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조세회피처에 세운 회사를 통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글로벌 기업들의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른 지 오래다. 최근 한국오라클이 국세청으로부터 3000억원 규모의 세금을 추징당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구글 등 이와 유사한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과세당국의 대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 IT 기업 오라클의 국내자회사인 한국오라클이 수익을 조세회피처로 빼돌리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3000억 규모의 세금을 추징당한 가운데, 국내에서 사업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들도 유사한 형태로 세금을 탈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오라클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이러한 형태의 조세회피 문제는 '구글세(Google Tax : 특허료 등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도 조세조약이나 세법을 악용해 세금을 내지 않았던 다국적 기업에 부과하기 위한 세금)' 논란을 촉발시키는 등 수 년 전부터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되어 왔다.
한국오라클은 국내에서 생긴 수익의 일부를 지적재산권 사용료 명목으로 미국 본사에 송금하는데, 그 규모가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익은 한미 조세조약에 따라 15%를 한국에서 원천징수하도록 되어 있지만 오라클은 2008년 사용료 지급처를 대표적인 조세회피처 아일랜드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도관회사)를 거치게 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기업들이 수익 중 일부를 본사에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조세회피처를 악용, 너무 뻔한 수법으로 세금 한 푼 없이 과도한 수익금을 챙겨 가는 행위는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정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현재 세계 각 국이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OECD에선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회피에 대응하기 위해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도 BEPS 프로젝트에 발맞춘 제도 개편을 차근 차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라클, '외국계 유한회사' 제재 기폭제 되나
오라클이 국세청으로부터 30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당하면서 국내에서 사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서도 적법한 납세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구글세 논란을 촉발시킨 글로벌 기업 구글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진 상황이다. 구글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는 물론 세계 각 국에서 오라클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MOIBA)가 최근 발간한 '2016 대한민국 무선인터넷 산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스마트폰 앱 시장 전체 매출(거래액)은 7조6668억원, 이 중 구글플레이의 매출은 4조4656억원에 달했다.
구글이 거래액의 약 30%를 수수료로 떼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플레이스토어에서 약 1조3400억원을 벌어 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플레이 외 구글이 운영하는 유뷰트 등의 광고매출까지 합치면 구글이 한국에서 벌어가는 돈은 매년 수 조원에 달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
하지만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낸 매출이나 이익, 납세내역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실정이다.
구글의 한국법인 구글코리아는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로 등록되어 있어 매출과 영업이익, 배당금, 로열티, 기부금 등의 재무정보를 공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법인의 형태를 유한회사로 변경하면 이들 기업이 해외 대주주 배당이나 본사 로열티로 얼마를 가져가는지, 기부금이 매출과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지 등 재무정보 일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구글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IT 회사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역시 유한회사로 등록되어 있으며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프라다 등 명품업체, 나이키, 코카콜라, 옥시 등 소위 돈 잘버는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유한회사로 등록되어 있다.
이번에 세금을 추징 당한 오라클도 마찬가지다.
국세청이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에 설립된 유한회사 수는 2만6858개로 직전년인 2014년 대비 1568개나 늘어났다. 그동안 주식회사였던 외국계 기업은 유한회사로 전환하고 새롭게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계 기업들은 아예 처음부터 유한회사 형태로 진입하고 있는 추세다.
◆…루이비통코리아에 대한 감사보고서는 2011년 분 까지만 확인할 수 있다. 이 회사는 2012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화면 캡쳐)
규제 완화된 상법…유한회사, 5년간 '1만개' 증가
유한회사가 대폭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2012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유한회사 설립과 운용이 더욱 수월해 진 영향이 크다.
법무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대폭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 전 유한회사의 사원(주식회사의 주주에 해당)은 50인을 초과할 수 없었는데 개정된 상법에서는 이 제한이 사라져 사원 1명 이상이면 유한회사 설립이 가능해졌다. 아울러 총자본금이 1000만원 이상이어야 하던 것도 폐지, 달랑 100원의 자본금만 있어도 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외국계 기업 입장에선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아 외부감사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외부에 기업 내부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이 적어 외부 시선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유한회사가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상법개정 후 5년 동안 유한회사의 숫자는 1만여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정상법의 취지와 달리 공시의무가 없는 허점을 악용해 외국계 유한회사가 과도한 로열티를 본사에 보내고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막대한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아디다스는 국내에서 벌어들이 수익의 8할을 '배당잔치'에 쓰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필립모리스와 스타벅스도 과도한 로열티를 책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씨티은행도 국부유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이다.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지난 2015년 "한국씨티은행이 지난 11년 동안 지급한 해외용역비가 1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국세청에 세무조사(재조사)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사간 갈등까지 빚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비상장 유한회사에 대한 회계감시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 1월3일 국무회의까지 통과했다.
그러나 외감법 개정안은 여야 이견 및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이슈에 발목이 잡혀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외국계 유한회사 '정보수집' 어려움 겪는 국세청
외국계 유한회사의 세금 탈루를 감시하고 세금을 추징해야 하는 국세청은 외국계 유한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일반적인 주식회사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는 입장이다. 유한회사의 경우 공시의무가 없지만 국세청의 자료요청까지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매출이 일정규모 이상인 경우라면 유한회사이든 주식회사이든 동일하게 정기 순환조사 대상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문제는 정보수집이다.
과세는 세무조사에 따른 자료조사 뿐 아니라 시장에 떠도는 정보(풍문)를 수집해 분석을 거쳐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유한회사의 '폐쇄성'으로 인해 국세청이 과세 또는 세무조사에 필요한 사전정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가 차단되어 있으니 현장조사를 통해 자료를 확보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과세는 커녕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전 정보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세청이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세청 관계자는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과세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라며 "국세청은 필요한 자료를 요청해 유한회사의 재무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유한회사라고 주식회사와 다를 바 없고 법에 따라 집행하면 될 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