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계 제조업 1위로 우뚝 섰다는 신문 보도를 보면서 한국은 전문경영인보다 오너경영인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최근 반도체에 37조원을 추가 투자키로 결정한 것도 3세 경영인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결정이다. 감옥 밖의 전문경영인이 몸은 아무리 자유로와도 결국 소신있게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서구에서도 가족기업은 꽤 많다. 그래도 대리인이론(Agency theory)에 따라 주력주주나 기업오너는 회사외부에 있고, 주주의 대리인인 최고경영자가 회사내부에서 경영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최고경영자 보수지급도 대단히 많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 경영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주력주주나 오너가 회장이나 명예회장으로 기업내부에서 경영한다. 비혈족은 CEO나 최고경영자로 불리면서도 결국 보조경영자로 사용된다. 즉 최고경영대리인은 드물고, 또한 이들에 대한 CEO 성과보수도 서구기업만큼 많지는 않다.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오너 중심의 가족경영지배체제와 가족승계구조는 지속될 것이고, 계속 승승장구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도 든다.
예를 들어보면 자본주의 역사가 훨씬 오래된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은 모두 당대에 창업자이며 온라인전자상거래 등 4차산업의 총아들로 바뀌었다. 반면, 본격적 자본주의가 50년도 채 안된 한국의 10대 재벌은 모두 2, 3, 4세 가업승계사업자이며, 기존의 제조업 등 오프라인 사업을 기반으로 바뀌지 않고 서서히 온라인사업으로 진화중인 기업들이다.
재벌지원을 통한 압축성장을 추구했던 과거 정부의 기업·금융정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의 우수한 인재는 모두 상위 10대 재벌에 입사하고 싶어한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입사가 젊은이의 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수인재가 많이 모인 조직이 계속 성장발전하고, 상층부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같이 서구기업과 한국기업은 지배구조와 경영형태가 완전히 다른데도 공익목적인 회계투명성과 이를 달성하는 외부감사제도만은 서구를 똑같이 모방했다. 그런데 서방 OECD 국가의 회계투명성은 대부분 해당국가의 GDP나 경제·무역규모 순위와 비슷하게 형성되는 반면, 한국만 GDP와 무역규모가 상위 10위권인데 반해, 회계투명성은 63위 꼴찌인 것이다.
그렇다면 회계투명성을 보증하는 외감제도만이라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기업의 오너경영자는 회사내부에서 자기회사의 회계문제를 아주 잘 알고 있으니, 구태여 외부에 투명하게 알릴 유인이 적다. 잘 알려주어봤자 국내외 경쟁기업만 회사를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고, 외부소액주주, 노조, 국세청, 거래관계기업 등의 부러움이나 민원제기 등 떼법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오너경영자는 경리실무자를 통하여 자기회사의 회계감사를 적당한 선에서 잘 마무리해주는 외부감사인을 각종 혈·지·학 등 연고를 통해 선임한다. 대형 상장기업들은 주로 국내 빅4 대형회계법인에게만 외부감사를 맡기는데, 이 경우도 대기업과 대형회계법인 내부의 경영인맥간의 친소관계와 연고 및 전관·전직예우 등이 많이 작용한다.
고문이 건너가면 회계법인도 건너간다. 이렇게 대기업 오너회장의 쪽지 등 숨겨진 뜻에 따라 결정된 외부감사인은 공익감사를 하기 어렵고 결국 사익감사를 한다. 이러한 사익감사결과 20년전 대우그룹부터 최근의 대우조선해양까지 수십조원대 거대 분식회계사기가 연속하여 터져나온 것이다. 이로 인한 투자자·채권자등·이해관계자 손실과 국가공적자금 투입액은 분식회계금액의 10배가 넘는다.
따라서 사익추구감사 대신 공익보호감사제도로 환골탈태되어야 한다. 현재의 자유선임제도를 일단 보류하고 상장기업만이라도 전면지정제를 단 1년이라도 먼저 실시해보아야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대기업은 대형회계법인에게, 중소기업은 중소회계법인에게 무차별적이고 무연고 순서대로 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현행 자유선임 실적대로 배정될 것이어서, 이해타산은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은 주로 대형회계법인에게 배정되지, 아무나에게 배정되지 않을 것이고 모두 다 같은 방법이니 나만 억울할 것도 없다. 기업이 부담스러워하는 감사가격은 현재 자유선임제에서 실제계약된 가격을 기준으로 체감율로 책정하면 그다지 오르지 않고 제자리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실제로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감사가격이 아니고, 무작위 규모순으로 순차배정된 외부감사인의 공정한 감시행위와 소신있는 감사의견일 것이다. 현행과 같은 갑을관계를 유지하는 자유선임제에서 상장사의 99% 이상 적정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적정의견이 아니라고, 무조건 상장폐지 실질심사로 올리는 경직된 현행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