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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근 칼럼]

‘6.12 핵 담판’, 빅딜 이후가 더 중요하다

조세일보 / 변상근 논설고문 | 2018.06.07 08:30

앞으로 남은 며칠사이 또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것이 확실해졌다. 백악관은 회담 1주일을 앞둔 5일 북미 정상회담이 12일 오전 9시(싱가포르 현지시간)에 열린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반도의 전쟁 발발 위험성을 낮추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북핵 위기를 풀어보려 한다는 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열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단 성공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시기와 절차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상응하는 북한의 체제안전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빅딜을 성사시킨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비핵화 수준이나 방식을 놓고 간극이 너무 커 양측이 모두 만족할 대타협은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 순순히 핵무기를 모두 미국에 내주고 모든 핵시설 사찰에 동의한다 해도 실제 비핵화를 확인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변 핵시설을 시찰한 적이 있는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북한의 비핵화가 최장 15년이 걸릴 수 있다며 '단계적 비핵화'가 현실적 해법임을 강조했다.

더구나 이번 회담은 정상 간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는 데다 준비기간이 워낙 짧아 비핵화 로드맵을 세밀하게 짜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다. 정상 간에 포괄적인 타결에 성공한다 해도 그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후속 협상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북·미 간 불신의 골은 여전히 깊어 조그만 오해와 소통 부재에도 판이 깨질 수 있다. 가까스로 빅딜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길 경우 '세기의 회담'은 수포로 돌아간다. 

북․미 협상의 핵심은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의 맞교환이다. 판문점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고 일관하며 확고하다”고 거듭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영철 특사를 접견한 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고, 미국이 이를 신뢰하는 상황이라면 비핵화 약속의 핵심은 핵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행동조치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취하느냐에 달려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표현대로 '더 크고, (과거와) 다르며, 더 빠르게(bigger, different, faster)' 진행되는 비핵화다.

미국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와 그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국외로 반출해 해체함으로써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줄 것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더 크고 빠른 초기비핵화 행동조치'에 상응하는 체제안전보장 조치의 조기 약속을 받아내려 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경찰국가로 각종 전략자산으로 언제든 제3국 침공이 가능한 만큼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북·미 양측이 종전 선언 합의,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 상호개설 등을 통해 진정한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외교적 과정을 행동 대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행방법이다. 우선 핵 폐기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북한이 모든 핵시설과 핵물질 보유 현황에 관한 목록을 사실대로 공개, 보고하고 완전한 검증 절차에 동의하는 일이다. 보유한 핵탄두와 ICBM의 반출과 핵물질 및 장치 관련시설의 불능화 및 폐기를 완결하는 신속한 일정표에도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비핵화는 한꺼번에 달성하기 어렵고 속도는 내되 잘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트럼프대통령은 김영철 특사와 만난 뒤 '6월 12일은 과정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빅딜이 있겠지만 이는 프로세스의 시작이어서 서명은 없을 것” 이며 추가적 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북미 정상 모두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계적으로 하더라도 미국이 속도감 있는 비핵화를 고집하고 있어 올해 연말까지를 1단계로 설정하고 2020년을 두 번째 완성단계로 설정하는 비핵화 로드맵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분위기다.  

북한체제보장 방안 또한 비핵화 못지않게 복잡하고 미묘한 이슈다. 트럼프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나올 수 있다”고 운을 떼었고 이를 계기로 종전선언 추진을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도 현실화되고 있다.  

남북미가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종전선언을 함께 한다면 한국전쟁의 종료선언을 넘어 한반도에서 더는 전쟁이 없을 것임을 다짐하는 것이 돼 체제보장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후임 행정부가 뒤집을 수없는 조약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 협정(treaty)을 요구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상원에서 북미합의의 표결 인준을 언급하고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에 관해 '협상의 여지'를 시사한 것은 회담성공에 고무적이다.

모두가 비핵화 속도를 강조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와 '되돌릴 수 없는 안전보장'은 서로 간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그들이  핵문제 발생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종식을 전제로 한다.

트럼프가 북미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어도 상원이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인권 문제 등을 포함시키라며 인준 문턱을 높일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워싱턴 분위기 속에서 의회 또는 민간 차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통한 반북 '적대'활동은 행정부가 막을 수도 없다. 대화를 파기하고 대결로 회귀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는 상태다.  

미·북 정상회담 자체만으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대통령과 당당히 마주앉는 위치에 올랐다. 중국과의 관계복원에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향후 미국의 군사적 옵션은 물론 최대 압박정책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신뢰구축에 적극 나서야하고 신뢰가 쌓일수록 비핵화의 속도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 

문제는 어디로 튈지 모를 트럼프의 불확실성에 도사려있는 트럼프 리스크다. 트럼프는 “최대압박이란 용어사용을 원치않는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있다”, “한 번에 (합의가) 성사된다고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여전 오락가락 행보다. 

가시적 성과에 집착해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미 본토에 대한 공격능력 제거' 정도로 조정하고 북핵 동결을 장기적으로 용인하는 경우, 정반대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을 보이며 빅딜을 박차고 회담장에서 걸어 나와 군사적 옵션의 명분으로 삼는 경우 등 양극단 모두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2일까지 남은 며칠이 결코 짧지만은 않다. 빅딜에 대한 과잉기대나 우려를 접고 '디테일(세부각론)의 악마'에 대비할 때다.
  


변상근 논설고문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한양대 겸임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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