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야 4당 패스트트랙 합의에 반발해 장외 투쟁을 해온 자유한국당이 쉽사리 국회로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동물 국회'에 이은 '식물 국회'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18일간의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27일 '패스트트랙 철회·사과'와 '1 대 1 영수회담'을 재차 제안했다. 두 가지 요구사항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한 바 있다.
황 대표는 "저와 1 대 1로 만나서 제가 직접 겪은 민생 현장의 절박한 현실을 들어주길 바란다"며 "문 대통령이 결단하면 우리 당이 앞장서서 돕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정부의 경제 정책을 '좌파경제 폭정'이라고 규정, 정책 대전환을 요구하며 이달 말까지 당 대표 직속 '2020 경제대전환 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대해선 "당을 비롯한 각계의 경제전문가들, 여성·청년을 비롯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분들까지 폭넓게 구성할 계획"이라며 "분야별 입법과 예산까지 꼼꼼하게 세부 계획을 세워 실천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28일 황교안 대표의 전날 기자회견에 대해 국회 복귀는 하지 않으면서 요구 사항만 늘어놨다는 취지로 강하게 비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면서 "좌파폭정, 자기 입맛대로 국정기조 바꾸라는 오만만 가득찼다"고 말했다.
그는 황 대표를 겨냥 "국회 정상화에는 요지부동이면서 입법 서두르고 예산 챙기겠다는 얘기는 전형적인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야기"라며 "민생 챙기겠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한국당은 당장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회 정상화 없이 민생 정상화도 없다"고 덧붙였다.
◆ 국회 안 문제, 국회 밖에서…진정성 의문
한국당의 민생 투쟁 대장정은 전국을 돌며 국민들과 접촉하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민생 현장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나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당의 장외투쟁 시작 시점부터 지적된 것 처럼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반발과 민생투어는 다소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을 비록 저지하지는 못했더라도 정책 수정 내지 대안을 제시하려면 국회 내에서 치열하게 맞서는게 이치에 맞다는 지적이다.
황 대표는 민심 청취 결과를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 배부하며 정책 대안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 1야당 대표의 빡빡한 전국 순회 일정 속에서 얼마나 생생한 민심을 청취했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한국당이 접수한 내용은 최저임금 부담 완화와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 등 일반적인 내용이거나 액화석유가스(LPG) 셀프 충전소 허용, 기술보증기금 상환기간 유예 및 이자율 인하, 제로페이 활성화 요청 등 지역구 의원이 평소 듣는 민원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대표(빨간 점퍼 착용)가 24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구 광교센트럴타운 60단지 주민지원센터에서 수도권 부동산 대책 점검을 위해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민생' 대장정인가 '대선' 대장정인가
한국당이 국회 밖에서 벌였던 정부와 여당에 대한 투쟁은 이처럼 단순히 민생을 깊이 청취하기만 위한 의도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 '민간인 국정농단 사태' 당시에도 극도의 차분함을 유지했던 황교안 대표가 전면에 나서 물병을 맞고 땀을 흘리며 걷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생경하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당으로서는 문 대통령의 집권 3년차로 접어든 시점에서 여당이 야3당을 이끌어내 합의한 패스트트랙을 저지하지 못하자 최후 수단인 물리적 '거부권(veto)'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권력구조 재편과 민주주의 도구인 선거법 개편(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이라는 중차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비록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는 못했더라도 갈등국면을 유지·확대해 지지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패스트트랙으로 뭉친 여야 4당의 정책 연대가 이어질 경우 국회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일 수 있다는 위기감에 선제공격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당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여기서 (민주당에)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위기감이 있다"며 "부담감도 적지 않지만 싸울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