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민 자산형성 지원이라는 취지 아래 만들어진 '상호금융조합 예탁금 비과세 특례(이하 농·수협 예탁금 비과세 특례)'를 둘러싼 논란이 촉발될 조짐이다.
무려 43년을 유지해 온 이 제도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이른바 준조합원으로 분류되는 도시민과 고소득층의 절세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정부가 틈나는대로 제도 폐지 또는 축소를 추진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종교인 과세 보다 더한 '성역(聖域)'에 가까운 제도다.
정부는 또 한번 칼을 빼들고 나섰다. 2018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제도의 단계적 축소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준조합원은 물론 농어민들인 조합원에 대해서까지 비과세 혜택을 축소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는 무척이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서 농어민 피해를 운운하며 정부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과세특례 기한을 어느 정도로 늘릴지의 차이만 있을 뿐, 여야 할 것 없이 제도의 일몰기한 연장 관련한 입법안을 쏟아내 놓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정치인 출신 장관이 이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대놓고 '반대' 입장을 내비치면서 일몰기한 연장에 무게가 실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43년 이어온 '세금 기득권'
농·수협 예탁금 비과세 특례 농어민의 자산형성을 돕기 위해 지난 1976년 도입됐다.
지난 1995년 정책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는 이유로 '일몰제'로 전환했으며 이후 2~3년 주기로 일몰이 도래할 때마다 정부가 축소 또는 폐지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농어민 피해 우려라는 명분에 막혀 연장을 거듭해 왔다.
그렇게 43년을 이어온 이 제도를 정부는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또 다시 내놓았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개정안에는 농·수협 등 상호금융기관이 취급하는 3000만원 이하 예탁금(출자금 1000만원) 이자소득에 대해 준조합원은 비과세 혜택을 없애고 내년 5%, 2020년 9% 세율로 분리과세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조합원의 경우 비과세 일몰 기한을 2020년까지 연장 적용하되 2021년부터 단계적으로 5%, 9% 세율로 분리과세하는 내용도 추가되어 있다.
기재부가 우선적으로 준조합원만을 '콕' 집어 비과세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데는 당초의 제도 도입 목적이 이미 상실됐다는 이유 때문이다.
조합원이 아닌 일반인도 출자금(1만원)을 내면 준조합원 자격을 획득해 3000만원까지 소득세(14%)를 면제받을 수 있어 사실상 도시민들의 세테크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게다가 가입하는데 있어 소득제한이 없어 고소득자들의 세금 회피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는 실제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비과세 혜택을 받고 있는 예탁금 계좌 보유 준조합원은 농협 1735만명, 수협 137만명, 산림조합 33만명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상호금융기관으로 꼽히는 농협의 비과세예금(52조3898억원) 중 준조합원 예금아 무려 8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비과세 폐지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상세율(14%)이 아닌 저율과세하는 등 정책적 배려를 가미했지만 대번에 반발여론이 조성됐다.
농어민 단체는 물론 농협 등 이 금융상품을 팔아 쏠쏠한 재미를 보던 상호금융사들이 들고 일어나 제도 폐지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특히 농협 등은 제도가 폐지될 경우 예탁금 이탈로 이어져 상호금융의 재무구조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봇물 터진 비과세 연장法…또 좌초되나
문제는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이미 국회를 중심으로 상호금융 비과세 혜택의 일몰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게 형성되어 있는 상태다. 여야 구분도 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아직까지 상호금융권이 제1금융권에 비해 규모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비과세 혜택 폐지로 상호금융자금이 이탈한다면 농어민 등 서민들의 자본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11일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김종민 의원은 농·수협 예탁금 비과세 특례 적용기한을 각각 3년(2021년), 5년(2023년) 연장하는 안을 내놨다.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과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도 일몰기한을 2023년까지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들 모두 '농어업인과 서민들의 금융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농어업인·서민 금융기관의 사업기반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기재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관계부처에서도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상호금융에 대한 비과세 특례를 연장하겠다며 기재부 정책 기조에 어깃장을 놓은 상태. 이 장관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법안이 통과될 경우 단위 농협별로 연간 2억7000만원 상당의 수익 감소가 불가피해져, 농협 운영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상호금융기관인 농협 등은 예금이탈로 장기적으론 농업지원이 악해져 그 피해가 고스란히 농어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상호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비과세 등 혜택 없이는 시중은행과 경쟁하기 어렵다"며 "장기적으로는 업계도 이를 줄여 나가는데 동의하지만 아직 그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책 실효성이 없는 비과세 제도를 계속해서 운영했을 때 불필요한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과세특례에 따른 조세지출액은 2016년 5673억원에서 2017년 5948억원, 올해는 6369억원(전망치)으로 매년 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