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경제환경 속에서 최근 맞벌이 가구가 보편화되고 있는 가운데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사회 흐름 속에서 '할빠'와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할빠'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합성어로 육아를 전담하는 할아버지를 일컫는다.
대세로까지 자리잡아가고 있는 황혼육아 현상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이가 있다. 느긋한 노후를 보내야 할 68세의 나이에 2명의 손자를 돌보며 어느 순간 '할빠'가 되어버린 세무사가 있다.
부산지방국세청에서 29년 동안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한 뒤 퇴직, 현재는 부산 동래구에서 개인 세무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상인 세무사(사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건강하고 일 할 수 있을 때 아들과 손자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벌어 은행에 저축하는 것보다 더욱 값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노인들이 할 일이 없어 무료하게 살아가는 것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록 돈 버는 것보다 힘들다는(?) 육아이지만 자식과 손자에 헌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육아를 통해 그는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할빠'의 고군분투 육아 도전기
이 세무사도 한 때 가정을 위해 앞만보고 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때문에 노후만큼은 주말농장을 가꾸면서 아내와 함께 여유롭게 보내길 소망했고, 퇴직 전부터 약 600평 규모의 농장도 가꾸기 시작했다.
전원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노후생활의 단꿈은 그저 단꿈이었다. 손자들이 줄줄이 태어나면서 이 세무사에게도 예상치 못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맞벌이하는 큰 아들 내외를 대신해 아내와 함께 아이를 대신 돌봐야 할 일이 자주 생겼고, 어느덧 둘째 손자까지 맡게 됐다.
처음에는 퇴근 후 손자들과 놀아주며 아내를 돕는 역할이 전부였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손자들과 보내면서 육아의 방식이 과거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과거에는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인 육아 방법이었으나 지금의 육아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무사는 옛날 교육방식에서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손자를 제대로 못 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대식' 육아 공부를 시작했다. 늦은 나이였지만 시중에서 잘 팔린다는 육아서적을 모조리 읽는 것부터 시작해 각종 육아전문 사이트까지 두리번 거리며 육아정보를 수집했다.
그 노력으로 처음에는 기저귀 한 번 갈아본 적 없던 그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볼일 본 손자의 엉덩이를 씻기고, 주사 맞기 싫어 바닥에 드러눕는 손자를 어르고 달랠 줄도 알게 됐다고.
직접 쓴 육아일기, "훗날 손자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요"
이 세무사는 부족한 글솜씨를 발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사진과 함께 꼼꼼히 기록했다. 젊었을 때 취미로 배워둔 사진도 추억을 기록하는 데 한 몫 했다.
나이를 먹다 보니 때로는 바쁘고 몸이 피곤해 일기를 미뤄 쓰다보면 기억이 금방 어렴풋해졌다. 그래서 늦은 밤이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그날의 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부득이하게 당일 일기 쓸 거리가 되지 못한 짧은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들은 스마트폰에 메모해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주제에 맞는 글을 끄집어 내 다시 정리하기도 했다.
이 세무사는 처음엔 손자들이 훗날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어 일기를 적기 시작했지만 맞벌이를 하고 있는 젊은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는 데 자신의 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희망했다.
또 조부모들이 피할 수 없어 황혼육아를 맡게 됐을 때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그동안 정성껏 작성한 육아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손자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해두는 것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나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손자의 육아문제가 인생의 짐이 아닌 가정의 축복이며, 한 가족의 꿈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 책을 출간하게 됐어요."
본업이 세무사인 그는 세무사무실 운영도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세무사는 "주로 부산 지역의 법인을 상대로 세무자문을 하고 있는데 기업체의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무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 우리 사무실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사무원들의 숙련된 업무처리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그는 기본적인 기장신고를 비롯해 방문컨설팅을 꾸준히 제공하면서 기업의 고민이나 문제점 등을 적극적으로 상담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시대의 당당한 '할빠' 이상인 세무사는?
▲경남 창원 ▲부산대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 ▲국세청 근무 ▲이상인세무회계사무소 대표(현) ▲저서 : 할빠의 육아일기(2018)·은퇴 후 귀농, 퇴직전에 준비하기(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