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 추이. 자료=네이버 제공
국제유가가 슬금슬금 오르더니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를 계기로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 18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71.28 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7월물도 브렌트유가 배럴당 78.51 달러에 이르고 있다.
국제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의 감산,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로 공급에 추가적인 차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재개하면 이란의 석유 수출이 급감할 수도 있다.
국제 시장에서 원유는 대부분 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달러의 가치가 유가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품구조를 보이고 있다.
텍사스산 원유는 지난 2016년 2월 12일 배럴당 26.21 달러로 최저치를 기록한 이래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 왔다. 지난 18일 현재 170% 넘게 올랐고 올해 들어서 지난해보다 20% 넘게 상승했다.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경제가 더욱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금리상승으로 인한 신흥국 자본유출 우려는 달러 강세 현상을 가져오고 신흥국 환율정책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원화 환율도 신흥국 자본유출 우려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의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82.00원에 이르렀다.
유가가 오르면 채권, 외환, 주식 등 주요 자산 가격이 모두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물가 오름세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고조될 수 있다.
미 국채 10년 금리는 4월 이후 23bp 올라 3%선을 넘어섰고 달러화 강세로 이어지며 달러인덱스도 2.1% 상승했다.
통상적으로 유가는 시장 안정에 따른 위험자산 선호나 달러화 약세에 연동돼 움직이나 올해들어 달러인덱스와 유가의 상관관계가 플러스로 반전됐다. 유가 상승이 오히려 강 달러를 야기한 주요 변수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가는 다른 금융 변수에 영향을 주는 독립 변수가 됐고 유가 방향성에 따라 향후 금융시장 흐름이 좌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파른 유가 상승에 따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생산 및 소비경기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가가 적정 가격을 넘어서면 원가 부담이 판매가로 원활히 전가되지 못해 마진이 축소된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할 수 있겠으나 서부 텍사스산 원유가 배럴당 70달러 내외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가는 70 달러 부근에서 등락할 때 산업생산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금리 상승을 유발하는 인플레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임금과 같은 수요견인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힘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실현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유가 상승 시대에 에너지·화학업체들은 제품가격 상승보다도 원가(생산비) 부담과 마진 축소로 연결되는 성향을 보였다. 경기둔화 시그널이 감지될수록 유가상승분을 제품가격에 전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경우 유가가 오르는데도 달러는 강세를 나타낼 때 실물경기가 양호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경기가 좋아서 기업들의 투자(capex)가 늘고 덩달아 자원수요가 증가하며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인플레이션 기대 확대로 연결되어 연준(Fed)이 금리를 올리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관계다.
유가 상승은 우리나라 환율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분이 제품에 반영되며 비용인상(cost push) 인플레이션이 금리를 자극하게 되면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며 원화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은 유가 상승에 이어 남북한 고위급 회담 연기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복합적인 변수를 맞아 소폭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은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고 유가가 오르는 안정적인 시나리오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달러는 더 오르고 유가가 반락하는 금융불안 중 어느 쪽으로 전개될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원화의 환율변동 폭은 유가와 달러화의 관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겠지만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요소를 하나 더 고려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