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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 칼럼]

트럼프의 무역압박은 한국 길들이기?

조세일보 / 변상근 논설고문 | 2018.02.21 08:30

한국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보복발언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 주 백악관에서 상·하원 의원과 무역을 주제로 공개 간담회를 하면서 중국은 10번, 일본은 4번 거론한 반면 한국은 무려 17차례나 언급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GM 군산 공장이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며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소식은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미국 일자리의 본토귀환'으로 자신의 공인 것처럼 포장했다. 

그러면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는 재앙”이라며 “공정한 협상을 하거나 폐기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GM은 한국GM 군산공장을 5월 말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공장 폐쇄 이후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겠다는 발표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한·미 FTA 불공정성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를 자주 언급해왔지만 양국 간 재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말 이후 다시금 강경발언을 쏟아냈다는 점이 주목을 요한다. 대선 캠페인 때 트럼프는 미국 일자리를 도둑질해 간 주범으로 중국과 멕시코를 지목했었다. 그 주공격 대상이 중국이나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옮겨온 것이다. 

지난달엔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문 재인 대통령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세이프가드 철회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철강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고 지난 주말 53%의 고율관세 부과대상에 한국산 철강제품을 포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는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에 맞춰져 있다.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그는 통상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백인 노동자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

이 시간표에 '동맹 관계'는 없다. 지난 12일에는 보복용 수입관세인 '호혜세'를 예고하면서 “우리는 중국 일본 한국에 어마어마한 돈을 잃었다. 그들은 25년째 살인(미국의 무역 적자)을 저지르고도 어떠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이용한 국가 중 동맹도 있지만 무역에서는 동맹이 아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일본과 한국을 재건했다. 한국은 우리가 지금도 방어해 주고 있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 그들은 이보다 못한 소액만 돌려줬다” “정말 불공정하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미국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무역촉진권한(TPA)이 3월말로 종료되는 것을 감안하면 11월 중간선거까지 트럼프가 통상 제물(祭物)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 한국밖에 없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18일 발표된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거한 철강 안보영향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 상무부는 과도한 철강 수입으로 인한 미국 철강산업의 쇠퇴가 미국 경제의 약화를 초래해 국가 안보를 손상할 위협이 있다고 결론내리고 한국을 포함한 12개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53%의 관세 부과를 권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까지 이를 최종 결정한다. 

미국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 중 캐나다, 일본, 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은 관세부과대상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한국산 철강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지만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국가그룹에서 '최우선 동맹국' 한국이 제외된 것이다.

232조 조사의 취지가 중국을 겨냥한 만큼 중국 철강재를 가공해 미국에 재수출하는 한국에 불똥이 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한중 간 교역·산업 관계가 깊어지면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부수적 피해도 따라서 커지게 돼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취임이후 각종 관세부과로 무역상대국들을 압박해왔지만 엄포에 그친 것도 많다. 

특히 최대공약이자 첫 보호무역 정책이었던 NAFTA 재협상이 지지부진해진 점이 한국을 향한 무역 공격을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NAFTA를 폐기할 경우 경제패권국으로서의 미국 위상을 잃게 된다는 미국 내 반론이 드세어지면서 “NAFTA를 탈퇴하겠다”던 트럼프의 엄포가 공허해진 것이다. 게다가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우리 정부의 양보 없는 맞장대응이 트럼프의 부아를 돋우고 있는 점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통상공세는 업체가 먼저 제소하고 정부가 조사에 착수해 상대국 업체를 협공하는 모양새다. 미 세탁기 업체 월풀의 제소로 미 정부가 삼성전자·LG전자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고 최대 50%의 고율 관세를 매긴 게 대표적이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도 한국정부의 곤경을 의도적으로 노린 측면이 크다. 정부가 혈세로 도와준다 해도 한국GM이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고 지원하지 않고 철수하도록 놔두면 국내 30만개 일자리가 사라져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경제에 관한 한 동맹국은 없다는 점을 트럼프가 명확히 한 이상 안보와 통상의 분리대응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우리 입장에서 이것이 쉽지 않다.

대북제제와 압박에 미국과 찰떡공조 중인 일본은 대미무역흑자가 우리의 3배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더 많은 대미투자를 주문하고 아베총리가 화답하며 통상공세를 빗겨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미국의 불합리한 보호무역조치에 대해서는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고,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정부당국에 주문했다. 한미동맹을 이유로 미국의 무역제재에 처음부터 양보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런 우리의 정면대응에 트럼프가 다시 강공으로 맞부딪혀 올 경우 반도체와 자동차로 통상압박이 확산되는 등 문제는 더욱 커질 우려도 다분하다.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다고 하지만 이 절차는 3년 가까이 걸리고, 그 기간 우리 기업은 미국의 수입 장벽에 가로막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미국이 '동맹은 동맹, 통상은 통상'이라고 선을 그었다지만 작금의 통상공세는 한미 FTA 개정 압박을 위한 '협상용 카드'를 넘어 미국이 통상 문제를 안보문제와 연계해 동맹국 한국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북압박과 남북화해를 둘러싼 한미 간 불편한 기류가 무역압박을 통한 '한국 길들이기'로 이어졌다는 분석들이다.

안보와 통상 분리대응 원칙에도 불구하고 안보갈등이 통상갈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제재․압박 공조사이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문재인대통령에게 통상갈등이라는 무거운 짐 하나가 더 얹어진 것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한양대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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