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

글자 크기조절

글자 크기가 적당하신가요?

"OO씨 맞으시죠?" 납세고지서 내밀었더니…

조세일보 / 강상엽 기자 | 2018.02.12 07:57
납세고지서

#. 지방국세청 소속 A조사관은 아파트의 출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몸을 숨겼다. 한 손에는 세금고지서를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듯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아파트 출입구에 들어서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A조사관은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뒤따라 올라갔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응답이 있었다. A조사관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 뒤 고지서를 내밀었다. 납세신고에 탈루가 있어 경정·고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남자는 '그런 사람 모른다'며 성급히 문을 닫았다. A조사관은 좁은 현관문 틈새로 고지서를 밀어 넣었다. 남자는 이를 다시 문 밖으로 내밀면서 이들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결국 A조사관은 구겨진 고지서를 들고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국세청이 세금을 고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국세기본법에선 교부, 우편, 전자송달 등의 방법으로 세금고지서를 납세자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납세자의 집에 등기우편으로 세금고지서를 보내고, 부재로 인해 세무서로 다시 반송됐을 경우에는 세무공무원이 현장에 직접 나가는 고지서를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납세 고지를 위해 세무공무원이 납세자의 주소지에 방문했다가, 납세자의 '모르쇠 식' 회피로 고지서 송달에 어려움이 많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현장에선 "징세 행정의 첫 단추가 잘 꿰어지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들리고 있다.

지방국세청 소속 한 관계자에 따르면 고의적인 납세 회피로 인해 국고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선 세무서 현장에서 높게 형성되고 있다. 지방국세청 관계자는 "납세고지서 송달을 고의로 회피하면서 세금이 부과되지 않은 채 제척기간이 지나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납세 회피를 막고자 세무서 앞 게시장(시·군·구청 게시판, 관보 게재 등)에 '공시'하는 방식(공시송달)으로도 세금을 고지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소리다. 단 공시송달은 '세무공무원이 2회 이상 납세자를 방문해 서류를 교부하려고 했으나 수취인이 부재중이라는 점'이 확인된 경우에만 허용된다.  

공시송달의 적법성 여부를 두고 과세관청과 납세자가 법원이나 조세심판원에서 잦은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납세자는 고지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고지된 과세처분에 대해 불복할 수 있다. 과세관청이 고지서를 송달하고자 노력을 했는지를 따져묻는 것이 대다수다.

관세관청은 송달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납세자는 과도하게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징세 편의냐, 납세자 권익이냐

공시송달은 국세청 입장에선 당장은 징세의 편한 도구일 수 있겠지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가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지난해 조세심판원에 납세고지서의 공시송달이 적법한지를 따지는 심판청구 사건(조심 2017중2341)이 있었다. 당시 국세청은 우편물이 수취인 부재로 반송되었다는 이유를 근거로 공시송달을 진행했다.

결과는 납세자가 이겼다.

납세고지서를 송달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 심판원의 판단이었다.

과거엔 납세고지서 도착안내문을 공용주택 출입구 옆 기둥에 붙여놓고 공시송달 한 사례도 있다. 납세자는 뒤늦게 납세고지 사실을 알고 이의신청 했지만, 국세청은 세금을 고지한 지 90일이 넘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적법한 요건을 갖춘 송달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납세자들도 종종 생겨나고 있다. 조세심판원 심판례(조심 2017중2837)에 따르면 부과제척기간 만료가 임박할 때까지 납세고지 송달을 계속 회피하다 세금이 부과되자 억울함을 호소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따져보니, 납세자는 납세고지서 송달이 예상되자 주소를 이전하고 가족은 행방을 감추는 식으로 고지서 수령을 계속적으로 회피한 사실이 드러났다. 부과제척기간이 지났기에 부당한 과세처분이라는 납세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도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때…

징세 업무의 최일선 조직인 세무서에선 공시송달 요건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선 세무서 한 관계자는 "피해 다니는 납세자 뒤를 쫓기만 해서는 징세에 어려움이 있다"며 "고의적으로 회피한다면 이를 규제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칫 '징세 편의'로 비추어질 수 있으나, 고의적인 납세의무 회피를 막아야 한다는 관점에선 필요성이 충분하다. 

지난해 공시송달 요건을 넓게 보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된 적이 있다.

국세기본법이 아닌 '우편법 시행령'이었다.

지난해 4월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는 '우편물 배달의 특례'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우편법 시행령을 내놓은 바 있다. 개정안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수취인이 일시부재일 경우 수취인의 신청이나 동의를 받아 공동주택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

이 같은 조치가 현실화됐을 땐 납세고지서를 경비원에게 전달해도 송달 효력이 생길 여지가 컸다. 하지만 우편물 대리수령 과정에서 모든 책임을 경비원이 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반발에 막혀 입법화는 무산됐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악의적 납세회피에 대해선 공시송달 요건을 완화하는 식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다만, 10명 중에 1명이라도 피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어떤 경우에 완화 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조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화끈한 토픽·쏠솔한 정보 조세일보 페이스북 초대합니다.

주요기사

Copyright ⓒ Joseilbo.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