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관련 보복이 그 강도와 폭에서 전방위로 치닫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에 대한 노골적인 제재와 한국여행 취소가 봇물을 이루고 화장품ㆍ식품 등에 대한 비관세장벽도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중국 온라인쇼핑 사이트들이 롯데마트관을 폐쇄하고, 장쑤성에서는 흥분한 중국인들이 한국산 차량을 부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중국인들의 불매운동이 격렬해지면서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등 다른 기업들도 그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소비자의 날인 15일에는 중국 TV의 한국 기업 때리기도 크게 우려된다. 관광상품 판매 금지에 따라 면세점과 호텔 등 한국 관광산업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되면서 2012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중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때와 비슷한 양상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해 7월8일 사드 배치결정 발표 이후 우리 정부는 중국의 보복가능성을 애써 무시해왔다. 롯데의 중국 사업장이 세무조사를 받고, 한국산 화장품이 수입 불허되고, 한국산 배터리 탑재 차량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을 때도 “사드 보복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국회 긴급현안질문 답변에서 “기본적으로 한·중 관계가 고도화 돼있어 쉽게 경제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복 우려의 소지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중국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돼 있고 자유무역협정(FTA)을 하고 있다며 “전면적인 경제 보복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다급해지자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고위 당정협의에서 “중국과 소통을 강화하고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3~4월로 예정된 고위급 면담과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의 채널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할 방침이라고 한다.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한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한 단계 진전될 때마다 보복 수위를 한 단계씩 높이는 용의주도함을 보여 왔다. 이번에 사드 부지 제공이 확정되고 정부가 조기배치를 서두르자 보복을 본격적으로 강화했다. 과거 사드 '대응'이라고 하던 표현을 '제재'로 바꿨다.
한·중 간 무역 및 민간 교류를 고려하면, 중국의 전방위적 조치는 '경제적 선전포고'라고 할 만하다. 2016년 기준으로 양국 간 교역은 2113억 달러이고, 한국의 대중(對中) 투자도725억 달러, 기업 수는 2만3000여 개를 헤아린다. 인적 교류는 연 1000만 명을 넘었으며, 여객항공편은 시내버스 수준인 평균 8분마다 왕래한다.
우리의 대중 수출은 26%, 중국 관광객 비중은 무려 47%다. '중국 없이 못 산다'고 할 정도의 높은 의존도다. 각종 비관세장벽에다 보복에 따른 계약 파기, 통관지연 등으로 중소수출업체들은 사드 후폭풍을 온 몸으로 맞고 있다.
정부는 '선(先)대화 및 국제 여론전, 후(後)법적 대응' 전략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들린다. 외국 언론 등 국제 여론을 통해 중국이 부당한 보복을 중단하도록 촉구하는 여론전을 전개하고 또 하나의 사드 당사자인 미국을 통한 중국 견제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기배치론을 내세우면서 8개월간 중국과 실질적인 대화를 않다가 보복조치가 가시화되자 갑자기 중국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대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한․중통상점검TF를 서둘러 구성해 논의에 들어갔지만 당장 닥칠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한국 관광 및 쇼핑 금지조치는 한중FTA 위반으로 중재 내지 제소를 할 수는 있다. 이 경우 중국당국이 지시를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하는 데 중국의 관광당국인 국가여유국이 이를 의식해 구두메시지로 은밀히 지시를 내려 쉽지가 않다. 또 중재를 요청해도 보통 1년에서 2년씩 걸리기 때문에 실익이 의문시된다.
한․중간 사드대치는 치킨게임양상을 띄어가면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북핵문제에 미적지근한 태도의 중국에 크게 실망했고,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세 차례에 걸친 '사드 반대' 의사 표시에도 사드배치를 밀어붙인 한국에 배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중 두 나라는 수교 이래 25년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전략적 목표와 상호신뢰 속에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구축해 왔다. 어이없게도 사드 한 방으로 이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중국은 사드를 자신들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기어코 배치하면 한국이 감당하기 힘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누누이 경고해왔다.
양국의 밀접한 교역 관계를 감안할 때 중국이 전면적 경제보복에 나서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기대도 있어왔다. 우리의 중국에 대한 가공무역 비중이 49.6%(2015년)로 중국이 한국산 원·부자재를 재가공해 세계에 수출하는 형태여서 중국 또한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하지만 중국은 핵심이익 수호에 이런 '기회비용'은 아랑곳 않는다는 자세다.
중국은 북핵 폐기보다 북한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고, 우리 또한 북핵 위협에 대비한 자구책인 사드를 철회하기도 어렵다. 우리에게도 안보 이익이지만 중국 역시 안보 이익을 강조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큰 틀의 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하면 한․중관계는 만성적 긴장관계에 빠질 우려도 크다.
사드의 조기 배치는 중국의 북한 편들기 명분을 강화시켜 북핵이라는 혹을 더 키우고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공동 대응이라는 새로운 혹까지 달게 되는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큰 딜레마다. 미국과 중국 간에 사드배치 연기와 북핵 프로그램 축소를 맞바꾸는 물밑 '빅딜'가능성도 점쳐진다. 사드가 미․중간의 흥정꺼리가 되면 한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팽팽한 대치국면으로 보아 중국의 보복 조치가 장기화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수출시장다변화, 동남아 관광객 유치 등을 통한 중국의존도 축소는 말은 쉽지만 장기적 과제다.
당장 급한 것이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응방안이다. 국가안보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결정에 따른 후유증을 민간 기업이 무작정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
중국 당국이 아직 구두로만 압박 메시지를 보내고, 중국 언론도 사드 배치를 결정한 한국 정부와 롯데만을 겨냥해야지 다른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등 한 가닥 여지는 읽혀진다. 그렇다고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닥쳐올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소통하고, 향후 사드배치 실행단계에 따른 중국의 추가 압박시나리오까지 감안한 장단기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