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기획재정부에 초고소득자 및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 방안 마련을 지시하면서 이들에 대한 증세가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과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증세의 명분 확보와 여론몰이를 위해 '명예과세', '사랑과세' 등 정치적 프레임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일반 서민과 중산층에는 영향이 없는, 슈퍼리치들에 국한한 '핀셋증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가뜩이나 지금도 세금을 많이 내고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려는 '표적증세'라며 팽팽한 대립구도를 형성한 상황이다.
증세안 나오겠지만... 그야말로 '가시밭길'
야권은 정부·여당의 기습적인(?) 증세 추진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24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의 증세 추진과 관련해 "가공할 세금폭탄 정책이 고소득자, 대기업에 한정되어 있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연장될지는 예언할 수 없다"며 "관계 장관이 말 한마디 못하고 벙어리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힐난했다.
또 "완벽한 허수아비 총리, 장관을 세워놓고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주요정책을 원맨쇼하듯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이 정권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을 설득해 나갈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지난 9년 동안의 집권기간 동안 법인세율 인하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대선 과정에서도 법인세 인상 불가론 등을 당론으로 밀고 나갔던 자유한국당이었던 만큼 정부·여당의 초대기업 법인세율 인상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수밖에 없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노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바른정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지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어 "증세를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증세 카드를 꺼낸 것은 사과해야 한다"면서 "국정과제를 발표할 때만 해도 증세는 제로였는데 여당을 통해 건의받아 어쩔 수 없다는 전략은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도 "대통령 지지도가 높으면 국민은 세금도 더 내야 하느냐"며 "대기업에 투자해, 고용 증대해라 요구하면서 세금까지 더 내라고 하면 외려 기업을 위축시키고 경제를 악순환에 빠뜨리고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 경제성장률이 1.13%하락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먼저 100대 국정과제의 세부 조달계획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증세 대상과 범위에 대해 깊이 있는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고 요구했다.
야당 중 유일하게 증세 정책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 것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정부·여당의 증세규모가 너무 작다며 '부실 증세'로 몰아부치고 있다.
다만 정부·여당이 내놓은 증세안에 대한 실제 국회 논의가 개시될 경우,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법인세율 부분에 있어서 정의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마저도 대선 공약으로 법인세율 인상을 채택한 바 있다.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지금 당장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정책노선과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를 악을 쓰며 반대하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회 논의 과정이 험로 그 자체이겠지만, 아예 통과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국민여론 동향도 긍정적인 기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4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초고소득자 및 초대기업 증세 추진에 대해 응답자의 85.6%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전국 성인남녀 507명 대상-95％ 신뢰 수준, 표본오차 ±4.4%포인트).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날 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문 대통령 우측).
필요한 돈 178조원…상위 1%만 증세하면 가능?
사실 핵심적인 문제는 정부가 밝힌 '핀셋증세'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돈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는가 여부다.
'왜' 증세를,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만 한정해 추진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부실해 결과적으로 공약 이행 재원 마련만을 목적으로 한 증세라는 원색적 비판을 일부러 사서 듣는 형국이다.
조세정의, 조세공평 측면에서 놓고 보면 핀셋증세가 아닌 전반적인 증세를 추진하는 것이 더 국민에게 솔직하고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시한 방안대로라면 증세 대상은 전체 기업 및 고소득자의 0.019%, 0.08%에 불과한 130여개사, 4만명 정도이며 연간 3조8000억~4조원 수준의 추가세수가 발생한다. 단순 계산으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20조원 수준의 추가 세수가 발생하는 셈.
문재인 정부의 공약가계부 및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5년 동안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 사업에 투입되는 재원은 총 178조원에 달하는데, 연간 3조8000억원의 추가 세수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 증세론자들의 입장이다.
조세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근로자의 47%가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상위 1%에만 세부담을 더 지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과도하게 높다"면서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강화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금을 안 내는 이들이 어느 정도의 세금은 내도록 제도 보완을 함께 해주는 것이 조세정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불만 가득한 재계, "실효세율 이미 올랐는데 또…"
당장 세부담이 오르게 될 재계는 이번 법인세율 인상 논쟁과 관련,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법인세의 경우 박근혜 정부 이후 실효세율을 높여왔는데 세법개정을 통해 명목세율까지 높아질 경우 지나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4일 발표한 '조세 감면 정비현황 시계열 분석'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체 조세감면액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반대로 법인세의 감면액은 감소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세 감면액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실효세율이 높아졌다는 것. 연구원 자료 따르면 2015년 소득세 감면액은 2012년 대비 28.8% 증가했다. 하지만 법인세 감면액은 2012년 대비 24.7% 줄었다.
기업 중 중소기업의 감면액은 5.2% 증가한 반면 중견·대기업은 7.7% 감소했다.
이미 대기업에 대한 증세는 시작됐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조세감면제도는 지난 2012년부터 꾸준히 정비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축소나 폐지할 것이 많이 남지 않은 상태"라며 "초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증세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초고소득기업과 초고소득자를 같은 차원에서 보고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도 증세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등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율을 낮추는 추세에 있는데 우리나라만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법인세가 오르면 하청업체나 소비자 등에 부담이 더 갈수도 있다. 기업 이전 등 법인세 인상으로 인한 폐해를 충분히 생각해 봐야한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