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find someone who's great, don't wait until there's a job opening – send [them] to me (뛰어난 인재를 발견하면, 빈 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바로 내게 보내라)." – Kevin P. Ryan
"나는 어떤 업계에 있든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우리와 경쟁하는 자가 우리의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 헨리 폴슨(골드만삭스 회장)
어느 날 새벽 을 변호사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도 사무실에서 자정 넘게 일하고 새벽녘에 귀가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일정을 보니 기상 즉시 바로 부산으로 업무 출장을 떠나야 했다. 조식은 서울역 대합실이나 승차 후 때우기로 작정하고 서둘러 취침을 했었다.
휴대폰 벨 소리에 잠이 깼다. 처음엔 피곤에 지쳐 그냥 무시했다. 그런데 휴대폰이 계속 울려대는 것이 아닌가? 에구, 만사가 귀찮다. 어떤 친구가 이 꼭두새벽에 전화질을 해대고 야단이지? 그런데…, 혹시 핵심 고객의 긴급전화? 이들은 내 밥줄이니 무조건 받아야…, 아니면 혹시 사무실에 급한 일이 생겼나? 을 변호사는 억지로 팔을 뻗쳐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앗! 이게 누구신가? 을 변호사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기가 소속한 A로펌의 대표였다.
"네~, 저~ 을 변호사입니다. 무슨 일로?"
"아, 새벽에 미안해. 출근 즉시 내 방으로 좀 오게."
"그런데, 저는 오늘 아침 바로 부산출장인데요."
"아, 그래? 꼭 을 변호사가 가야 할 일인가? 다른 사람이 가면 안 되나? 자네 대신에 갑 변호사를 보내면 되지? 부산 사건, 그거 나도 아는데, 갑 변호사도 그 사건 잘 알고 있잖아? 갑 변호사 이름으로 바로 비행기 예약을 해 놓겠네. 어쨌든 급한 일이니 일단 서둘러서 내 방으로 와줘요."
을 변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세면을 하고 서둘러 회사로 차를 몰았다.
대표가 말을 꺼냈다.
금융감독원에서 최고의 인재로 명성이 자자하던 오 변호사가 퇴직을 결행하고 내일 아침 바로 경쟁 로펌에 출근한다는 내용이었다(요즈음은 관료출신이 퇴직을 하더라도 일정기간이 지나지 않으면 로펌 등에 갈 수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오 변호사와 경쟁 로펌 간에 오래 전부터 물밑 협상이 오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대표는 핏대를 세워 호된 질책을 퍼부었다.
"을 변호사, 왜 새벽부터 나를 열받게 해? 그 동안 뭘 하고 다녔나? 뭘 하고 다녔기에 이런 중대한 정보도 입수하지 못 하고 그래?"
"………………………."
"우리 정보망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정보 수집기능을 대폭 강화해야겠어. 그 변호사가 그 로펌으로 가면 우리의 금융감독원 사건은 몽땅 그쪽에 뺏길 텐데 어쩔 것인가? 우리 금융팀은 뭘 먹고 살지?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거야?"
"죄송합니다."
"어쨌든 외양간은 나중에 고치고, 우선 빼앗긴 보물(?)을 가져 와야지. 지금 즉시 오 변호사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으시게. 시간이 없네. 내가 오늘 밤에 그를 직접 만나 담판을 져야겠어. 오늘 저녁에 xxx한정식 집에 예약을 해 놓을게. 을 변호사는 그를 데리고만 와. 나만 단 둘이서 만나는 거야."
을 변호사는 오 변호사에게 서둘러 전화를 한다. 그런데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시 걸고, 걸고 또 다시 걸고…. 아무리 해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오 변호사의 입장도 뻔하다. 이미 경쟁 로펌에 출근하기로 한 이상, 다른 로펌에서 오는 전화는 받을 필요도 없고, 인간의 도리상 받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오전 내내 그의 지인과 동료들을 총 동원하고, 난리를 치고서야 겨우 연락이 되었다. 그리고 만남을 제안했다. 그는 펄쩍 뛰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왜 그분을 만나? 다른 법인으로 출근하기로 한 마당에, 그것도 내일 아침인데…. 안 돼. 난 그럴 수 없어. 가기로 한 로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 그분을 만나서 내가 무슨 말을 해? 잘못하면 양쪽 모두에게 못할짓만 하고, 나만 나쁜 놈이 될 것인데..."
