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법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난 1999년 이후 18년 동안 수 차례 법안발의와 폐기를 반복해 왔다. 4년 임기인 국회가 5번 '물갈이' 되는 오랜 시간 동안 국세청법은 국회에서 제대로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국세청법의 생명력은 질겼다.
18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잊을만하면 국세청법 제정 시도가 고개를 들고 나왔다.
이유가 무엇일까.
해답은 국세청 자체에 있다.
국세청법은 애초 국세청의 정치 중립성 확보가 목적이었던 만큼 국세청이 그동안 정치 중립성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법 제정 요구는 사장(死藏) 되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1997년 세풍(稅風) 사건 이후에도 국세청은 종종 정치적 풍파에 휘말렸고, 전직 국세청장들이 '개인비리'에 연루되어 줄줄이 감옥에 가는 등 법 제정의 필요성을 국세청 스스로가 만들어냈다.
"나는 국세청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박명호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납세에 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 변화 분석'에 따르면 국민 22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2015년 기준) '국세청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43.9%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13.6%였으며 '보통'이라는 응답은 42.4%였다.
비관적으로 해석한다면, 국민 100명 중 13~14명 정도만이 국세청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 듯 국민시각 측면에서 국세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적 중립성'과 '청렴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세무행정 서비스의 비약적 발전은 국세청에 대한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른 정부 기관보다 유독 국세청이 정치적 중립성과 청렴성을 요구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세청 본연의 업무가 돈(세수), 즉 '국민의 재산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세청이 쥐고 있는 '세무조사권'은 세수확보는 물론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납세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조세정의와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탈세자 단속 등 사회정의 확보차원에서 그 어떤 정부 기관의 권한보다 공정한 행사가 필요한 권한이다.
하지만 이 세무조사권이 정치권력에 휘둘렸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이 권한을 토대로 한 크고 작은 비리 사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세청의 정치 중립과 청렴성에 대한 국민적 의심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대 변화, 국세청법 도입 논의 흐름을 바꾸다
국가적 과제를 해소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재원의 '조달창구'로서 국세청이라는 기관이 지금 현재보다 진일보한 체계로 개편, 운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들이 가세한 모양새다.
현재 대한민국은 날로 심각해지는 양극화 문제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허덕이고 있다.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어 있는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복지확충'이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고, 실제로 복지예산의 규모가 해를 거듭할 수록 비대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효과적인 재원 확충을 위해서는 국세청이라는 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 대안 중 하나로 국세청법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에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보험 징수·부과 업무를 국세청 산하 기구로 통합하려는 논의가 진행된 배경에도 국세청이라는 기관의 효율적 운용을 통한 국가 시스템 정비라는 유사한 정책적 목적이 깔려 있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실을 재빠르게 따라가는 세련된 세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가 가지고 있는 조세정책 기능을 분리, 국세청의 조세행정 기능과 결합한 형태의 장관급 부처(ex : 국세부)를 출범시켜 정책과 행정의 유기적인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관급 부처에 불과한 국세청이 조세정책기능을 담당하는 부총리급 부처인 기획재정부 '산하기관'로 운용될 경우 공직사회의 특성상 두 기관간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으로 업무협조(세법개정)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논리다.
국세공무원을 특정직화 하는 등 다분히 '부처 이기주의'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국세청법의 핵심이 아니다. 하지만 국세청법이 매번 좌절된 이유는 이 핵심 아닌 핵심 때문이었다. 주객이 전도되면서 국세청법의 근본 취지(정치 중립성 및 청렴성 확보)가 뒷편으로 밀려난 것이다.
국세청법의 근본 취지인 정치 중립성 및 청렴성 확보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포함해 국세청이라는 기관이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국세청법 제정이라는 발전적인 대안을 심도있게 검토할 적절한 타이밍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8년 달려온 '평행선'…찬반 논란 핵심은?
국세청법 제정을 위한 시도 과정에서 매번 논란이 됐던 쟁점은 ▲국세청장 임기제 및 내부승진제 명문화 ▲국세공무원의 특정직 전환이다.
국세청법 도입을 찬성론자들은 법의 포인트로 '국세청장 임기제'를 지목하고 있다.
국세청장이 인사권자(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역할을 수행하려면 적당한 기간,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인 국세행정 운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대론자들은 실질적인 임기제(2년)가 적용되는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이 임기를 다 채우고 떠난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에 수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별조직법이 있다고 해서 정치 중립성이 확보됐다고 보기도 힘들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국세청장 내부승진제 또한 찬반 논란 첨예하다.
내부승진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안정적인 조직운용을 위해 조직을 가장 잘 아는 내부인사를 수장에 임명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반대론자들은 내부승진이 조직의 비밀주의와 폐쇄성을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에 외부출신 임명도 가능토록 해 이를 깨뜨려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일명 '고인 물은 썩는다'는 논리다.
국세공무원의 특정직 전환은 3가지 쟁점 중 국세청법 도입의 가장 세게 발목을 잡고 있는 쟁점.
국세청법의 핵심은 국세청의 정치 중립성 등 확보지만 반대 측에서는 무엇보다 특정직 전환을 문제 삼고 있다. 각 부처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는데다 예산도 추가로 확보해야 되기 때문이다.
특정직 전환을 주장하는 이들은 국세공무원이란 특수성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돈'과 관련된 일을 하는 국세공무원들에게 보수 인상이라는 인센티브를 부여해 비리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업무량과 더불어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큰 일만 당하는 세무조사 전담부서에 근무를 기피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다.
반대 측에서는 타 부처와의 형평성을 고려했을 적절치 않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국세공무원을 특정직으로 전환한다면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관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도 특정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보수 인상으로 인한 예산확보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늘어나는 복지수요로 돈 들어갈데는 많은데 국세공무원들의 보수를 인상해주자고 예산을 들였다가 제대로 성과를 못 낼 경우 국민들의 커다란 반발 여론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