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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 칼럼]

비핵화 빅딜로 한반도 새 시대를

조세일보 / 변상근 논설고문 | 2018.05.02 10:25

한반도 비핵화가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디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확인했다”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핵 없는 한반도'는 과거 남북 간 비핵화 협상 때 오갔던 문구다. 그러나 이번엔 김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문서에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됐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게다가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다짐했다.

북한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결정했다. 이달 중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하고 현장을 외부에 공개하겠다고 제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핵 폐기 과정의 '입구'에 해당하는 핵동결 조치로 받아들이며 북한 비핵화 진정성의 보증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핵심목표는 비핵화였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명시적 핵 포기의지를 확인받아 북미정상회담으로 연결시켜 핵 폐기와 관계정상화, 평화협정을 아우르는 '통 큰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문대통령의 목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문서에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됐다는 점에서 북미회담의 길잡이로서의 판문점 정상회담은 일단 성공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적 목표로 내세운 것에 고무됐다”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에 기대감을 보이면서 회담을 서두르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완전한 비핵화가 어떤 내용일지를 정의하는 작업, 그것을 위해 미국이 북한에 해줘야 할 것들을 구체화시키는 일은 모두 북미정상회담의 몫이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관계 개선 조치들도 추진할 국내외적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해야 남북정상 간 합의내용도 이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판문점 정상회담은 반쪽 성공에 불과하다.

더구나 북핵문제는 북미만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우리문제다. 우리가 당사자로 중재역할도 하며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비핵화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은 동전의 양면관계다. 남북 정상은 정전(停戰)협정 체결 65주년인 올해 안에 종전(終戰)선언을 거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평화체제 구축 로드맵도 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북한이 내세운 비핵화 조건을 충족하는 상황을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주목할 점은 올해라는 종전선언의 구체적 시한이 설정됐다는 점이다. 남북이 비핵화의 시한을 못 박지 않았지만 종전선언의 시한을 설정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의미도 있다. 연내 종전선언 단계로 실제 나아가려면 북한이 모든 핵시설에 대한 신고와 가동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등 더 진전된 조치로 화답해야 되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의 주체도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으로 보다 구체화됐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한 뒤 남·북·미에 중국을 더해 종전선언을 완성하는 큰 그림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한국전쟁은 끝날 것”이라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에 확실한 힘을 실어주고,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끄는 데 중국 시진핑 주석의 도움이 매우 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를 확인하면서 미국의 분위기는 일단 긍정적이다.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협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전격적인 합의가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비핵화는 신고-불능화-폐기-상시 검증 제도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완벽한 로드맵을 결정하지 않으면 타결이 힘들고, 설령 어렵게 타결되더라도 이행과정에서 탈이 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와 그에 뒤따르는 큰 틀의 로드맵을 정상 차원에서 합의한 뒤 구체적 이행을 단계적으로 해나가는 톱다운 방식의 '제3의 방안'으로 중재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 폐기와 체제보장조치를 통 크게 맞바꾸는 빅딜의 여건도 무르익고 있다. 체제보장만 된다면 굳이 핵을 갖고 어렵게 살 이유가 없다며 핵 실험장 폐쇄 등 선제적 조치들을 취하는 데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기가 읽혀진다.     

트럼프대통령 또한 오는 11월 미국 의회 중간 선거를 앞두고 북핵문제 해결이 절박한 과제다. 선거 전까지 미국본토에 대한 북핵 위협을 제거하고 한반도 종전협정까지 이끌어낸다면 공화당 승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최대한의 압박을 앞세운 강한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핵전쟁이 났을 것이라며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공(功)을 부각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남북정상이 한반도의 완벽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합의하면서 트럼프의 경제제재와 무력사용 카드도 위력이 떨어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로 갈수록 대북 경제제재의 효과는 감소되기 마련이고, 비핵화 평화 메시지를 연발하는 북한에게 새삼스레 군사옵션이나 무력을 사용하기도 어렵다. 남과 북이 뜻을 모은 한반도 비핵화방안에 트럼프가 도리어 뭔가 호응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두 승부사의 담판과정에서 통 큰 합의가 나올 경우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운전자'를 자임한 문재인의 중재외교가 제몫을 해내야 할 때다.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과 핵 위협이 없을 것임을 전 세계에 천명한 평화 선언이다. 온 세계가 이를 환영하며 지지 의사를 밝혔고, 한반도 정세변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이해당사국들의 행보 또한 빨라지고 있다. 

휴전선에서 대북확성기가 철거되는 등 남북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도가 쑥쑥 나가고 있다. 큰 흐름을 읽고 초당적 지지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정착을 뒷받침하기는커녕 냉전적 사고와 반북대결구도에 갇혀 정쟁을 일삼는 우리의 정치판이 한심할 뿐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한양대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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