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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상속설계 이야기-(13)]

"자서전을 쓰자"

조세일보 / | 2018.05.02 08:06

출처 올리버색스재단 페이스북

◆…출처 올리버색스재단 페이스북

"결코, 사람이 죽으면 그 누구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남기고 그들은 떠나고, 그것은 유전적이고 신경적인 운명이기에. 하나의 독특한 개인으로 살아남아 각자의 길을 걷고, 각자의 생을 살며, 각자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이들의 운명이기에. 두렵지 않은 척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지배하는 심정은 고마움에 가깝습니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이 받았고 얼마간은 되돌려 주었습니다. 읽었고 여행했고 생각했으며 글을 썼습니다. 세상과 관계를 맺어나갔고, 작가와 독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나는, 느끼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아왔으며 이는, 그 자체로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렸던 올리버 색스는 2015년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뉴욕타임스>에 'My own life'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죽음을 정확히 16일 앞두고서도 지독한 통증 속에서 'Sabbath(안식일)'라는 마지막 칼럼을 보냈다.

"살면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느끼게 될 때, 마침내 명료한 의식 속에서 쉴 수 있게 된다"

같은 해, 색스는 이미 『온더무브』라는 수백 페이지짜리 자서전을 출간했다.

기원전 80~15년경을 살다간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우리는 반드시 선조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질투심에 빠져 침묵하는 대신에 모든 종류의 사상을 기록해서 후대에 남겼다"(『건축학』)라고 했다.

기록문화가 곧 인류사요, 가족사다.

로버트 단턴이 규정했듯 우리는 '문자 공화국'의 시민들이다. 문자 공화국 시민의 기본자질은 '읽고, 쓰고, 말하기'다. 그리고 한 가지 더하자면 '듣기'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의 인생을 보고, 듣고, 읽어야 한다. 부모는 인생을 말하고, 써야 한다. 직접 글로 옮길 수도 있고, 대담의 형태여도 된다. 말로, 글로, 녹음으로, 영상으로 형식은 상관없다.

그래서 후손들이 선대의 삶과 생각을 보고, 듣고, 읽을 수 있으면 된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선대의 생각, 사상, 경험, 철학 이런 것들이야말로 삶의 보다 본질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상속설계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 기록문화가 된다. 어떤 형식이건 사상과 철학을 남기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자서전이 꼭 상속의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살아계신 부모님들에게도 자아와 삶의 본질을 정리하고 재발견하게 되는 긍정적 계기가 된다는 설명도 있다.

"그동안 잊고 있던 자기의 발견이다. 지금보다 건강한 나, 최선을 다해 살았던 나, 가족을 책임졌던 나, 사회적 역할을 다했던 나의 발견이다"(임순철, 『고령사회에서 자서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후손을 남기는 것이 생물학적 차원의 DNA 상속이라면, 재산을 남기는 것은 세법이나 상속법 차원일 것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말과 글을 통해 부모의 경험과 지혜를 남기는 일은 우리 시대가 찬양하는 인문학적 차원의 상속이다.

자녀들은 이를 통해 부모의 삶을 반추하고, 무엇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이며, 자신은 후손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혜와 경험들이 모여 가족사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아버님께서도 단편적인 기록은 남기셨지만, 자서전이나 회고록 수준의 글은 남기지 않으셨다.

돌아가신 지 몇 년 뒤,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최삼현, 아버지를 기억하다』라는 책을 썼다.

일생을 기록하고, 부록으로 아버님의 학적부, 성적표, 상장 등 여러 자료와 필적들을 묶었다. 손자, 손녀들의 편지도 실었다.

대체, 상속의 본질은 무엇일까.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나의 삶이 후손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지속되길 바라는 그런 마음일까.

읽고, 쓰고, 말하기는 권리이자 의무다.


최재천 변호사

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 (전)
17대, 19대 국회의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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