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기후변화대응센터를 찾아 미세먼지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안철수 페이스북)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의 유치원 공약 발언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수습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사태 진화를 위해 내놓은 해명이 되레 더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건은 일부 언론이 안 후보가 전날(11일) 서울 송파구 잠실올림픽공원에서 열린 '2017 사립유치원 유아교육자대회'에 참석해 "병설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고, 현재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 운영 보장과 시설 특성 등에 따른 운영을 인정하겠다"고 발언했다고 일제히 보도한 데서 시작됐다.
국공립 유치원 중 하나인 '병설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겠다는 공약이 유아들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이에 네티즌 및 학부모들은 포털 사이트와 각종 온라인 카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안 후보의 발언을 맹비난하는 게시글과 댓글들을 올리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비난 여론은 일파만파 확산되어 포탈 실시간 검색어에 '유치원'이 장시간 1위로 랭크됐다.
그러자 국민의당은 즉각 해명 자료를 배포하며 진화에 나섰다.
국민의당에 따르면 안 후보가 "병설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겠다"고 발언한 내용은 사실 "대형 단설유치원 설립 자제"였다고 '오보'라고 주장했다.
뿐 만 아니라 국민의당은 기자들에게 보도정정요청 자료와 함께 안 후보가 직접 현장에서 발언한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보내 정정보도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녹음 파일을 확인한 결과, 안 후보는 "대형 단설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 후보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행사에서 말씀드린 취지는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보도와 달리 병설유치원은 늘리겠다는 뜻이다. 완전한 오해"라는 글을 올리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해명으로 내놓은 '병설' 아닌 '대형 단설유치원 자제'라는 발언이 더욱 화를 키웠다.
현실에서 병설이든 단설이든, 국공립 유치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대형 단설 유치원 설립을 자제한다는 것 자체가 교육 공공성에 대한 개념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안 후보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이기도 하다.
특히 안 후보는 이날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 운영 보장과 시설 특성 등에 따른 운영을 인정하겠다"고 밝혀 사립유치원의 요구사항을 공약했다. 이 역시 교육비 감당이 힘든 사립유치원의 확대를 키워준 꼴이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안 후보 측의 해명 오히려 더 큰 비난을 초래하게 만든 것이다.
◆…국민의당 페이스북 화면 캡처
□ 학부모들, 거센 비난 "병설이 로또 3등이면, 단설은 로또 1등" = 네이버 아이디 'hyeb****'는 한 맘카페 게시판에 단설유치원과 병설유치원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글과 함께 "병설보다 더 좋은 단설유치원을 자제 시키겠다는 해명이 더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게시글에 아이디 'lolob****'는 "(안 후보는)단설, 병설, 사립 시스템 자체를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몰라서 갈수록 말이 꼬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같은 포털 이용자 'miss****'는 "둘 다 국공립이고 시설면에서도 단설이 더 좋은데 자제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이디 'jing****'는 "누굴 위한 공약들인지 답이 없네요"라고 꼬집었다.
다음 아이디 hyju***는 "병설이 로또 3등이면 단설은 로또 1등"이라고 지적했다.
또 inny***는 "아니 단설이랑 병설이랑 어차피 국공립 아닌가? 단설이든 병설이든 설립을 자제한다는 공약에 화가 난 건데 병설이 아니라 단설이라고 했다고 해프닝이라니"라며 안 후보의 대응과 해명을 비판했다.
단설유치원은 국가에서 설립한 국공립 교육기관으로, 국가에서 교육비를 지원받는다. 1년마다 이뤄지는 교원능력 평가 때문에 교사의 질이 높은 편이고, 특히 오전7시부터 오후9시까지 운영해 맞벌이 부부가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유치원으로 꼽힌다.
국공립 단설유치원은 전체 유치원의 3.4%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단설유치원 경쟁은 수백대 일의 비율로 매년 학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결혼하면 단설유치원에 먼저 신청원서를 넣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경쟁이 치열한 단설유치원 합격 여부에 따라 부모들의 희비는 엇갈리고 떨어지든 합격하든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도 보편화된지 오래다.
병설유치원은 재원이 필요한 단설유치원의 보완 성격으로 초등학교 내에 유치원을 설립해 운영하는 유치원이다. 학교 분위기를 미리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등학교 연간 스케줄과 동일하게 운영돼 국가 공휴일 및 학교가 자율적으로 쉬는 날에 함께 휴원을 하고, 통학차량도 운영하지 않는다.
그래도 단설유치원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국공립인 병설유치원 역시 '유치원 대란'에서 사립유치원보다 비용 부담이 적어 경쟁이 치열하다.
때문에 단설유치원 확대는 저출산-보육문제 해결 차원으로 매번 거론되는 정책이다.
□민주당·정의당, 安 겨냥 "보육 현실 모르는 탁상공론" =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안 후보의 유치원 공약과 관련해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사립 유치원의 독립 운영 보장"을 주장하는 안 후보를 보고 있자니 하루하루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보통 부모들의 삶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힐난했다.
홍 대변인은 "학부모들의 요구도, 교육현장의 목소리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이래저래 말 바꾸기를 넘어서 교육철학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는 안 후보에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말할 자격이 있는 가"라고 되물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여성위원회 소속의 남인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공립)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고 사립유치원 독립운영을 보장하겠다"하여 학부모님들의 원성을 샀죠. 학부모님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곳이 국공립 단설이며, 유치원 중 고작 3.4%에 불과함에도 안 후보가 신설자제를 강조한 것이 놀랍다"고 꼬집었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도 논평에서 "열악한 보육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탁상공론의 극치"라고 맹비난했다.
한 대변인은 "안 후보는 단설 유치원 신설 제한에 대해 거리가 멀고, 주변의 소규모 유치원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학부모들의 수요가 가장 높은 것이 국공립 단설유치원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단설유치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해소하면 될 일이지 단설유치원을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데가 없다는 학부모들의 한탄과 감당하기 힘든 사립유치원의 원비, 국공립 단설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학부모들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안다면 이 같은 공약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또 "학부모들은 벌써부터 세상물정 모르는 안 후보의 공약을 두고 "공주가 가니 왕자가 왔다"는 말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서민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대권주자의 한계"라고 질타했다.
□ 국민의당, '대형 단설 자제'로 재해명에 "단설은 거의 대형" 지적 =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해명 역시 거듭 비난을 받자, 안 후보 캠프 정책실장을 맡은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12일 "대형 단설유치원에 한해 신설을 자제하자는 것이었다"고 거듭 해명했다.
채 의원은 "오히려 병설유치원은 더 많이 공급해서 더 많은 아이들이 집 가까운 곳에서 양질의 공립유치원을 이용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설유치원 자체가 유치원 단독건물을 지어 운영해 수용 아동과 담당 교사가 많아 대형, 소형으로 나누는 게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는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통화에서 "단설유치원 자체가 병설유치원보다 크다. 병설유치원은 학교에 학급 늘리는 수준이라면 단설유치원은 학교처럼 단독으로 운영을 하니 당연히 아이들이 많고 선생님들도 많다"며 "대형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 거 자체가 의미가 없다.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저출산이 보육이나 돌봄교육이 어려운 원인이 커서 단설유치원 확대를 학부모들이 제일 원하는데, 사립 유치원 원장들 앞에서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를 말하는 건 결국 사립을 키워주겠다는 시그널로 볼 수밖에 없다"며 "사립 유치원 원장들의 의회로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