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국세청이 제약업계에서 '리베이트(접대성 경비) 전달창구'로 알려져 있는 CSO(영업판매대행)와 의약품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한 제약사를 상대로 과세칼날을 들이댔다가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CSO는 제약회사와 계약을 맺고 영업·마케팅을 담당하는 대행업체를 말하는데, 이들 업체가 수수료 명목으로 받은 돈을 병·의원에 접대 행위를 하면서 사실상 제약회사가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판단이었다.
이른바 '리베이트 우회과세'를 한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시도는 끝내 실패로 종결됐다. 과세논리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너무 부실했던 탓이었다.
CSO는 국내외 제약회사가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영업상 방법이라는 점에서, 과세 적정성 여부를 두고 시시비비를 논하는 일이 잦을 것으로 보인다.
"우회 리베이트 제공" 제약사에 세금폭탄 투하 왜?
21일 조세심판원과 국세청에 따르면 대웅제약 계열사인 대웅바이오는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233개의 CSO업체와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대웅바이오는 4년 동안 판매대행수수료 명목으로 약 380억원을 CSO업체들에게 지급했으며, 이 돈을 사업 관련한 지출로 판단해 매입세액 공제를 받고 법인세 신고시 161억원 가량을 비용처리(손금산입)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수수료 비용의 손금처리를 모두 부인했다. 대웅바이오가 CSO업체에 지급한 수수료가 병·의원에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즉 '접대비'로 쓰였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사회질서 등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땐 해당 지출액은 손금에 산입할 수 없다. 결국 대웅바이오는 국세청이 경정·고지한 세금에 대한 과세불복을 제기했다.
국세청이 CSO를 리베이트 창구로 확신한 것은 CSO의 영업 형태 때문이었다. 사실 CSO는 태생부터 논란이 컸다. 본래 CSO는 외국에서 발생해 신약에 대한 홍보를 하는 업체였으나 우리나라에선 CSO가 의약품을 보관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제약회사를 대신해 접대활동을 하는 업체로 변질됐다는 인식이 짙다.
대웅바이오의 영업대행을 맡은 CSO는 병·의원 소속 관계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골프장을 갈 때 픽업, 자녀 유학정보 알아보기, 급기야 애완견 목욕까지 시켜주는 등 지극정성으로 바이어들을 관리했다.
제약업계의 현실이 아닌 표면에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볼 때 의약판매 활동이라고 볼 여지가 없을 수밖에 없는 셈.
국세청은 대웅바이오와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한 일부 CSO업체는 특수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사업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수수료를 지급한데 있어 구체적인 계산근거, 증빙자료가 없이 수입금액에 직접 차감하는 형식으로 비용으로 넣은 부분도 의심했다. CSO를 통한 판매를 하기 전부터 영업능력을 가진 '간납업체(도매업체)'에게만 높은 지급율(최고 45%)을 적용했는데, 이 같은 조치가 병·의원과의 친분관계를 유지할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세청의 과세 논리는 대웅바이오가 CSO업체에 지급한 수수료를 '사회질서에 반하여 지출된 비용'이기 때문에 손금의 요건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영업활동 간섭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웅바이오의 주장은 완전히 상반됐다.
CSO에 영업판매 위탁을 준 이후 어떠한 간섭도 없었다는 것이 요지. CSO는 제약사가 우회적인 방식으로 의사, 약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도록 시킬 수 없는 독립된 실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자사 이외에 4~5개의 제약회사가 위탁한 영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빌어 특수 관계가 있다는 부분도 '억지춘향' 논리라고 지적했다.
CSO가 대웅바이오로부터 받은 수수료를 병·의원에 대한 리베이트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수료를 접대비로 지출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국세청이 과세근거로 제시한 CSO, 병·의원 관련자의 진술에 대한 입증자료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많은 영업사원이 병·의원에 방문했고 접대 행위가 없었다'는 반대되는 진술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리베이트가 적발되어도 제약사들은 'CSO 리베이트 제공과 자사와 무관하다'면서 꼬리 자르기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추측을 근거로 한 자의적인 과세방식은 '근거과세원칙'을 적용하긴 무리라는 것이 대웅바이오측의 주장이다.
이중과세 문제도 걸고 넘어졌다. 국세청은 대웅바이오가 CSO에 지급한 수수료를 접대비로 보고 한도초과액만큼 손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설령 그 지출액이 접대성 경비에 포함되더라도 자신들이 아닌 CSO의 접대비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같은 금액에 두 번 과세할 수 없다는 소리다.
부실한 증거…물 건너간 세금
조세심판원은 1년간의 검토 끝에 지난 10월 대웅바이오의 손을 들어줬다. 우회 리베이트로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부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정문에 따르면 제약회사와 CSO와의 거래, 영업활동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고발되거나 처벌된 사실은 없다. 국세청이 제시한 CSO 대표자의 진술, 언론기사 등 증빙자료만으로는 CSO가 벌인 병·의원에 영업활동이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수수료를 접대비로 볼 경우 세법이 정한 한도를 넘어설 때 법인세가 부과되고, 이를 재원으로 지출한 CSO의 접대비도 한도초과액만큼 과세되기에 중복과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CSO의 실체를 부인할 수 없는 부분도 대웅바이오가 CSO를 거쳐 우회적으로 리베이트 했다고 보진 않았다.
한편 조세심판원이 대웅바이오의 주장을 인용함에 따라 국세청이 추가적으로 여타 제약사들에 대한 과세권을 행사하는 것은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세전문가는 "제약사가 CSO를 통한 리베이트 제공 등 영업행위가 불법이라 해도 이를 세무조사로 막기는 무리가 따른다"며 "리베이트를 양성화 시키는 방편으로 제약사가 CSO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 있는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