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둑'이 무너졌다…세무사 업계 '대충격'

회계교육 이수한 변호사 세무대리 업무 '무제한' 허용
사실상 변호사에 세무대리 시장 진출 통로 열어줘
"막아내겠다더니… 세무사회 집행부 지금껏 뭐했나" 성토

변호사들의 세무대리 시장 진출을 막고 있던 '둑'이 결국 무너졌다.

아직 국회 논의라는 기회가 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반전'을 꾀하기 힘들어 보인다.

26일 기획재정부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2004년~2017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며 세무사 자격을 자동 부여받은 변호사들은 법이 정하고 있는 실무교육(회계능력 검증교육)을 이수하면 세무대리업무 등록부에 등록을 허용하기로 했다.

비록 조건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현존하는 모든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나 다름없다. 세무사 업계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회계능력 검증교육의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는 정기국회에서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 초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해 규정한다는 것이 기재부의 방침이다.

지난해 4월26일. 헌법재판소는 서울고법이 '세무사법 제6조, 제20조가 헌법상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지 판단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03년까지는 변호사들이 세무사등록부에 등록만하면 세무대리 업무에 제약이 없었다. 그런데 그 해 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세무사만이 세무대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세무사법이 개정됐고, 이 법 해석으로 2004년부터 변호사들의 세무대리 업무에 제한이 걸렸다. 

2004년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A변호사가 개정 법률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헌재에서도 "세무사 자격 변호사에 대해 세무대리를 전면금지하고 있어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세무사법이 세무사 자격에 기인한 직업선택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헌재는 올해 말까지 세무사법을 개정해 위헌 요소를 없애도록 정부에 권고했다. 

기재부는 곧바로 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기재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초안)에는 세무사 자격보유 변호사에 대한 세무대리 허용 범위를 ▲조세신고·불복청구 등 대리 ▲조세상담·자문 ▲의견진술 대리 ▲공시지가 이의신청 대리 ▲조세 신고서류 확인 ▲세무조정계산서 등 6개로 정했다.

단 ▲장부작성 대리(기장대리) ▲성실신고확인 업무는 제외시켰다. 법률사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회계관련 고도의 지식을 요구한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기재부의 방안은 세무사 업계는 물론 변호사 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무사 자격증이 있는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를 조건부로 승인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나왔다. 회계 관련 시험을 통과하고, 일정 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세무시장에 진입이 할 수 있다. 사진은 세무사법 개정안 입법예고문.

세무사회는 회계학과 세법 지식이 부족한 변호사들이 아무런 전문성 검증 절차 없이 세무대리 시장에 진입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기재부 초안에 반대했다. 

변호사회도 기재부가 제외한 사실상 '돈'이 되는 업무인 2개 영역(장부작성 대리, 성실신고확인 업무)을 배제한 것은 헌재 결정 취지와 배치된다고 반발했다. 

이익단체들의 반발에 가리긴 했지만 사실 기재부가 내놓은 초안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법예고까지 거친 개정안을 세제실이 자진 철회하는 '촌극'이 빚어진 것이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법무부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개정안이 추진됐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실제 법무부가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며 반발, 기재부의 자진 철회가 이루어졌다.  

이후 기재부와 법무부는 합의를 시도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올해 세법개정안 발표(7월25일)에서도 세무사법 개정안은 담기지 못했다.

결국 국무조정실이 개입, '교육'을 전제로 업무범위 제한을 푸는 대안을 제시했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26일 세무사법 개정안 입법예고가 이루어졌다. 연말까지 시한이 정해진 마당에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었던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하면서 대타협이 이루어진 셈.  

세무사법 개정안에 대한 변호사회와 세무사회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

향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정부는 일정 시간 교육 및 평가, 현장연수 등 구체적인 실무교육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는데, 평가 난이도 등 경우에 따라 변호사들에게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를 통과한다는 전제하에 사실상 시장 진입 제한이 모두 풀렸기 때문에 무작정 반대입장을 내놓기는 애매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세무사회다.

