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뒤에 숨어 있는 '유한회사' =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외감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정부를 비롯해 회계업계에서는 회계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유한회사도 일반 주식회사와 같이 외부감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지난 2012년 상법 개정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지아래 이루어졌다.
개정상법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고, 기업의 재무정보를 단 한 줄도
공시할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로의 폭발적인 전환을 불러왔다.
기업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기 때문에 주식회사를 선택하든 유한회사를 선택하든 이를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한국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배당, 경영 자문료, 브랜드 사용료 등 명분을 붙여 해외 본사로 가져가 버리는, 특히 이 과정에서 최근 불거진 한국오라클 케이스 처럼 조세회피처로 수익을 몰아주는 공격적 조세회피를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과세당국이 조세회피 의심이 가더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법적 절차를 밟은 세무조사를 통해야만 국내에서 유한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과세당국이 보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유한회사 형태의 글로벌 기업 현황을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긴 낮잠... 함흥차사(咸興差使)가 된 '외감법 개정안'
유한회사는 소수 출자자 간 폐쇄적 기업운영 편의성을 위해 도입된 바 있다. 그러나 2012년 상법 개정에 따라 사원 총수, 사원(투자자)의 지분 양도 제한이 없어지면서 주식회사와 유사한 운영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동일한 규모라 하더라도 유한회사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회계제도를 적용받고 있다는 점.
그동안 유한회사는 외부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거래처와 채권자 등 이해 관계자에게 재무 및 회계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이들 회사가 얼마를 벌어들이고, 이를 어디다가 사용하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한국오라클과 같이 시장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사용료 명목을 붙여 조세회피처로 빼돌려도 막상 회사로 쳐들어가 재무정보를 까보지 않는 이상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HP, 샤넬, 루이비통, 맥도날드, 이케아 등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이런 저런 명목으로 해외 본사로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3의 한국오라클 사례가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유한회사 형태의 법인들에 대한 투명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외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외감법 개정안은 단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국회(정무위원회) 계류 중인 형편이다.
외감법 개정안 처리가 멈춰버린 이유는 마침 터진 '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 정치이슈 때문이었다.
정치권이 온통 최순실 게이트에 매달리는 통해 외감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외감법 개정안 통과 여부도 현재로서는 매우 불투명하다.
정부 안팎에서는 오는 6월 임시국회 논의를 점치는 모습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 조직개편 및 국무총리,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정치 일정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까지 외감법에 대한 진적 상황은 없다"며 "6월(임시국회) 중에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반쪽짜리 외감법 개정은 안 돼"
회계업계 안팎에서는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외감을 받아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함에도 여전히 회계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외감법 개정안의 수위 또한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정안에 '감사보고서 공시 의무' 조항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한회사 외부 감사는 허용하되, 공시 의무는 과잉규제이기 때문에 제외한다'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의 결정에서 비롯됐다.
박윤종 안세회계법인 대표는 "감사를 받으면 공시가 의무가 있는 것이지, 감사를 받고 공시를 안 하면 무슨 의무가 있겠느냐"며 "주식회사 외감법 개정안 명칭에서 '주식'을 빼버리고 모든 회사는 외부감사를 받도록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한회사 외부감사·공시가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을 막기 위한 조치와도 맞물려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세청이 다국적기업의 회계 장부가 정확하게 작성됐는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한회사의 감사 의무화를 시켜 다국적기업의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살펴보자는 이유에서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다국적기업의 국내 자회사들이 공시나 외부감사의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로 운영되고 있다"며 "국내 매출액 등 과세정보 확보를 위해서는 유한회사에 대한 회계감사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가 하루속히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