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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古城에 추억이란 벽돌을 쌓다

조세일보 / 한경닷컴 제공 | 2019.10.28 10:01

독일 하이델베르크·로텐부르크
로텐부르크에서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로 손꼽히는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예술가들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현지 시간 오전 6시30분. 인천공항을 떠난 지 18시간 만에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떨어졌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여유롭게 짐을 찾아 공항 문을 나선다. 깊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신다. 딱 1년 만에 다시 맡는 이 청량한 공기! 우리나라에 황사와 미세먼지가 한창 극심한 날에 떠난 탓일까? '후-' 하고 입김을 분 후 마른 수건으로 닦으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맑고 푸른 이 하늘이 너무도 그리웠다.

그 여자,하이델베르크 古城에 추억이란 벽돌을 쌓다서유럽과 북유럽 그리고 동유럽의 중간에 있어 자동차를 타고 유럽을 여행한다면 꼭 들를 수밖에 없는 나라 '독일'. 그중에서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은 유럽의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유럽 여행의 시작과 끝점으로 잡기 좋다는 이점이 있지만 사실 필자조차 나고 드는 길목으로만 여겼지 이 나라 자체에 큰 기대를 두진 않았다. 하지만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생각 외로' 혹은 '기대보다'라는 수식어가 떠오르는 나라, 여행하면 할수록 더 구석구석까지 가 닿고 싶은 나라, 독일이다. 이번 여행에선, 평생 유럽 여행을 꿈꿨지만 그동안 수많은 핑계를 대며 주저하던 부모님이 동참했다. 그리하여 3대 가족 캠핑카 여행이 시작됐고, 60대 중반의 부모님과 다섯 살 아이가 함께하는 만큼 이번 여행은 여유로움에 초점을 뒀다.

무너진 성에 상상을 더하다

고된 역사 속에 용맹한 기운 느껴지는 성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내려다본 하이델베르크 시가 모습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이번 캠핑카 유럽 여행의 첫 번째 여행지는 네카어강 연안에 자리잡은 소도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다. 독일 여행을 위해 미리 검색을 좀 해본다면 주제에 따라 로맨틱 가도, 에리카 가도, 메르헨 가도, 괴테 가도, 판타스틱 가도, 고성 가도 등 크게 여섯 가지 특색으로 나눠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중 하이델베르크는 고성 가도에 속한다는 것도. 즉 그만큼 고성으로 유명한 도시라는 말씀!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성의 정원 뒤쪽 주차장에 캠핑카를 주차한 뒤 성을 향해 산책하듯 걸어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허물어진 성의 일부였는데 그 모습이 피폐하거나 음침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고된 역사 속에서 늠름하게 살아남은, 용맹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하이델베르크 성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도 불러일으켰고.

케테 볼파르트의 크리스마스 물품
 눈앞에 보이는 성의 역사에 대해 검색하기 위해 잠시 멈춰선 틈에 아이가 내 손을 놓고, 잘 조성된 정원 한가운데로 쪼르르 달려간다.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있기에 뭘 하는지 물어봤더니 저기 저 성에 사는 공주님께 줄 꽃을 모으고 있단다. 각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 아이에게 오늘의 여행지에 대해 설명해주곤 하는데, 지난밤 공주님이 사는 성에 갈 거라고 얘기한 걸 기억했나 보다. 어느새 한 움큼이나 모은 꽃송이들이 떨어질세라 작은 손을 한껏 동그랗게 말고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옮기는 아이.

아이와 함께 공주님을 만나러 성으로 향하다

공주님을 만나면 예쁜 꽃을 전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넓은 성을 샅샅이 살피며 걷는 다섯 살 아이가 기특한 한편, 난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하나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성 관람이 끝나갈수록 아이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아무리, 아무리 찾아봐도 공주님이 없단다. 어느새 성의 마지막 방을 둘러볼 시간. 때마침 그 방에는 성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계단의 입구는 유리문으로 막혀 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어쩌지? 이 계단을 올라가야 공주님이 있는데, 지금 공주님이 자고 있나봐. 예쁜 꽃은 이 앞에 두고 가자. 공주님이 잠에서 깨면 '어머? 누가 이렇게 예쁜 꽃을 두고 갔지?' 하며 기뻐하실 거야!”라고 얘기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아이는 이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참 예쁘기도 해서 아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리고 이 순수한아이의 상상을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이델베르크 성 구경을 마치고 캠핑카로 돌아가는 길, 가슴 탁 트이는 시내 전경을 바라보는 사이 아이는 등에 업혀 잠이 들었다. 꿈에서, 드디어 공주님을 만났는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마법 같은 시간을 느끼다

구시가지 중세시대로 떠나는 여행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Rothenburg ob der Tauber). '타우버강 위쪽에 있는 로텐부르크'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냥 로텐부르크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하 편의상 로텐부르크라 표기하겠다.- 로맨틱 가도에 속해 있다.

