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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 칼럼]

평화올림픽 다음은 '심판의 시간'?

조세일보 / 변상근 논설고문 | 2018.01.31 08:30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이 참가를 결정한 이후 곧바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선수단·응원단·예술단 파견도 숨 가쁘게 진행돼 왔다.

'건군절' 열병식 논란 등으로 금강산 합동문화공연이 취소되는 등 곡절도 없진 않지만 더 이상의 돌발사태가 없는 한 평창올림픽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에서 남북한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함께 입장하고,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까지 만들어 출전하는 상황의 반전(反轉)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를 위해서는 남북이 한걸음에 내달려왔지만 문제는 평창 이후다. 남북 간 연락채널이 복원되고 막혔던 육로도 비록 일시적이나마 다시 뚫렸다. 하지만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3개 항 가운데 군사당국 회담 개최에 대한 2항과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하자'는 3항은 아직 진전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남북대화가 “한반도에 다시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마련된 것”이라며 '바람 앞의 촛불'에 비유했다.

남북 간 대화가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만으로 끝난다면 “우리가 겪게 될 외교·안보상의 어려움은 가늠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 간 대화로 이어지고 다양한 대화로 발전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언론 국민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반도운명을 좌우할 '본게임'은 올림픽 이후다. 3월 18일 패럴림픽이 끝날 때까지 석 달 정도가 '시한부 평화'다. 이 기간 중 남북이 비핵화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북미대화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올해 중반 '심판의 시간'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벌써부터 나온다.

미국의 압박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한국의 요청으로 연기된 한미연합훈련은 올림픽 폐막 직후 재개키로 했다. 국방장관이 '전쟁계획'을 공언하고, '지상군 투입을 통한 북한 침공'얘기까지 미군 수뇌부에서 서슴없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행정부는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남북대화에 100% 지지를 표명했지만  평창올림픽이 북한의 선전장으로 이용될 까봐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개막식에 참석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방한이 “북한의 선전전에 맞불을 놓기 위한 것”이란 풀이도 따른다.

평화올림픽의 '평화'는 살얼음판이다. 이 기간 중 북한은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미국이 이를 방관할 리 없고 외교적 해법이 통하지 않으면 군사적 수단으로 위협 제거에 나설 것이 뻔하다. 미국은 자국에 대한 직접적 안보위협을 '전략적으로 인내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한 심판을 피하려면 북·미 대화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북·미간 치열한 대치국면에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비핵화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 미국의 목표다. 이는 제재와 압박에 북한이 견디지 못해 핵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핵을 체제보장과 생존수단으로 삼고 있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북미 양쪽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대화의 접점이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미국이 제재와 압박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군사적 해법을 위한 국제적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도리어 설득력을 갖는다.

남북대화가 북미대화의 계기를 마련하려면 우선 남북 간에 비핵화에 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 통일부장관이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자 북측은 “북남 사이 문제가 아니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비핵화가 빠진 남북대화는 한미 간 갈등과 동맹이반을 부추기고, 북한에 핵무장할 시간만 벌어줄 우려도 크다. 문재인정부의 딜레마다.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완화, 경제적 지원, 군사훈련 중단·축소, 체제보장, 평화협정 체결 등 은 모두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남북대화를 마다않는 배경에는 '우리 민족끼리' 이름으로 대북 제재전선을 교란해 제재강화의 동력을 차단시키고 남한을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는 방패로 삼으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핵문제에 돌파구를 열지 못하면 남북관계 복원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도 잘 인식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밴쿠버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없이는 남북관계의 지속가능한 진전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핵 포기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남북 긴장 완화는 적어도 한반도 이슈가 통제 불능이 되는 것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된다.

또 남북 대화가 가져오는 완화국면의 힘을 바탕으로 미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비핵화에 관한 외교적 해법을 만들어내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남북대화를 진전시키면서 동시에 북미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기에는 대내외여건은 최악의 상태다. 동맹국 미국의 견제와 의심의 눈초리는 전에 없이 따갑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면서 연이어 한국을 공격하고 있는 것도 불편한 미국의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핵 문제가 심화되고 남북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국민들의 대북인식 또한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노력이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로의 연결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미국의 군사적 해법에 반대할 명분마저 잃게 된다.

이미 '4월 전쟁설'도 나돈다. 한국이 겪을 전란보다 자국의 안전이 미국에게는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동맹이 반대하는 전쟁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감행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군사옵션이 외교적 해법의 뒷받침용이라고 미국 스스로 유보를 달고 있지 않는가.

이 틈바구니를 우리의 외교가 파고들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이유는 미국의 적대시정책이다. 비핵화와 맞바꿀 수 있는 북한체제보장 방안을 진지하게 마련토록 미국을 설득하고,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북한을 설득토록 양자 및 다자외교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 기간 중 한국을 찾는 주요 정상급 지도자들과의 다자외교무대가 그 시험대다. 남북이 잘 소통하면 미국도 한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국제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존재감도 올라간다. 또 한미공조가 잘 되면 북한 또한 남한을 더 의식하고 존중하게 된다.

'코리아 패싱'을 차단하며 한반도운명을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북미대화의 지렛대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재연기도 정부일각에서 거론되는 상황이다. 상호존중과 신뢰의 바탕에서 용미용북(用美用北)의 지혜로 북미대화로 가는 돌파구를 우리가 열어야 한다.


변상근 논설고문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한양대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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