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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 칼럼]

‘평화,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길

조세일보 / 변상근 논설고문 | 2018.04.18 08:30

문재인 정부는 27일 열리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표어로 '평화, 새로운 시작'을 내걸었다. 우리가 주도하고 주변국들 호응 속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고,  이를 계기로 한반도 냉전구조를 허물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긴 여정에 들어선다는 얘기다. 

그 첫 단추인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 개선의 세 가지다. 이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은 한 달 뒤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와도 맞닿아 있다.

핵심목표는 비핵화이지만 목표에 이르는 셈법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의 요구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다. 선(先) 핵포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고집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며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요구한다. 비핵화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고 단계별로 행동 대 행동으로 보상을 받자는 취지다.

우리는 비핵화와 북한 체제안전 보장을 한꺼번에 맞바꾸는 통 큰 해결을 원한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명시적 핵 포기 이행의지를 확인받고, 이를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시켜 핵 폐기와 관계정상화, 제재해제, 평화협정을 아우르는 '통 큰 합의'를 이끌어내 보자는 것이 문대통령의 복안이다.   

상황에 따라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킬 수 있다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의 중대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문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릴레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핵과 평화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의욕에 차 있다.  

정상회담 준비위에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대북제재 해제와 북미 교역 정상화는 물론 개성공단 가동재개 및 확대에 미국의 투자 유치 등 경제교류방안까지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단계적 보상에 반대하는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게다가 남북미 비핵화게임에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끼어들면서 판을 키우고 있다. 한반도 주변 6개국, 즉 남·북·미·중·일·러가 이해당사자로 참여하는 6자회담은 합의의 효력을 높이고 이행을 효율적으로 보장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협상의 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의 복잡한 외교프로세스 대신 당사국 정상 간에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포괄적 타결을 추구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화의 틀을 확장하는 것은 비핵화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우려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선(先) 남북-북미, 후(後) 6자회담' 수순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변수는 중국이다.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축경로'로서 남북, 북미회담의 중요성을 중국 측에 적극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것도 문대통령의 또 다른 과제다. 

북한은 그동안 비핵화 이슈에 있어 한국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북미간의 문제라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만 다루겠다고 나선다면 한국의 '징검다리'역할은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전개는 예전과는 판이 많이 달라졌다. 비핵화 논의의 장은 평창올림픽을 매개로 남북이 열어젖혔다. 여기에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으로 호응해왔다.

최근 형성된 남북 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남북이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남북정상간 핫라인(직통전화)까지 구축한다면 우리가 '운전대'를 잡고 북미 사이에서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능히 해 낼 수 있다.   

미국은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하고 북한은 불가역적인 체제보장을 요구한다. 한국은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강조한다. 비핵화․체제보장․평화정착 셋을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경우 포괄적․단계적 접근이 현실성을 갖게 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가능성은 결코 낮지만은 않아 보인다. 북한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외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진 중이다.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약속했고,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안팎으로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과거의 점진적 방식을 거부하고 임기 내 일괄타결방식의 통 큰 결단으로 전세역전을 노릴 가능성도 크다.

문재인정부가 두 차례 진보정부들과는 달리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한·미 입구론→남북 경유론→북·미 출구론으로 해법의 방향을 설정한 것도 미국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인이다. 

과거 6자회담 틀 내에서 세분화된 단계의 완성이 되면 마지막으로 핵폐기 단계에 진입하는 점진적 방식과는 달리 큰 틀에서 합의한 다음 단계적 이행으로 갈 가능성도 커졌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체제보장․평화정착 셋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포괄적 합의를 이루어내고 뒤이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사항들을 3개의 패키지(현재·미래핵, 과거핵,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나누어 일괄적 타결을 유도해 볼 수 있다.

후속의 비핵화 다자회담에서는 단계적으로 계획을 수립, 이행과 검증을 완료토록 하고 이에 상응해 제재해제나 한반도 평화협정, 미국과의 대사급 외교관계 개설 등을 추진하는 접근방식이다.

트럼프는 북핵문제에서 1년 내 완전폐기를 주장하는데 반해 김정은의 비핵화 시간표는 길게 잡혀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은 한국이 우선해야 할 일은 트럼프의 시간표와 김정은의 시간표를 절충해 양자 모두 동의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외국의 비핵화 모델들을 참고해 한국형 모델을 만들고 이를 위한 '문재인의 시간표'를 갖고 미국과 북한은 물론 중․ 러․ 일 등 다자회담 국가들을 설득하는 외교역량을 보여야 한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역은 남북한 양자 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모두 자국의 이익을 제쳐두고 한반도 냉전구도해체에 발 벗고 나서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중국 견제 등 동북아전략상 '불량국가' 북한의 존재가 필요하고, 중국은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긴장된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으며, 일본 역시 북한을 핑계 삼아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통일도 처음엔 주변 강대국들이 모두 반대했다. 동서독이 신속하게 경제·사회 통합에 합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독의 콜 총리가 주변 강대국들을 설득해 내면서 통일을 이루어냈다. 한반도의 경우도 당사자인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첫 발을 어떻게 딛느냐가 중요하다. 

한반도 운전대를 우리가 확실히 잡고 남과 북이 함께 지향점을 만들어가면서 주변국들을 설득해 나갈 때 한반도평화체제는 물론 궁극적인 통일도 기약될 수 있을 것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한양대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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