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9일(화) '장미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차기 정부의 조세정책 방향에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근로자이든 사업자이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그 어떤 경제주체들도 납세 문제와 결코 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정책의 물줄기가 크게 변동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목은 '법인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간이 갈 수록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지만 '양강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이 사실상의 법인세율 인상을 공약으로 제시, 지난 10년 동안 '인하기조'를 타왔던 법인세율 정책방향의 변화가 예고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 안 두 후보를 제외한 3명의 주요 대선주자들 중에서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의 후보(유승민, 심상정)들도 각각 법인세율 인상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법인세율 내가 올린다"…'표심' 공략 나선 후보들
이런 저런 시대적 상황이 결부되면서 사실상 '재벌대기업'을 표적한 법인세율 인상이 선거판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기조다. 사실 법인세율 인상 문제는 지난 2번(17대, 18대) 대선 이후 '색깔론(보수-세율인하, 진보-세율인상) 프레임' 속에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붉은 장미와 함께 치러지는 19대 대선 구도하에서는 색깔론 프레임을 뛰어 넘어 마치 시대가 요구하는 중대한 과제인양, 포장되어 이슈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복지확충에 대한 사회적 요구 해소를 위해 반기업정서를 활용하려는, 정치적 접근법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법인세 인상에 찬성하는 대선주자들은 인상 방법과 시기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 이명박 정부 시절 22%로 인하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법인세율을 다시 25% 수준으로 끌어 올리자는 큰 틀에선 이견이 없는 모습.
우선 문 후보는 자신의 이름의 영문이니셜을 딴 'J노믹스' 경제공약과 최근 있었던 TV토론을 통해 법인세 명목세율을 25%로 인상 공약을 재확인했다. 이는 지난 수 년 동안 보수정권 체제 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채택해 왔던 당론이기도 하다.
아울러 문 후보는 최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법인세 실효세율을 올리는 데 주력하겠다"면서 "대기업에 편중된 특혜적 세금감면도 대폭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효세율 정비를 우선적으로 실시하되, 필요에 따라 매출액이 일정 이상 규모인 대기업의 명목세율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후보도 법인세율을 25%로 회복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안 후보는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정상화시킬 것"이라며 "법인세의 실효세율을 정상화한 후 조세재정의 수요에 맞춰 지속적으로 낮춰왔던 법인세율을 원상회복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어느 후보가 당선이 되든 대기업 등에 적용하는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 또는 투자 등과 관련한 조세특례를 정비, 지난해 기준 19.6%(대기업 기준) 수준인 법인세 실효세율을 올리는 시도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보다 공격적이다.
실효세율 인상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인상이 아닌 명목세율 자체를 처음부터 25% 수준까지 환원시키는 의견에 찬성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유 후보는 최근 있었던 토론회에서 "소득이 많은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이명박 정부 이전 수준으로 일단 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법인세를 깎아준 'MB 감세'를 철회하고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 법인세율 인하 이후 기업의 유보금이 438조원(2009년)에서 886조원(2013년)으로 거의 2배가 됐다"며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원위치시키고 모든 법인세 조세특례에 최저한세율 적용을 원칙으로 하겠다. 대기업 최저한세율을 현행 10-12-17%에서 10-15-20%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홍 후보는 '외롭게' 법인세율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홍 후보는 "법인세 인상을 통해 기업들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며 정규직 채용을 많이 한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고 연구개발 관련 감세정책을 펼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후보는 또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법인세를 낮추고 있다"며 "통상 법인세 1% 인하 시 약 5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법인세 인하로 당장의 세수 감소는 예상되나, 일자리 창출 및 기업 투자 등으로 환원되는 세수는 (장기적으로)증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DJ·노무현 정부 때도 하락한 '법인세율'…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법인세는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기업에는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법인세율 평균은 2000년 30.2%에서 2008년 23.9%, 2016년 22.5%로 낮아졌다. 현행 우리나라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OECD 평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를 보여왔다.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34%에 달했던 법인세율은 김영상 정부에서 28%로 낮아졌고 김대중 정부에선 27%로, 노무현 정부에선 25%로 점차 낮아졌다.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정부 시절 대폭 낮춘 법인세율을 1%p 인상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동안 법인세율이 인상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5년 법인세율은 과표 1억원 이하 13%, 1억원 초과 25%로 구분되어 있었으나 2008년 과표 2억원 이하 11%, 2억원 초과 25%로, 2009년 과표 2억원 이하 11%, 2억원 초과 22%로 해마다 세율이 낮아졌다.
이후 2010년 과표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 22%로 법인세제가 개정된 후 2012년 과표를 3개 구간으로 나눈 현행 체제가 완성됐다.
이 같은 기조는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한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고 실제 지난 4년 동안 법인세율은 '요지부동' 이었다. 박 정부 내내 야권을 중심으로 법인세 인상 법안이 등장했지만 기업 경영, 나아가 나라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여권의 반대로 인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너도 나도 법인세율 인상론 설파…한숨 쉬는 재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재계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율 인상 여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실효세율이든 명목세율이든 법인세율이 인상되면 기업의 입장에선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에서 법인세율 인상을 골자로 한 입법안이 제출된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는 '법인세율 인상의 5가지 문제점과 정책대안'이라는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며 법인세율 인상을 유보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당시 대한상의는 불경기에 증세를 하면 경기후퇴가 우려되고 국제사회의 법인세 인하경쟁에 역행할 뿐 아니라, 입법의도와 달리 중장기적으로 세수가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가 감소하고 증세의 실질적 부담은 소액주주 등 국민의 몫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일각에선 명목세율만 그대로 일 뿐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여놨기 때문에 증세를 강행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기업의 법인세 연구개발 세액공제율을 3~6%에서 절반 수준인 2~3%로 낮추고 투자금액의 1%에 해당하는 대기업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금액 역시 폐지됐다는 이유에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에서 "2012년 이후 최저한세율 인상,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 축소 등 대기업 감면 정비에 따라 (이명박 정부에서의) 3% 세율 인하의 효과가 2% 실효세율 인상으로 상당 부분 상쇄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논리로 급한 불을 가까스로 진화했던 재계. 하지만 차기 정부가 들어선 후 법인세율 인상 플랜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하면 재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여 진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 당선이 유력시 되고 있는 후보들이 법인세 인상을 공약으로 내건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 트럼프 정부 등 다른 나라들은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는 추세인데 우리만 세율을 올리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법인세율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