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층 이상의 세대에서는 '화폐개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막연히 불안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는 지난 1962년 긴급통화조치를 단행하면서 구권 화폐의 교환과 통용을 일정부분 제한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추진을 위해 퇴장자금을 산업자금화하기 위해 단행된 긴급통화조치는 결국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경제활동에 참가, 화폐개혁의 경험을 간직한 세대는 새 은행권 도입을 포함한 화폐제도 개선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
지난해 리디노미네이션(화폐액면단위변경)을 포함한 화폐제도 개선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거나 예측가능성을 저해하거나 경제주체를 불안하게 하는 어떤 경제정책도 깜짝쇼의 형태로 하지 않을 것"이라며 화폐제도 개선을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는 그만큼 화폐제도 개선 문제가 일부세대에게 극도로 민감한 사안임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8일 새 은행권 도입 방침을 발표하면서 '무제한, 무기명' 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구권 지폐가 교환.통용될 것이라고 강조, 구권 보유자들이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신권이 발행되더라도 구권은 법정통화로서 무제한 통용된다는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새 은행권을 도입하면서 구권에 대해서는 일정기간만 통용을 허용하고 그 시점이 지나면 법화로서 인정하지 않는 제한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62년 이후 발행된 모든 한국은행권에 대해서는 여전히 법정통화로 인정하고 있다.
만일 이들 화폐의 통용을 강제로 막으려면 새 법률이 제정돼야 하며, 현재 이러한 법률이 만들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62년 이후 발행된 모든 화폐는 누구나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수십년전에 발행된 화폐에 대해서는 경제주체들 사이에 해당 화폐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진폐로서의 판별능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민간인들 사이의 상거래에서 사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오래된 화폐라고 해도 수취의무가 있기 때문에 액면금액 그대로 교환이나 예금을 받아줘야 한다.
이 때문에 구권화폐의 통용을 계속 허용하더라도 구권화폐의 위조에 대한 위험성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시일이 지나면서 일반 상거래에서 조차 거래가 힘들어지는 탓에 구권을 모델로 한 위폐 제작의 편익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은은 일단 새 은행권을 발행하면 환수되는 구권 화폐를 다시 방출하지 않고 폐기처분함으로써 구권화폐의 퇴장을 촉진시킨다.
시중은행을 통해 매년 한은에 입금되는 화폐의 총량이 특정시점에 시중에 유통중인 화폐의 총량보다 많기 때문에 이론상 1년 정도면 구권화폐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구권 화폐의 사용량이 줄면 구권의 구축효과가 발생한다.
즉 경제주체들이 새 돈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 새 돈만 찾게 되며, 유통업체들은 구권을 다시 거스름돈으로 내 주기보다는 신권을 내주기 때문에 신권의 유통이 더욱 촉진되고 구권은 더 빨리 퇴장한다.
이렇게 구권의 퇴장이 가속화되면 한은은 일정 시점에 구권화폐의 발행을 정지, 신규발행을 중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권의 발행중단 조치는 법정통화로서의 기능을 뺏는 유통정지와는 다르다.
일각에서는 새 은행권 발행으로 상당한 물량의 구권 지폐를 보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억측도 있으나 한은은 제도적으로 어떠한 피해도 없다고 강조한다.
한은은 일반인의 막연한 불안감을 이용, 사기행각 등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새 은행권 발행으로 구권 보유자들이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