련 사실을 시인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거듭 사과했다.
□ 대통령 기록물 유출경위 '모르쇠'…감정에만 호소 = 박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 유출 경위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순수한 마음으로" 한 행동임을 강조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게이트 사태를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게 대처하기보다 감정선만 자극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스스로 문건이 유출되고 최순실씨에 의해 수정까지 된 것을 시인하면서도 대통령으로서 어떤 책임을 지고 대책을 내놓을지에 대해 밝히지 않은 것은 스스로 무능과 무지, 무책임을 자인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험악해져가는 국민 여론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그 위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지적과 함께 더욱 거센 비판여론에 휩싸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긴급 대국민 사과 회견은 처음, 세월호 때도 14일 늦게 사과 =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위해 기자회견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기초연금 공약 후퇴와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 등에 대해서도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 등을 통해 '앉아서' 사과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도 참사 발생 14일 만에 뒤늦은 사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 당시에도 중남미 순방 기간 과로로 인한 인두염을 핑계로 '와병'임을 내세워 관련 입장을 보류했다. 4.29 재보선을 하루 앞둔 지난해 4월28일 김성우 홍보수석 대독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당시에도 친박계들이 연루된 것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이렇듯 '사과'에 인색한(?)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언론 보도 하루 만에 대통령이 사과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이며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권의 안위마저 담보할 수 없는 심각한 사태라는 점을 인식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로 군림하며 국정을 농단,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사진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 정윤회 파문 당시 "실세 아냐"…최순실이 '실제' 인정한 대통령 = 특히 2년 전 '정윤회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부정하며 "실세가 될 수 없다"고 말한 박 대통령이 최씨에 대해서는 그 실체를 인정한 것은 그 자체로 수사를 더더욱 불가피하게 만든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대통령은 개인적 관계를 이해해달라는 말만 했다"며 "대통령이 청와대라는 공적 시스템을 두고 비선실세를 통해 국정을 운영했음을 자인했다"고 지적했다.
윤 대변인은 "최순실 게이트는 얼렁뚱땅 형식적 해명과 사과, 개인적 관계에 대한 이해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며 "더불어민주당은 진심어린 대통령의 사과와 철저한 수사 의지, 최순실씨를 비롯한 책임자 전원에 대한 즉각적이고 신속한 신병 확보와 수사, 그리고 관련자 전원에 대한 책임 추궁,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아무런 공적 지위가 없는 최순실씨에게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에도 직접 의견을 물어봤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최순실씨가 비선실세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이 최순실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것은 2014년 정윤회 사건당시 대통령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기문란이며 일벌백계의 대상"이라며 "대통령이 진실 해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어물쩍 상황을 넘기려한다면 성난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 野 "이제 '박근혜 게이트'" 與 특검-국정조사 압박 =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가 탄핵, 2위가 박근혜 탄핵"이라고 박 대통령을 성토했다.
심 대표는 "이제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다. 국민은 개, 돼지가 아니다. 짓밟힌 국치를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최씨와 그 관련자들을 국내로 즉각 송환해서 구속수사할 것과 우병우 민정수석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문고리 3인방'등 국기문란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을 총사퇴시킬 것을 압박했다.
한편,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날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긴급하게 갖고 의견을 모을 예정이었지만 참석율이 저조해 회의를 취소했다.
비박계 유승민 의원은 대통령 사과에 대해 "대통령 말씀이 국민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많이 의혹이 남아있다고 보고, 사실 관계 관해서 어떤 불법과 잘못이 있었나. 국민들이 그런 게 있다면 처벌해야 된다는 여론 아니냐"고 강조했다.
이어 "이 문제는 대통령이 오늘 사과 정도로 끝날 문제 아니라고 본다"며 국정조사와 특검을 거듭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