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열한 살 난 딸아이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여름내 방치해 놓은 텃밭에는 사람 키만큼이나 자란 풀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한 어느새 거미줄은 여기저기 쳐져 있고, 그렇잖아도 오래되고 낡은 집은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래 비워둔 집에 들어설 때,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집은 어쩌면 남편이 주검이 되던 그 순간보다 알 수 없는 섬뜩함으로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비로소 남편의 부재가 피부에 와 닿고 두려움과 공포가 갑자기 동시에 밀려들더군요.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상실감으로 한참을 문 앞에서 멈칫했습니다.
2015년 10월, 출판사를 경영했던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행복하게 지내던 우리 가족은 뜻하지 않게 남편이 식도암 4기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단 당시 워낙 병세가 깊은 터라 수술도 불가능했고, 방사선과 약물치료도 체력이 워낙 떨어져 있는 상태라서 쉽지 않았으나, 종양의 크기라도 줄여서 연하(삼키기) 곤란을 해결해 보고자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만에 식도 안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부작용으로 방사선치료를 더 이상 시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시도해 보기를 권하였으나, 남편은 가족들 고생하는 모습이 싫다며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기 좋은 강원도 영월에 내려가 요양하면서 민간요법으로 극복해 보겠노라 저를 설득하고 애원했습니다.
그리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그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열한 살 난 딸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은 함께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남편의 뜻을 받들어 곧 뒤따라 딸아이와 아픈 남편과 시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작년 5월이니 아마도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을 신청했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둘이 벌 때는 소득이 장려금 신청 기준보다 높아서 혜택을 받지 않았으나, 남편이 아프면서 소득이 없어지고 저 또한 간병하느라 소득이 줄어들었지요.
그러나 전 희망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비하면 잠깐의 어려움은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고, 힘들게 투병하는 남편 옆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 전에는 사소하게 느꼈을지도 모를 하나하나의 일상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물 한 모금조차 삼킬 수 없는 상태에서도 그는 종잇장처럼 웃으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 뒤로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가끔 반의식 상태에 머물다가 그는 숨을 거뒀습니다. 딸과 저는 남편이 고통 없는 곳에서 평화의 안식에 들기를 나지막이 숨죽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그리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느닷없이 찾아오는 가슴통증과 밤마다 신경을 날카롭게 누르는 불면증과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소화불량에 시달려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한마디로 화병인거죠. 언젠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 세월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견디어 내기엔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많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나마 씩씩하고 밝은 딸아이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딸아이가 엄마 휴대폰에 '딩동'하면서 문자가 왔다며 가져와서 보여주더군요. 그건 잊고 있던 선물이었습니다.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이 통장에 들어왔다는 알림문자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 산 사람은 어떡하든 살게 해주는 구나. 주님 감사합니다. 절로 감사의 기도와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남편의 치료비와 생활비, 오랜 병원 생활 끝에 간병하면서 남편의 장례를 치른 저희에게는 남은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국가에서 해주는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장려금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한 번은 아주 오래전에 그냥 명절 보너스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삶의 희망'이라는 이름을 지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니까요.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나기 3일 전에 '기초생활수급'이 결정되었는데 추스릴 여력도 없이 저는 조건부기초생활수급자라 자활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계비가 많이 빠진다고 연락을 받았으니까요.
어쨌든 장려금을 받고 기운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을 이 세상에서는 보거나 만질 순 없지만, 항상 딸과 제 곁에서 살아 있을 때처럼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먼저 우리 곁을 떠났지만 마누라가 씩씩하게 딸 잘 키우고 잘 살다 오기를 그 또한 얼마나 희망할까요.
장려금을 받은 돈으로 딸과 가까운 온천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오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군가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인생의 3막을 딸과 함께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책들을 읽고, 사색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살고 싶어졌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주는 인생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함께한 추억이 있기에 슬프기도 했지만 역시 기쁨으로 귀결되더군요. 만약에 제가 여유를 가지고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저는 쫓기 듯이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예전보다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밟게 해주는데 일만의 도움이 되어 준 '장려금'제도에 감사함을 표합니다. 저 또한 다시 일하는 사람이 되어 가정과 나라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습니다.
깊은 슬픔에서 회복된 사람의 삶은 유연하게 대처하며 기꺼이 즐겁게 살아갈 준비를 마친 것이지요. 그 뒤로 저는 고용보험을 통해 '취업성공패키지'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올해 2월 초 현재 영월읍에 있는 회사의 관리사무직에 취업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엄마로서 여성 가장으로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여 차후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을 꿈꾸며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응원해 주는 딸과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은 어려운 상황에서 수혜자가 되었을 때 새로운 삶을 꿈꾸는 작은 희망의 씨앗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과 복지임을 잊지 말고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좀 더 어른답고 성숙된 국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기 작성자 : 강원 영월군 조OO(영월세무서 출품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