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공인회계사 최소선발인원이 1000명으로 결정됐다.
신외감법 개정, 주52시간 근무제 등 최근 회계사 수요 증가로 신입 회계사 구하기에 혈안이 된 몇몇 대형 회계법인과 수험생 입장에선 희소식이지만, 증원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많다.
회계사 최소선발인원은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850명으로 유지되어 왔으며, 실제선발인원은 2014년 886명을 제외하곤 해마다 900명을 넘겼다.
지난 10년간 평균선발인원은 928명.
최소선발인원이 1000명일 경우 실제선발인원은 1100여명에 이를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결정에 대해 현재 시장의 수급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외부감사대상 회사증가, 신외부감사법 시행 등에 따라 외부감사 인력 수요가 기존 회계법인·감사반 소속 회계사수인 1만2056명의 약 6.4%(772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예상 수요 증가분의 91% 수준을 흡수할 수 있도록 증원했다는 설명이다.
선발인원을 마냥 늘릴 수 없었던 제약요인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등록 회계사 수는 늘고 있지만 회계법인과 감사반 소속 인력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는 점, 감사핵심인력인 경력 5, 6년차의 휴업률이 약 10%로 다른 연차에 비해 높다는 점, 장래인구 추계와 대학입학자 수 추이 등을 감안하면 응시자 수는 중장기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 등이 제약요인으로 꼽혔다.
한숨 돌린 '빅4'…"1000명도 부족하다"
이른바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으로 불리는 대형회계법인들은 회계사 선발인원 증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빅4 회계법인이 올해 목표로 삼고 있던 신규채용 규모만 1300명 이상, 실제 올해 9월 기준 공인회계사 1198명을 신규 채용했다.
빅4 회계법인에서 쓸어간 회계사만 해도 한해 합격자 수를 훌쩍 넘은 것이다. 업계 1, 2위인 삼일과 삼정을 제외한 안진, 한영은 빅4회계법인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목표를 채우지 못해 채용기간을 무제한 연장하기도 했다.
한때 합격생들이 수습 수료할 곳이 없어 미수습 대란이 일었던 것과 비교하면 몇 년 사이 회계업계 채용 풍속도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대형회계법인이 회계사 수급에 열을 올리는 표면적인 이유는 제도의 변화다.
이달부터 시행된 '新외부감사법'으로 인해 외부감사 대한 회사가 유한회사까지 확대되고 표준감사시간제 등으로 인해 감사 시간이 대폭 증가하기 때문이다. 조만간 회계법인에도 적용되는 주52시간 근무제도 대형회계법인 입장에선 압박이다.
일부 대형회계법인은 최소선발인원이 1500명 이상이 되길 내심 바랐을 수도 있다.
실제 한 대형회계법인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공인회계사 선발규모는 지금의 2배정도인 매년 2000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1500명, 2000명을 합격시키는 시대가 금방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업계에 파장을 일으킨 적도 있다.
"더 이상 늘리면 안 돼"…고민 깊어지는 금융위 선택은?
반면 회계사 선발인원을 더 이상 늘리면 안 된다는 측은 제도 변화 보단, 회계법인에서 이탈하는 회계사들이 많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휴업 회계사만 어느 정도 잡아도 달라진 제도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회계사 2만75명 중 휴업 신고를 한 회계사는 36.1%인 7256명에 이른다.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3명 중 1명은 회계법인이나 감사반에서 일하고 있지 않고 일반 직장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10년 이후 매년 850명 이상의 회계사가 공인회계사 등록을 하고 있지만 이중 49%인 420명 이상의 회계사가 매년 회계사 업계를 떠나고 있다고 있는 상황이다.
남기권 중소회계법인협의회 회장은 "2010년 이후 4대 회계법인은 매년 700~800명의 수습회계사를 충원하고 있으나 등록공인회계사 수는 약 5000명으로 변동이 거의 없다"면서 "대형회계법인의 인력부족 현상은 충원인력 부족 문제가 아니고 다수의 퇴직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회계사 과잉으로 인한 보수 덤핑, 감사품질 저하 등 부작용이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장은 "신입들이 감사에 대거 투입되면 결국 감사품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인원이 많아져서 감사품질이 늘어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환상"이라며 "선발인원을 늘려 회계투명성 올라간다면 우리가 먼저 찬성하고 나서겠다"고 말했다.
최소선발인원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 16일 젊은 공인회계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인회계사 증원 반대 모임'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회계사 증원은 대학병원이 인턴들로만 수술을 하는 격"이라며 "대형 회계법인이 숙련된 중견 회계사가 나가면 또 뽑는 식으로 낮은 연차 회계사로만 채우고 있다. 결국 수조원 규모 감사를 신입 회계사들로만 시간 때우기 식으로 수행, 금융위가 부실감사 판을 깔아주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위는 2020년 이후의 중장기적인 적정 선발인원 규모는 회계사 선발 시험 및 자격제도를 포함한 외부 연구용역을 통해 도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회계사 선발인원 증원에 대한 찬반 논란이 앞으로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금융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