애초 반대논리로 제시했던 '전문성' 부분이 교육과 평가라는 공적 장치를 통해 해소되면 변호사들의 무차별적 세무대리 시장 진입을 눈 뜨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무사법 개정안에서 허용하기로 했던 6개 업무에 대해서도 세무사회는 전문성 검증 없이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세무사회의 반대논리가 '부메랑'이 되어 교육을 전제로 해 반드시 막아야 했던 장부작성 대리 및 성실신고확인 업무까지 내어준 결과가 됐다. 

◆…변호사들의 세무대리 업무 제한을 사실상 모두 풀어주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을 두고, 세무대리 업계 반발이 크다. 상당수 세무사들은 "시장질서가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각에선 세무사에게 조세소송대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진은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세무사회관 전경.

세무사법 개정안의 충격파는 세무대리 업계를 단숨에 집어 삼켰다. 가뜩이나 지금 현재도 세무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치열한데, 변호사들의 시장 진입까지 이루어지면 그야말로 '대혼돈'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팽배하다.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잠재적으로 1만8000여명의 변호사들이 세무대리 시장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올해 7월말 기준 등록 세무사수(1만3000명)보다 많은 숫자.

세무사들의 위기 의식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다수의 세무사들은 검증을 거치더라도 변호사들이 세무대리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즉 이들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와 속칭 '사무장 세무사' 등을 고용해 운영하는 등 세무대리 시장의 물을 흐려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A세무사는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를 허용하면 단계적으로 모든 업무를 열어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입법안이 나올 줄은 몰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B세무사는 "변호사들에게 기장대리와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허용해선 안됐는데 이 부분이 다 무너졌다"며 "세무사회 집행부는 지금껏 무엇을 했나. 선거 당시 말로만 막겠다 한 것인가. 처참한 심경이다"라고 전했다. 

C세무사는 "세무사 자격을 보유한 1만8000명 변호사들에게 일시에 시장 진입을 허용하면 업역 침해는 물론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변호사들이 사무장 영업 등 명의대여 문제를 야기해 시장질서가 교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D세무사는 "시장 진입이 허용된 만큼 세무대리 업무를 하는 변호사들에 대해서도 징계 등이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무장 영업 등 가능성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무사들 사이에서는 기재부의 세무사법 개정 논리대로라면 세무사들도 일정한 검증을 거쳐 조세소송대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조세에 관한 사법절차상 소송대리는 변호사에 전속되어 있다. 현재 국회엔 일정한 교육, 자격시험을 거친 세무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주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안)이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E세무사는 "변호사들이 실무교육을 이수하면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조세전문가인 세무사들도 소송법 등 관련 교육을 받으면 조세소송대리를 할 수 있어야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세소송대리권 확보 추진이 원경희 현 세무사회장의 공약이기도 한 만큼, 세무사회도 조세소송대리권 추진으로 맞불을 놔야 할 것"이라며 "기장대리 시장까지 잠식될 판인데 조세소송대리권은 반드시 확보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경희 한국세무사회장은 지난 7월 당선 인사말에서 "우리 고유 업무인 기장대행을 변호사가 할 수 없도록 세무사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 방침으로 타 자격사의 업역 침해를 막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집행부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 막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한 원경희 회장을 중심으로 한 세무사회 집행부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헌재 결정에 따라 일정 수준 시장 개방이 불가피했고, 임원진 교체라는 변혁기 였다는 점도 감안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전면 개방 수준의 입법안이 입법예고되는 상황까지 만들어 놓은 것은 전적으로 집행부 책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 문제는 원경희 회장의 1번 공약 사항이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극적 반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현 시점에서 놓고 보면 선거 과정에서 전임 집행부의 부실한 공약이행을 성토했던 원 회장은 자신도 시작부터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회장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특히 세무사법 개정안이 26일 입법예고될 때까지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중순 향후 세무사제도 개선 및 업역확장 등 대외 업무의 중심축이 될 '세무사제도 개선 추진 특별TF'를 출범시켰지만, 이미 '버스'는 멀리 떠나버린 상황이 됐다.   

F세무사는 "원경희 한국세무사회장이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지난 6월 당선됐는데 집행부를 구성한 직후 세무사법 개정안이 발표되어 아쉽다"면서도 "(원 회장이)회원들에게 타 자격사로부터 업역을 지켜내겠다고 약속한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