"자네 말은 나도 잘 알아. 그러나 나도 자네가 이쪽으로 꼭 와야 한다는 얘기가 아닐세. 너무나 간곡한 대표의 부탁이라 내가 이 약속은 꼭 성사시켜야 해. 그래야 내 면이 서지 않겠나? 나와 자네 간의 각별한 관계를 알고 부탁하는 것인데…. 제발 부탁이니 무조건 눈 딱 감고 그냥 한 번 만나만 줘. 그분이 무슨 말을 하든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도 돼. 반대로 이쪽으로는 올 수 없다고 대표를 설득해 보든지…. 그리하여 자네의 도덕성도 보여 주라고. 내가 가운데 끼어서 죽을 지경이야."
"자네 입장이 아무리 그래도 난 안 되겠네. 그런 이중적인 행동은 할 수가 없어"
"제발 부탁이야, 그냥 선배 한 번 만나서 밥 한 번 먹는다고 생각해 줘. 꼭~"
"…………….."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해도 이젠 전혀 답이 없었다.
난감했다. 그러나 을 변호사도 포기할 수는 없다.
을 변호사는 저녁 때 오 변호사의 집 근처에서 잠복(?)했다. 밖에 나온 어느 가족에게 물으니, 아직 귀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윽고 8시쯤 집 근처에서 그와 마주쳤다. 이야기는 길어졌다.
을 변호사는 같은 말을 하고 또 되풀이 했다. 안 된다는 오 변호사와 실랑이는 계속되고 있었다. 카페 등 장소를 바꿔가면서….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드디어 오 변호사의 대답만을 기다리던 A로펌 대표의 전화기가 울렸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같이 갈 테니, 바로 그 한정식 집으로 나오십시오."
식당에 도착한 을 변호사는 그를 음식점 안으로 밀어넣고 줄행랑을 쳐 귀가했다.
다음 날 새벽녘. 자고 있는 을 변호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A로펌 대표였다.
"아, 자고 있는데 미안해. 나, 밤새 오 변호사와 술 마시고 방금 헤어졌어. 을 변호사가 수고가 많았네. 나중에 한 턱 낼게, 허허.."
"네~?"
대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해 주지 않았다. 허~ 참, 007영화도 아니고…. 을 변호사는 대표의 지독한 인재욕심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얼마 후, 소문이 돌았다. 오 변호사는 금융감독원에서 퇴직은 하였다. 그런데 무슨 급한 일이 생긴 듯 당초에 가기로 했던 로펌 출근을 유보하고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는 뉴욕에서 장기체류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을 돌보면서 New York University의 AMP(Advanced Management Course: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을 변호사의 사무실에 오 변호사가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을 변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선 그 날부터 을 로펌에 출근하게 되었다고 했다. 을 변호사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후에 들리는 소문은 이랬다.
A로펌의 대표와 오 변호사는 처음 만난 한정식 집에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폭음을 하고 헤어졌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그 후 오 변호사는 경쟁 로펌의 출근을 무기한 연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그 이유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막내아들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서 미국변호사들과 교류하고 또한 로펌들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그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결국 경쟁 로펌으로 가려던 약속을 뒤집고, A로펌에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을 변호사는 추측한다 – 오 변호사의 그런 번복과정이 A로펌 대표와 오 변호사가 그날 저녁에 짠 각본(?)에 따른 것일 것이라고….
"If you think it's expensive to hire a professional, wait until you hire and amateur (어떤 인재를 보고 비싸다고 생각하면, 결국 어설픈 인재를 채용하게 된다)." – Red Adair
"나의 공장을 가져가고 차를 부셔도 좋다. 다만 나에게서 포드 사람만 빼앗아 가지 마라. 그러면 이 사람들과 함께 다시 지금의 포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헨리 포드, 포드 자동차 창업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