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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 칼럼]

가상화폐 거래 1위국 한국…규제만 할 것인가

조세일보 / 변상근 논설고문 | 2017.12.20 08:30

가상화폐 광풍이 제도권 금융․증권의 판을 흔들고 있다. 보통 화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최종 지급책임을 진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실물가치가 내재해 있지 않고 아무도 그 가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가상공간에서 교환 매매를 위해 인터넷 네트워크상에서만 존재해 암호화폐로 불리고 있다.   

이 '돈 아닌 돈'의 국내거래자가 약 100만 명, 하루 거래대금은 1조~6조원에 달한다. 하루 24시간 거래되고 순식간에 수 십 퍼센트씩 가격이 올라 대학가는 물론이고 중·고등학생까지 로또 대하듯 가상화폐 투기에 빠져들고 있다.

스마트폰에 가상화폐거래소 앱을 깔고 하루에 1~2번씩 단타거래를 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뛰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가상화폐는 반드시 1개 단위로 살 필요가 없고 소수점 아래 8자리, 1억분의 1개까지 쪼개서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 도박 중독자처럼 24시간 가상화폐 시세만 들여다보는 20~30대 '비트코인 좀비'도 양산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열풍이 가장 거센 나라가 우리나라다. 10대 가상화폐거래소 중 3곳이 한국에 있다. 거래량 세계 1위도 한국거래소다. 최소한의 소비자 보호장치도 갖추지 못한 거래소들이 난립한 가운데 금융도, 디지털도 모르는 일반인들까지 몰려들고 있다. 기업 내용은 보지도 않고 덤비던 '닷컴 버블' 때와 판박이다.

가상화폐는 2008년 미국 발(發) 글로벌금융위기의 산물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증발과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로 달러가치가 폭락하자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을 쓰는 인물이 달러중심의 중앙집권적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안(代案)화폐로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새로운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을 등장시켰다. 

비트코인은 발행 주체도, 보증 기관도 없다. 대신 집단 네트워크가 신뢰성을 보장한다. 비트코인이 히트하자 유사 암호 화폐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전 세계에 출시된 가상화폐는 1357개, 전체 시가총액은 5270여억 달러(574조원)로 코스닥시장의 2배가 넘는다.

시장의 56.6%는 비트코인이 차지하고 있고 이더리움(11.9%), 리플(5.7%), 비드코인캐쉬(5.4%), 라이트코인(2.7%) 등 5개 가상화폐가 전체의 82.3%를 점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핵심기술은 블록체인이다.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당사자 간 거래내역이 10분 단위로 블록(block)으로 묶여 저장되고 이를 체인(chain)으로 연결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컴퓨터에 공동으로 보관하는 일종의 분산장부 기술이다. 대형컴퓨터(서버) 한 곳에 모으는 것보다 여러 곳에 보관돼 사실상 해킹과 조작이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은 발행 총량이 2100만개로 정해져 있다. 현재까지 약 1700만개가 '채굴'돼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광을 캐듯 '채굴'이 진행될수록 품귀를 빚을 수밖에 없고, 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 속에 '묻지 마 투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각국 정부는 가상화폐에 신중한 자세다. 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상품에 불과하고 해킹이나 마약·도박 등 범죄조직의 비밀거래수단으로 악용될 뿐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국제통화기금 등 세계금융당국도 대안화폐는커녕 가상공간의 투기․도박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가상화폐를 무턱대고 백안시할 수는 없다. 비트코인을 실현시킨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기술로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데이터 안전성과 거래 효율성이 높아 금융(본인인증)·물류(이력관리)·의료(보험금 청구)·행정(투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출현으로 쌍방(P2P)거래가 가능해지고 블록체인 기술등장으로 보안 문제가 해결

되면 이를 결제할 수 있는 지급수단으로 가상화폐의 등장은 자연스런 순서다. 중간의 중개기관을 통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왔던 지금까지의 비효율적 거래들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결제혁명'도 가능하다.

과도기적 혼란이 극복되면 경쟁력 있는 가상화폐 중심으로 안정된 글로벌 가상화폐 시스템이 구축될 수도 있다. 가상화폐가 글로벌 통화로 발전하면 현재 각국이 각각의 화폐를 쓰는 것보다 거래비용이 확 줄어들 수 있다. 일본이 비트코인을 지급수단으로 인정한 것이나 미국이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시작한 것도 이런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이론적으로는 후속 매수자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으면 가격이 갑자기 붕괴되면서 투자자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우리 사회의 한탕주의 풍조와 맞물려 투기 광풍이 생겨났다.

세계 가상화폐 거래의 25%가 한국에서 이뤄지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하기야 국내 자본시장에는 고위험·고수익 자산이 부족하고, 도박도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부동산은 비싸고, 주식시장은 가격 상승 가능성이 낮아 전자상거래와 모바일 결제환경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이 고수익을 찾아 가상화폐 투자로 쏠리는 것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국내 일반 상점에서도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받는 곳이 늘어나는 등 가상화폐 거래는 갈수록 일상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책당국의 태도는 아직도 어정쩡하다.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내리지 않은 채 투기열풍차단에만 급급해하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발표된 범정부차원의 대책은 미성년자와 외국인은 거래를 못하게 하고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 및 매입과 지분투자도 금지시켰다. 투자자 보호 장치는 거래소 자율에 맡겨 거래소당 1인 1계좌로만 제한시키고 은행의 본인 확인과정을 거친 새 가상계좌를 이용토록 하는 자율규제안도 발표됐다.

가상화폐의 금전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제도권 안에 두고 규제하지는 않고 대신 투기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제도권 금융과 가상화폐 광풍사이에 차단벽을 세운 셈이다.

하지만 투기만 막는 단기적 대책은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못 된다. 블록체인은 가상화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범용기술이다.

미국처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가상화폐공개(ICO) 공시기능을 강화하고, 거래소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거래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이면서 투자자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다.

블록체인 기술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이며, 연관 산업들이 어떻게 혁신되고, 우리 기업들은 어디서 새 기회를 찾을 것인지에 관한 진지한 연구와 고민 없이 밀어붙이기식 대증적 대응에만 골몰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합리적인 규제의 틀을 만들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가상화폐가 4차 산업혁명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그 인프라와 생태계 구축을 준비할 때다. 시장의 '한탕주의' 진화에 매몰돼 가상화폐가 지닌 미래혁신의 싹까지 잘라서는 안 된다.

 


변상근 논설고문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한양대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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