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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화의 무역이야기]

동서독 지자체 교류와 남북 교류

조세일보 / 홍재화 필맥스 대표 | 2019.02.20 08:20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대북교류에 대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험적 사례로 동독과 서독 간의 지자체 교류를 들 수 있다. 서독과 남한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동독과 북한은 중앙집권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남한의 지자체들이 북한과의 교류사업을 하면서 파트너를 선정하는데, 북한의 중앙정부가 지정해주는 곳과 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지방정부간의 교류는 원활한 경제협력과 교류는 물론이고 남북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동서독에서 있었던 사례는 우리의 남북 지방정부간의 교류에 참고가 된다.

독일 자치단체간의 자매결연
'월간 조선'의 2014년 4월자에 의하면 독일 통일에서 초석이 된 것은 동서독 지방 정부 사이의 교류였다. 통일 전 소위 동독-서독 도시 간 파트너십(獨獨자매결연)이 교류의 근거가 됐다. 동독 자매결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독이 과거 적군(敵軍)이었던 프랑스나 영국의 도시들과 맺었던 자매결연 프로그램을 모델로 했다.

동서독 자매결연의 1차 목표는 지방 단위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화해하겠다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두 도시의 주민들이 음악, 문화행사, 스포츠대회 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법은 이른바 '지자체 외교'라 할 수 있다.

자매결연을 통한 이러한 인간 대(對) 인간의 교류는 여러 영역에서 심층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했고, 마침내 '접근·교류(Annahrung)를 통한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의 동독 정부는 자매결연을 통해 서독과의 접촉빈도가 높아지면 그들의 내적 구조가 붕괴·와해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독 지도자들은 이웃(neighbor)으로서 관계를 개선시켜 보겠다는 서독 측의 평화적 노력을 완전히 차단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동독의 정치권이 국제사회로부터 외교적 노력을 인정받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이런 동서독 간 서로의 필요에 의해 1986년 서독의 살루이스와 동독의 아이젠휴텐슈타트 사이에 첫 공식 자매결연이 이뤄졌다. 그 뒤 한자동맹(Hansa同盟·13~17세기 독일 북쪽의 여러 도시 사이의 무역동맹) 도시인 브레멘과 로스톡, 부퍼탈과 슈베린 등 몇몇 도시의 협력사업이 뒤를 이었다.

도시간 자매결연협정은 ① 상대편 도시의 생활조건(도시건셜, 주태건셀, 교통개발) 및 유적보폰 및 도시정리, 노동조건에 대한 상호 정보교환 공공시셜이나 제도, 단체와 같은 사회기판 사이의 공동작업을 촉진할 것 ② 대표자와 시민들의 회담을 한해의 계획으로 고정시킬 것 ③청소년 교류의 촉진 ④ 교육 및 여성문제 논의 및 동서독인들은 양독 도시간의 접촉을 확고히 정착시키고 이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문화예술교환과 친선경기 및 휴양시설 공동이용 둥을 협정에 명문화 하였다.

1989년 11월까지 총 98개의 동서독 도시 자매결연이 이뤄졌고, 이후 통일이 진행되면서 그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1990년 10월에는 그 수가 854개에 이르렀다. 자매결연을 통해 통일 독일 내에는 공통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공간이 구축됐고, 자연스럽게 동독의 지방자치 재건을 위한 토대도 마련됐다.

독일 자치단계의 협력 4단계
'경기연구원'의 '남북교류협력과 경기도'의 보고서에 의하면 동서독 지자체 교류 4단계 과정을 보면 4단계로 나누어 볼 수있다. 제1단계는 동독이 극적인 교류협력을 제의한 시기로 분단 이후 1969년까지의 시기였다. 이 시기 동독은 서독의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ctrine)에 대한 대응으로 서독사회의 분열과 동독에 대한 국가인정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적극성을 띄었다.

제2단계는 서독이 적극적으로 동독에 교류협력을 제의한 시기로 1969년부터 1985년까지의 시기였다. 1969년 이른바 '신동방정책'(Neue Ostpolitik)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Willy Brant) 정부는 기존의 대동독 대결정책을 변화시켜 동서독 지방간의 교류협력을 제의하는 등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제안하였다.

