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길에서 시동이 꺼지면서 전복된 현대 팰리세이드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 쪽은 운전자가 부주의해서 일어난 사고, 다른 한 쪽은 사용자 이해가 부족한 안전시스템이 일으킨 사고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전북 미륵산에서 한 운전자는 팰리세이드에 자녀를 태우고 산길을 내려오던 중 갑자기 시동이 꺼졌다. 차를 멈추려 했으나 브레이크가 평소와 달리 잘 듣지 않아 벽을 들이박고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 긴박했던 사고 상황 |
◆…팰리세이드의 전자식 변속버튼. 이번 사고에서 운전자 혼란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기계식 변속기는 후진->전진으로 변속할 수 없을 때, 기어봉이 후진에서 전진으로 움직이지 않아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반면 전자식 변속은 '띠링' 하는 경고음을 낼 뿐이다. (출처 현대자동차)
사고 기록 장치에 녹화된 영상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상황은 다음과 같다.
상황1) 운전자는 차를 돌리기 위해 '후진 버튼'을 눌렀고 차는 '띵'하는 소리를 내보낸다. 운전자가 후진으로 차를 돌린 뒤, 차가 멈췄다고 생각하고 '전진 버튼'을 눌렀다. 이 때 차량의 기어가 전진으로 바뀌지 못해, 차가 '띠링(맑은음)'하는 경고음을 내보낸다. 그러나 운전자가 이 소리가 기어 변속 실패 경고음이라 생각지 못한 채 차를 내리막 쪽으로 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 기어는 차가 완전히 정차되고 브레이크를 확실히 눌러야 변경된다고 한다. 운전자가 가볍게 브레이크를 밟았거나 경사로에서 밀리는 힘에 변속이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처음엔 운전자가 '후진 버튼'을 실수로 두 번 누른 것으로 알려졌다.
◆…시동 꺼진 뒤, 계기판에 보이는 경고등. 이 밖에 다른 경고음은 없다. (사진 미디어오토)
상황 2) 차가 후진기어 상태로 몇 미터 밑으로 내려간 뒤, '투웅'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졌으나 운전자는 자녀가 낸 소리 인줄 알고 눈치채지 못한다.
- 시동이 꺼지면서 운전자에게 명확한 경고음과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다만 작은 경고 등만 뜬다.
- 토크컨버터형 자동변속기를 쓰는 차는 기어 방향(후진/전진)과 다른 방향(전진/후진)으로 가면, 기계 구조적으로 꺼진다.
상황3) 시동이 꺼진 채, 운전자가 내려가다가 중간에 아는 사람을 만나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춘다. 대화를 한 뒤, 차를 다시 출발시킨다. 내리막 길이라 차가 자연스럽게 굴러 내려간다.
- 시동이 걸려 있는 동안은 브레이크를 쉽게 누를 수 있도록 하는 보조시스템이 일정양의 압력을 만든다. 시동이 꺼진 순간, 그 압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브레이크 보조압을 중간에 멈춘 이 때 다 쓰고 만다.
◆…전복된 사고차량 (사진 사고당사자 SNS 계정)
상황4) 차가 내리막을 내려가면서 점점 빨라지자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보조압력이 이미 빠져 원하는 만큼 차를 세우지 못했다. 결국, 벽에 부딪혀 차가 뒤집혀 버리고 만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사고였으나 다행이 운전자와 자녀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 브레이크 보조 압력이 없으면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이 아니며 작동한다. 보조 압력이 없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강하게 밟아야 한다.
| 원래 꺼진다 VS 꺼지면 안된다 |
여기서 이 사고를 바라보는 여론이 크게 갈리고 있는데 주요 쟁점은 '시동 꺼짐'이다.
먼저 운전자 비판 여론은 다음과 같다.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는 그런 상황에서 기계구조상 꺼진다 ▲시동이 꺼지는 순간 '투웅'하는 소리가 났으니 바로 멈춰서 확인해야 했다 ▲계기판에 경고메시지가 떴는데 왜 확인 하지 않았는가? ▲후진에서 전진으로 기어를 바꿨을 때, 경고음이 분명 나왔다 ▲후진기어 상태로 차가 내려가는 동안 후진 경고음이 몇 초간 울렸다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으면 차가 썼을 것이다.
운전자 옹호 여론은 다음과 같다.
▲나도 저런 상황에서 엔진이 당연히 켜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엔진이 꺼지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시동이 꺼지고 나서 경고음이 없었다 ▲변속실패 뒤 차량이 움직일 때 강력한 경고를 했어야 한다 ▲드물더라도 저런 상황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BMW 차량은 같은 상황에서 기어가 중립으로 바뀌고 시동이 꺼지지 않았다. 사실 이런 방식을 쓰는 차는 소수이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반면 벤츠나 BMW는 같은 상황에서 '중립'으로 기어를 바꿔 시동을 유지해 논란을 더 키웠다.
비판 여론은 ▲벤츠와 BMW의 최신 모델과 후륜 구동 차량에 있는 방식이다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 차량 대부분은 중립으로 빠지지 않고 시동이 꺼진다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다고 차량 결함이라 주장하면 대부분 차량이 다 결함이다 ▲별에 별 운전자가 다 있는데 그들 모두를 위한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옹호 여론은 ▲운전자 안전이 최우선이다 ▲현대 제네시스 G90은 시동이 꺼진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파킹브레이크가 걸린다 ▲현대도 BMW처럼 할 수 있을 텐데, 이는 원가절감 때문이 아닌가? ▲리콜해서 시동꺼짐을 막던가, 강력한 경고음 등을 보내 운전자에게 알려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시동꺼짐은 자연스런 기계적 현상이며, 운전자에게 경고를 했음에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운전자 과실"이라 주장한다.
반면 사고 운전자는 초기에 "운전하는 사람으로서 차량 결함이 맞다. 너무 많이 억울하고 속상하다"라고 했으며 지금은 "계기판 확인 안한 것은 잘못이나 현대차가 교묘하게 저를 운전미숙으로 몰아 화가 난다. 다만 후진을 두 번 누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을 위로해줬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