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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화의 무역이야기]

북한 장마당 생태계 알아야 돈버는 시대

조세일보 / 홍재화 필맥스 대표 | 2018.06.27 08:30

장마당이란 무엇인가?
뭐든지 공산당이 중앙에서 연간 생산과 소비 계획을 세우고 이대로 경제가 흘러가는게 북한일 줄 알았다. 그런데 북한에도 돈암시장, 동대문시장처럼 물건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고파는 시장이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공산당식의 계획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서, 자연히 은밀하게 북한에도 시장이란 게 생겼다.

북한에 시장화 현상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후반 무렵 계획경제 시스템 작동에 애로가 조성되면서부터이다.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어 자재 공급 체계와 배급 제도가 원활히 작동되지 못하자, 북한 당국은 당시 공장·기업소 등에 '8.3 인민소비품' 생산과 부업 밭을 허용해 주고, 10일장 형태의 농민시장이 상설 시장화 하는 것을 허용해 주었다.

이후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식량 미공급 현상이 확산되어 나가자, 농민시장은 암시장 형태인 '야시장', '장마당' 등으로 발전해 나가고 점차 비합법적 공간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나갔다. 농민시장에서 불법 거래 상품이었던 쌀·옥수수 등 식량과 공산품 등이 주요 교환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 배급제가 중단되었을 당시 생존을 위한 식량 획득 목적으로 '단순 거래자'로서 농민시장에 등장했지만, 여러 차례의 교환활동을 통해 부의 축적을 경험하며 화폐 자본을 축적해 나갔고, 일부는 상업 자본을 축적하여 '돈주'로도 성장해 나갔다.

장마당에는 공장·기업소 자산의 전유, 약탈·탈취 등을 통해 유입된 재화, 텃밭·소토지 등에서 경작된 농축산물, 개인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물품, 국제사회의 지원 물자, 북·중 간 공식·변경 무역 및 밀수 등을 통해 대규모로 유입된 재화들이 공급되었다. 북한 당국은 90년대 중반 무렵 심각한 식량난과 계획 시스템의 붕괴에 직면하게 되자 북·중 간 접경지대의 통상 지역을 개방하고, 국가 지정 무역기관 외에 정부 부처인 성(省), 기관, 군부대, 지방의 도 인민위원회, 공장·기업소들도 대외무역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해 주었다.

그 결과 1990년대 말경에 북한의 시장화 현상은 전국적 규모의 유통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현상으로 진전되었다. 주요 시·도에 대규모 도매시장과 함께 특화된 시장들이 발달되어 나갔다.

앞으로 있게 될 남북교역은 남한의 중소기업과 북한의 장마당 사업가와 진행되는 형태가 많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남한 기업이 중점해서 보아야 할 점은 북한 파트너의 실체가 무엇인 지를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중앙 정부의 무역회사를 파트너로 하는 장마당 사업가인지, 지방정부의 무역회사를 파트너로 하는 장마당 사업가인지, 또는 군대회사의 장마당 사업가인지 등의 감춰진 정부 기관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해당 사업에 실질적으로 자금을 대는 '돈주'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지 또한 알아야 어렴풋하게 나마 사업주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더 파악하기 어려운 점은 돈주, 무역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기관 그리고 이들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사업가의 관계도 파악해야 한다.
 
장마당의 현실
북한 경제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많은 전문가는 탈북자 설문조사, 북한 통계를 바탕으로 실시된 시뮬레이션 조사를 토대로 북한 주민의 경제활동과 북한 내 물자 유통의 40~90% 정도가 '장마당'(종합시장) 또는 '골목장' 같은 비공식적 경로로 이뤄지고 있다고 추정한다.

각각의 장마당에는 북한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장관리소가 있다. 시장관리소에서는 각 품목에 따라 시장 관리세 납부 규칙을 정하고 시장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받았다. 국수 장사는 하루 10원, 두부 장사는 하루에 3원 식으로 부과되었다. 2003년 말부터 종합 시장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면서 시장 자릿세는 더욱 체계화되었다.

국가가 허용한 종합 시장은 넓은 공터에 국가가 건물을 지어 그 안에 매대를 만들어 자릿세를 분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장사가 잘 되자 가격이 자꾸 올랐다. 판매되는 물품 종류에 따라 매대별 하루 매출에 따라 시장 관리소에서는 자릿세를 매겼다.

주민들의 장사 형태도 '등짐장사'로 출발해 점차 지역 간에 부족한 물자를 유통시켜 이익을 얻는 장사인 '되거리장사', 철도·차량을 이용한 도매 장사인 '달리기 장사' 및 '차판 장사' 등에서 상설시장에서 앉아서 장사하는 '매대 장사'로 분화·발전되어 나갔다.

