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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따라 역사 따라]

日 조세법률주의 도입한 이토 히로부미

조세일보 / 문점식 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 2019.01.0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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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네이버 인물사전)

사쓰마번(큐슈지역 번임)과 조슈번(일본 본섬의 서쪽 끝 지역 번임) 연합세력인 삿초동맹군 정벌에 실패한 일본 막부는 1868년 1월 일본 전국 토지대장을 천황에 넘겨주면서 막부시대가 마감되고 개화세력에 의해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 당시 나이가 어려서 개화파 지도자에 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세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을 주장하다 파벌싸움에 밀려난 후 반란을 일으켜서 죽었고 이후 기도 다카요시와 오쿠보가 죽자 메이지 유신의 최고지도자로 올라서서 헌법을 제정하고 소득세법을 도입해 메이지 유신을 완성했다.

이토가 38살 되던 해인 1879년 원로원이 제출한 헌법초안이 군주제 중심의 헌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럽에 가서 헌법을 조사한 후 다시 헌법을 제정하기로 결정되어 이토는 프랑스에서 9년 반 공부한 사이고 긴모치를 포함한 정부대표단을 구성해 그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 된 프로이센으로 갔다.

프로이센은 빌헬름 1세가 집권하고 있었으며 비스마르크가 수상이 되어 통치되고 있었는데 이토는 베를린 대학의 법학계의 최고권위자인 구나이스트 박사와 모세를 소개받아 헌법을 포함한 법학강좌를 20여 차례 듣고 다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공법 및 행정법 권위자인 로렌츠 폰 슈타인 교수로부터 공법 및 행정법을 배웠다.

1884년 갑신정변 후 이토는 이홍장을 만나 텐진조약을 맺어 조선에 파병권을 확보하고 1885년 초대총리가 되어 본격적으로 일본헌법 제정 작업을 시작했다. 헌법 제정 작업은 1886년 5월부터 시작했는데 프로이센 헌법 및 법률 전문가인 이노우에 고와시와 이토 미요지 그리고 하버드대학 출신 가네코 겐타로, 그리고 프로이센 법률고문 뢰스레르로 구성된 조직을 가동해 1888년 4월에 초안을 완성하고 1889년에 반포하였다.

이토는 그 당시 최고의 헌법전문가였는데 '헌법의해(憲法義解)'라는 책을 써서 일본헌법을 설명하고 조세를 '국가의 존립을 위해 필요하고 신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규범이 아니고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규범'으로 정의한 후 "일본 신민은 일본제국 성립의 일원으로서 함께 국가의 생존과 독립, 광영을 보호해야 하므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신민의 의무로 조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토는 일본헌법을 제정하면서 프로이센과 같은 군주제국가를 모델로 삼았으므로 "새로운 조세의 부과와 세율 및 그 변경은 법률에 의한다"라는 조항을 헌법에 넣어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화했다. 하지만 주권재민의 원칙아래 "대표자 없이는 과세 없다"는 기본원리를 빼고 일본헌법을 제정해 실질적인 의미가 빠진 조세법률주의를 헌법에 넣어 일본 군국주의가 태어날 길을 열었다.

일본 헌법이 제정된 이후에 총선거가 있게 되자 투표권은 25세 이상의 납세자로서 연간 국세를 15엔 이상 납부한 자에게만 주어지게 됐는데 오늘날과 같이 일정연령 이상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투표권제도와는 달랐다. 이토는 제국주의 건설을 통해 프로이센과 같은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를 원했으므로 국민의 기본권은 희생되더라도 군주제 체제 아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세법률주의가 일본 최초의 헌법에 담기게 되었다.


회계법인 바른
문점식 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약력] 현)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공인회계사
전)아시아태평양회계사회 이사, 전)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 전)한국세무학회 부회장
[저서]“역사 속 세금이야기”
[이메일] jsmoon@baruna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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