제3단계는 동서독 지방 간 실질적인 교류의 시작과 함께 확산된 시기로 1985년부터 1989년 동독의 붕괴까지의 시기였다. 당시 동독이 서독과의 지자체 간 교류를 받아들인 배경은 체제유지의 자신감과 정당성 확보, ②서독의 진보 정당인 사민당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서독사회의 분열 도모, ③ 소련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쵸프(Mikhail Gorbachev)의 개혁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수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 상쇄, ④ 서독으로부터 유용한 정보와 경험의 획득 등의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제4단계는 통일과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시기로서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정부에 의한 통제가 사라진 것을 배경으로 하였다. 이전까지의 교류가 체육·과학 등 비정치적 교류였다면, 이 시기에는 경제지원, 인력지원, 행정지원이 이루어져 동독의 지방행정조직의 재구축에 기여하였다.

이 시기동안 동서독 약 646개의 도시 혹은 기초지자체 간에 새로운 자매결연이 체결되었으며, 협력사업은 1,993건에 달하였다. 특히 서독은 이전의 동독 지역에 “신연방주 지방자치행정 구축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다양한 서독의 전문가들을 구 동독지역에 자문위원으로 파견하였다.

독일 통일이후 지자체의 역할
통독 이후에는 독일 연방정부와 서독의 주정부는 동독지역의 행정제도를 개편, 5개주를 신설하여 행정체계 확립을 위하여 체계적인 행정지원을 하였다. 그 구체적 임무는 ① 신설 개주의 행정체계 확립을 위한 견본적인 조직 및 인사관리 계획을 개발, 작성했으며 ②상기 작성된 조직 및 인사관리 계획에 의거 인력이 1991 년 12 월 31 일까지 충원되고 행정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신설 5개주에 행정지원을 하였다. ③주 행정체계를 세우고 자문단올 구성하는데 있어서 연방파 주정부간의 행정지원과 업무조정을 할 수 있는 자문단의 수를 확정했다. ④통합조약 15 조 항에 규정된 연방과 주정부사이의 각자 임무를 부여하고, 그 인력올 충원하는데 있어서 행정지원업무를 조정했다.

법에서 정한 과도 기간 동안 주정부 행정을 수행할 서독의 지방 자치 행정기관들의 임무배분과 업무지침에 관한 조정하였다. 그러나 1990년 월 29 일 서독지역 각주 내무장관회의에서는 기존의 동서독간 도시자매결연 형태로는 동독의 중소도시가 망라되어 있지 않아 (동독의 5만 이상의 도시는 거의 서독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었음) 서독 측으로부터 충분한 행정지원을 받을 수 없으며 지원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서독의 어떤 주가 동독의 어느지역올 관할하여 행정지원 할 것인가를 새로 결정하였다.

이처럼 동서독의 통일에는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가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이후에도 동독지역의 안정화에는 지방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 중요한 점은 동독 지역의 행정구조 재건 작업에 서독 출신 지방공무원들을 빠짐없이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통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들은 서독의 지방공무원들에게 승진의 기회로 작용했다.

서독의 어느 작은 조직의 장(長)이었던 공무원이 보다 큰 규모의 동독 지자체 행정책임자로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요컨대 통일 과정에서 동독 지역의 지자체는 서독 게마인데와 지자체협의회의 경험, 지원에 의존했다. 동독 지자체는 '눈높이에 맞춘 재건 사업'을 수행해 나갔던 것이다. 지자체간의 자매결연을 통해 쌓아온 네트워크나 커뮤니케이션(대화·소통) 경험은 재건 작업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홍재화 필맥스 대표

[약력] 중앙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 KOTRA 파나마무역관, 홍보부 근무
[저서] 무역&오퍼상 무작정 따라하기, 수출 더 이상 어렵지 않아요, 어제를 바꿀 순 없어도 내일은 바꿀 순 있다, 해외무역 첫 걸음 당신도 수출 쉽게 할 수 있다 등 다수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drimt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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