최근에는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산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가령 행방 꾼을 거치지 않고 직접 농촌에서 쌀을 사와 도시에서 파는 경우도 있다. 운반 수단으로 택시가 이용되기도 한다. 북한에 택시가 많아지면서, 지방 장사꾼들이 택시를 상품 운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시장의 발달은 '돈주'라 불리는 신흥 부유층과 이를 비호하는 부유한 권력층을 형성했고 이는 북한의 충성도와 성분에 기반을 둔 계층 구조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정부의 비공식 통계에 따른 것이지만, 북한의 대외 무역과 시장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5만–1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가 24만 명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의 각종 경제 정보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이다. 최고 자산가 중에는 중앙당 간부나 외교관, 외화벌이 상사원, 시장에서 돈을 번 '돈주'등이 많다.

무역파트너로서 장마당 사업가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시장화' 현상이 오늘날처럼 양적·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돈주'가 중심 역할을 하는 사금융 시장의 발달도 한몫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1990〜2000년대 초반 시장화 확장기는 주로 환전 및 고리대금업 등을 행했지만, 점차 제도적인 상업 금융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음을 이용해 자금을 대출·융통해 주고, 이자 수익을 획득하는 '북한판' 화폐 자본가로 변모해 갔다.

북한이탈주민에 의하면 2000년대 중후반 무렵 이후 돈주들의 사금융 행위는 예·송금, 자금 이체, 물자 대금 결제, 담보 대출, 국영기업의 계획 외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 돈주들 간 대부 등 일반 상업 금융기관들이 행하는 금융 행위로까지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돈주'들은 사금융 분야에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물 경제 분야에서의 투자활동을 통해서도 화폐 자산을 축적해 왔다. 초기에는 주로 시외버스·택시·물류 등 지방운수업, 도소매업, 국영상점 등에 투자했는데, 최근에는 건설업, 채굴업, 제조업 분야 등 공식경제 부문에까지 투자 행위가 확대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돈주'들은 공식 국영기업소, 기관·공장 등의 명칭을 빌려 독자적으로 임노동도 고용하는 등 경영활동을 한 다음 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해당 기관이나 기업소에 납부하는 방식으로 투자활동을 하고 있다. 북한의 사회계층구조에서 경제적 상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이와 같은 외화벌이 계통의 종사자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많다.

다시 말해 '돈주'들 또한 외화벌이 계통 종사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의 외화벌이 체계는 다음과 같다. 상부의 지시 혹은 하부의 제안에 의해 무역회사가 설립되면 국가는 수출품목, 초기자본, 원천동원 방법 등을 평가하여 외국과 무역할 수 있는 권한인 '와크'를 부여한다. '비와크'단위 무역회사도 존재하는데, 그들은 주로 와크단위의 무역회사로부터 와크를 빌려 무역을 수행한다.

무역회사가 새로 설립될 때는 무역총회사의 지역별 지사 혹은 기자의 이름으로 설립되는데, 기자나 지사는 무역총회사로부터 와크를 분배받아 무역활동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와크단위의 무역회사로부터 명의를 빌려 무역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사장 혹은 기지장과 같은 명의를 빌려 원천을 수집해 중국 등지에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의 기업이 북한의 기업과 교역을 할 때는 상대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명목상으로는 분명 정부의 허가를 받은 무역 총회사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는 개인인 '돈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공산당은 수시로 '돈주'들의 자금을 압수했다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민간인의 개별무역을 허용하지 않는 북한에서 국가 무역회사들이 개인 자본가들의 자금을 끌어들여 동업 형태로 무역 거래하는 경우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돈주들이 국가 무역회사의 이름을 빌려 물건을 수입한 다음 이를 주민에게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과거 김정일 시대부터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이런 불법 개별무역이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고 난 이후 대폭 증가한 것이다.

때로는 돈주가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 금액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역의 경우는 더 하다. 돈주들 여러 명이 모여서 조합을 만들어 수출입을 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신발이면 신발조합을 만들어 한 번에 대량의 거래를 하고 이를 수익 분배하는 형태도 있다.

북한은 은행이 기업에 자금을 융통해주는 기능이 없다. 공식적인 송금 방식이 없고, 돈주 개인 간의 송금을 통해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고려·조선시대의 상인들이 행하던 어음결제 방식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온전히 사업의 운영을 위한 자금의 운용 또한 돈주의 규모와 개인적 성향에 달려있다.

따라서 남한의 중소기업이 북한의 기업과 장마당식의 교역을 하자면 파악해야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파트너 장마당 사업가의 주된 시장, 개인적 성향과 능력
 2) 장마당 사업가과 연결된 국가 기관
 3) 장마당 사업가에 돈을 대는 돈주들의 결합방식, 자금력과 송금방법
 4) 이들 돈주 조합과 국가 기관의 결합방식

홍재화 필맥스 대표


홍재화 필맥스 대표

[약력] 중앙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 KOTRA 파나마무역관, 홍보부 근무
[저서] 무역&오퍼상 무작정 따라하기, 수출 더 이상 어렵지 않아요, 어제를 바꿀 순 없어도 내일은 바꿀 순 있다, 해외무역 첫 걸음 당신도 수출 쉽게 할 수 있다 등 다수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drimt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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