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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 칼럼]

'미치광이전략'에 휘둘리지 말자

조세일보 / 변상근 논설고문 | 2017.10.11 08:30

 
발효한 지 6년차로 접어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결국 개정협상에 들어가게 됐다. 한미 통상당국은 한미 FTA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협상에 착수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당당한 대응'을 외치던 우리 정부가 개정협상절차에 들어가기로 급선회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으로 불리는 강도 높은 개정압박을 더는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 측은 지난 8월 22일 1차 공동위원회에서 협정개정을 요구하는 미국에게 먼저 협정의 경제적 효과부터 함께 분석해보자고 맞서 결국 이견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약 열흘 뒤 트럼프대통령이 담당자들과 회의하는 자리에서 “한국 측에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니어서(crazy) 당장에라도(any minute) 한·미 FTA를 폐기할 수 있다'고 말하라”면서 “한국인들에게 30일을 주면 그들은 일을 질질 끌 것”이라고 역정을 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 DC를 방문해 “백악관이 협상 폐기를 위한 편지까지 작성해 놓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트럼프의 폐기위협은 실제적이고 임박한 것”이라고 심각성을 전했다. 한·미 FTA 협정문에 따르면 한 쪽이 폐기를 통보한 뒤 180일이 지나면 FTA 협정은 자동 폐기된다.

트럼프는 지난해 4월 대선당시 외교정책 발표회에서 “미국은 예측 불가능(unpredictable)한 나라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물'로 포장해 상대국에 겁을 주고 사전에 적절한 대응을 못하게 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는 '미치광이(madman)'전략을 선호한다고 했다. 협상 상대에게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란 두려움을 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거친' 전략이다.

트럼프는 한·미 FTA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고, 일자리 10만개가 사라졌다며 이 '끔찍한 협정'을 재협상하거나 종료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한국과의 '거래'를 노린 것으로 FTA폐기를 기정사실처럼 부각시켜 우리 측 운신의 폭을 좁히고 양보를 얻어내려는 노림수로 읽힌다. 

트럼프는 내달 3일부터 시작되는 동북아 3국 순방을 앞두고 이들 3국과 협상 판을 최대로 키운 다음 압박과 특유의 '거래기술'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내려는 '빅딜'을 시도 중이다.

미국의 무역적자 7500억 달러 가운데 59%가 한·중·일 3국에서 발생한다. 중국이 3470억 달러로 가장 크고, 일본이 689억 달러, 그리고 한국과의 적자는 277억 달러로 8위다.

미국이 가장 날을 세웠던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미국 방문길에 대미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한 '100일 계획'을 제시해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세보복을 피했다. 일본은 4500억 달러규모의 대미투자와 70만개 일자리창출을 약속하고 양국 간 고위협력체인 '미․일 경제대화'를 출범시켰다. 방미 선물보따리로 급한 불을 끈 상태다.

이젠 한국 차례라도 된 듯 안보와 통상을 묶어 우리 정부를 압박해 한미 FTA 개정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어 한국산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발동을 예고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이다.  

불공정무역의 대표사례로 지목받아 온 자동차교역의 경우 대미수출액이 미국 차 한국수입액의 9배로 심한 역조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증가율로 보면 대미수출 12.4% 증가에 대미수입 37.1% 증가로 자동차무역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자동차의 한국수입이 저조한 이유로 미국은 연비규제와 수리이력 고지 등 비관세장벽을 든다. 우리의 연비 규제(ℓ당 17km)가 미국(16.6km)보다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연합(EU)은 우리보다 엄격한 18.1km를 적용하고, 일본 역시 미국보다 높은 16.8km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규제로 보긴 어렵다.

수리이력 고지는 미국 36개 주(州)에서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이미 시행 중이어서 한국차도 같은 규제를 받고 있다. 국내시장에서 수입차비중이 10%를 넘어섰는데도 미국차 수입이 저조한 진짜 이유는 독일 등 유럽 차에 비해 미국 차의 선호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산 철강제품은 이미 반덤핑관세 부과로 대미수출이 크게 줄어들고 있고 중국산 철강의 우회덤핑은 수출물량이 전체의 2%에 불과하다. 고로가 없는 국내 철강업체들이 품질 좋고 값싼 중국산 철강소재를 가공해 강관이나 도금판을 생산해 한미FTA를 타고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다. 하지만 최종소비재가 아닌 중간재에 대한 규제는 객관성이 떨어지고 미국 업체 또한 중국산 철강소재를 수입해 쓰고 있어 이를 불공정무역으로 문제 삼는 것은 '트집 잡기'로 읽힌다.

한국산 세탁기의 경우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의 반덤핑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만들어 미국에서 팔아온 세탁기 생산기지를 모두 동남아로 옮겼다. 반덤핑관세 부과가 세계무역기구(WTO)의 반대로 여의치 않자 미국은 무역구제조치의 칼자루를 들이댄 것이다. 툭하면 반덤핑 관세부과에다 세이프가드, 심지어 안보를 명분으로 한 수입제한 검토 등 무리한 카드까지 꺼내들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자동차․철강 등을 빌미로 FTA 협정을 대폭 개편해 관세가 유예된 농·축산품을 비롯해 지적재산권, 스크린쿼터제, 법률시장 개방, 신문·방송 등에 대한 외국 지분 투자 등을 비롯한 각종 수입규제 장치를 풀어 최대한의 실익을 얻어내려는 데 있다.

북핵문제로 미국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긴 하지만 동맹이라고 해서 트럼프의 의도대로 마냥 끌려갈 수는 없다. 미국의 대외무역적자는 구조적인 요인이 더 크다. 나라전체로 생산보다 수입을 통한 소비가 만성적으로 많고 이 간격을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찍어내 메우는 구조다. 주요 교역대상국과는 모두 무역적자이고 이 책임을 교역상대국에 전가함은 무리다.

서비스부문 교역은 우리가 지난해에만 143억 달러 적자이고 농산물교역 적자도 이미 상당수준이다. 게다가 한미FTA는 '경제동맹'으로까지 불리는데다 동맹국 한국은 수십 조(兆)원 규모 미국 무기판매의 최대수입국이자 '호갱'이 아닌가.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에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다. 당당하게 대응논리로 맞서고, 이왕 협정을 고친다면 우리도 그간 골칫거리였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나 과도한 반덤핑관세 등 무역규제남용 방지를 의제에 올려 적극 역공(逆攻)에 나서야한다.

한미공조에 균열을 우려하지만 국가 간 이익이 같을 수는 없다. 이견을 조율해 절충점을 찾는 것이 진정한 공조다. 트럼프의 무리수에 당당히 맞서는 국가적 결기가 필요하다.
                     


변상근 논설고문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한양대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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