1년 365일 크리스마스용품을 파는 거대한 마을 같은 상점 케테 볼파르트.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캠핑카 여행을 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도심에서 운전하기와 주차하기일 것이다. 일반 승용차보다 넓고 긴 차체가 머무를 때는 더없이 아늑하지만, 이동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하기에 부담스럽다. 게다가 좁은 도로가 많은 유럽의 도심을 운전할 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 하더라도 구시가지(올드 타운)까지 한참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특히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경우 구시가지에 도착하기 전에 '안아줘' '업어줘'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듣게 된다. 도시 구경도 하기 전에 체력의 반 이상을 써버린다는 뜻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로텐부르크 하지만 로텐부르크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싹 해결된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성벽 입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캠핑카 주차장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급수와 전기 충전, 공용 화장실 등 주차장 시설이 거의 캠핑장급이라 하룻밤 묵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리하여 로텐부르크 성벽 밖 주차장 한쪽에 자리를 선점하고, 캠핑카에서 배 든든히 점심을 해결한 뒤 두 손 가볍게 길을 나섰다. 주차장에서 10분, 아니 5분만 걸으면 로텐부르크 구시가지로의 여행, 즉 중세 시대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니 처음부터 달콤한 여행이다. 사실 그간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과 캠핑카 도시 여행의 불편함 때문에 산과 들, 호수 등 자연 위주의 코스를 짜곤 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아이가 소도시 여행을 즐길 줄 아는 게 아닌가? 고작해야 발끝으로 지나가는 개미와 제 눈높이의 꽃 관찰, 나비와 새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게 여행의 전부일 것 같은 어린아이가 도시 여행을 즐긴다니 의아할 줄로 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도시 골목골목에 내다 놓은 인형이며,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는 걸 즐겼다. 아이는 독일 로맨틱 가도의 작은 마을, 로텐부르크의 예쁜 소품 구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석양을 볼 수 있는 풍경, 마법 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로텐부르크 시내 모습 아이의 눈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에도 로텐부르크는 아름답다. 그간 여행했던 유럽의 소도시 중 가장 동화 같은 마을이라는 이야기를 열두 번도 더 하셨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로텐부르크의 별칭이 '중세의 보석'인 만큼 구시가지 전체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보석같이 반짝였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현대의 시간이 흐르기는 하는 걸까?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로맨틱 로텐부르크에서의 놀라움은 '케테 볼파르트'에서 절정에 달했다.

케테 볼파르트는 1년 365일 크리스마스용품을 파는 상점이다. 말이 상점이지, 그 내부가 하나의 거대한 마을 같이 꾸며져 있다. 1964년 독일에서 창업한 이후 수만 점의 크리스마스 장신구와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1977년부터 로텐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어린 시절 차가운 손을 호호 불어야만 하는, 차디 찬 겨울을 기다렸던 것은 크리스마스라는 아름다운 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 밤하늘을 따스하게 비추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덕분에 겨울은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 아름다운 크리스마스가 매일같이 이어지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가. 그날의 소원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1년 내내 끊임없이 크리스마스가 펼쳐지는 곳. 사방에서 끊임없이 캐럴이 흘러나오는 곳. 케테 볼파르트는 아이에게도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도 꿈속에 나오는 동화 마을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산타가 되어 하나씩 선물을 안겨주고 나서야 거리로 나왔다.

케테 볼파르트 상점 내부 마을과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한 거대한 종탑이 기다란 그림자를 그려냈다. 마을에 드리워질 석양을 보기 위해 종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좁아지던 계단은 급기야 몸을 잔뜩 웅크려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먼저 맞이했다. 그리고, 눈앞에는 바람보다 더 시원한 풍경이 펼쳐졌다.

붉은 색으로 덮인 지붕들은 붉은 노을빛을 받아 더욱 붉게 타올랐고, 저멀리 보이는 골짜기 속으로 해가 시나브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때 종탑에서 종이 울린다. '뎅~ 뎅~ 뎅~' 마을과 우리에게 내려졌던 마법 같은 시간이 풀리고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에 가족 모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래도 우리들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함께하고 있었다. 마법 같은 시간이 선물해준 추억이 모두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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