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 과정 전반에 걸쳐 세금탈루 혐의가 짙은 이들에 대해 국세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일단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을 발판 삼아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규제를 통해 투기꾼들의 자금줄을 죄는 한편, 분양권 등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대폭 강화해 부동산 매매에 따른 차익도 환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여러 측면에서 12년 전 노무현 정부 당시 들고나왔던 부동산 대책과 흡사하다.
당시에도 '당연히' 국세청이 동원된 대규모 세무조사로 투기꾼들을 압박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12년 전 분위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시장에 제대로 전달됐다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보유세 인상이라는 극약처방을 정부가 아껴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부동산 시장은 상당기간 동안 '냉각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은 국세청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가 국세청의 세무조사 카드를 뽑아들 것이라는 부분은 어느 정도 예측이 됐었다. 국세청도 8·2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부랴 부랴 세무조사 착수 및 조사 강도 등을 구체적으로 대내외에 알리는 등 수 년 동안 찾아보지 못했던 색다른 장면을 연출했다.
이는 부동산 투기꾼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기 위한 '퍼포먼스'라는 분석이다.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지난 9일 부동산 거래 전반에 걸쳐 세금탈루 혐의가 명백한 286명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국세청은 경우에 따라 세무조사 대상을 추가로 선정하는 등 조사 강도와 범위를 넓혀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투기세력과의 '심리전', 최후의 승자는 누가될까
지난 9일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 과정 전반에 걸쳐 세금탈루 혐의가 명백한 286명(개인투자자, 법인 부동산중개업자 등)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를 공식 발표했다.
'세금탈루 혐의가 명백한'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세청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와는 별개로 꽤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세무조사 대상자들의 동향을 면밀히 체크해 온 것으로 풀이 된다.
경우에 따라 세무조사 대상자를 추가하겠다고 한 만큼, 부동산을 매개로 세금을 탈루해 국세청의 감시망에 걸려든 이들은 이보다 더 많은 수일 가능성이 크다. 즉 시기의 문제일 뿐 세무조사 대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세청은 조사대상자 개인은 물론 가족의 금융거래 내역까지 모두 추적하는 한편 부동산 거래 자금과 관련이 있는 사업체의 사업소득 부분까지 면밀히 조사해 탈루한 세금을 환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칫 잘못했다가 온 집안의 먼지가 탈탈 털리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내달 중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 내에서 3억원 이상의 주택을 거래할 때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정부의 계획은 부동산 거래자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파급효과가 상당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금조달계획서는 결과적으로 국세청으로 이첩되어 자금출처 조사 등의 자료로 활용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언제든 국세청 조사관들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국세청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강도로 세무조사와 관련한 사항들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은 특별한 배경이 있기 때문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부동산 투기 수익이든 뭐든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을 잡아내는 일은 국세청 본연의 업무다. 즉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 착수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국세청의 상시 업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정부와 국세청이 노린 것은 결과적으로 '심리적 효과' 아니겠냐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단속이 국세청의 고유 업무도 아닌데다, 세무조사로는 부동산 투기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세무조사 가능성을 계속해서 열어 둘 경우 비정상적 방법으로 자금을 만들어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려는 시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예 뿌리 뽑지는 못하더라도 상당기간 동안 움직임을 위축시켜 과열 현상을 누그러 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도 이 부분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다.
국세청 고위관계자는 "부동산 거래시 탈세 혐의에 대해 세법적인 조치를 하는 것은 (국세청의)고유 업무이고 그동안 상시적으로 해왔다"며 "이번 (세무조사 착수)발표는 향후에도 부동산 거래 탈세에 엄격하게 조치할 것이라는 정책 방향을 국민들에게 알려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탈세 방지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번 세무조사 발표는 국세청이 그동안 조용히 해오던 일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라며 "시장 참여자들에게 정부의 강력한 단속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어느 정도 시장에 영향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이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느냐다.
심리 차단의 효과가 계속 이어지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국세청이 확실한 조사결과와 지속적인 세무조사 착수 사실 공표로 시장에 형성된 '공포분위기(?)'를 길게 끌고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국세청 세무조사가 근본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기는 힘들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통해 투기 심리를 잠재우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주택자 입장에서도 정부의 정책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나은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보유세 인상이라는 카드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