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머에 이런 말이 있다. 회계감사를 주 업무로 하는 어느 회계사(이를 auditor, 즉 監査人이라 한다)가 신호등이 아직 빨간색인데도 그냥 길을 가로질렀다. 옆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물었다.
"Why did the auditor cross the road((빨간 신호등인데) 저 감사인이 왜 길을 건너갔지요)?"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답했다.
"Because she did what they did last year(그녀는 작년에 한 일을 그대로 반복한 겁니다)."
회계감사업무라는 것이 주로 과거의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라는 풍자이다.
Paul Orfalea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Accountants are in the past, managers are in the present and leaders are in the future(회계사는 과거에 살고, 경영자는 현재에 살고, 리더는 미래에 산다)."
이런 유머도 있다.
"If an accountant's wife cannot sleep, what does she say(회계사의 아내가 잠 못 이룰 때 하는 말은)?"
"Darling, could you tell me about your work(여보, 자기 업무에 대해 얘기 좀 해줄래요)."
감사업무라는 것이 대체로 무미건조한 일이라는 감사인들의 자조적 풍자이다.
회계사들끼리 하는 말에 이런 말도 있다.
"회계감사는 3D업종이다."
회계사시험에 합격해 회계사가 되면, 그들 대부분이 회계법인, 특히 대형회계법인에 입사해서 우선 감사업무를 배우게 된다. 회계사의 기본적 업무가 회계감사이기 때문이다. 회계감사업무는 초급회계사로서 누구나 반드시 배워야 하는 일이다.
A 회계법인의 갑 회계사도 입사 후 처음으로 어느 법인의 회계감사에 투입됐다. 회계사로서 꼭 알아야 할 기본업무를 배우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대가 매우 컸다.
갑 회계사는 학교에서 배운 감사기법을 동원하여 스스로 회계감사를 멋지게 수행해 보겠다는 기대에 차 있었다. 철저하고 공정한 감사로 회사에 회계사의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감사를 시작해보니 그런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업무라고 배정받은 것은 선배가 샘플로 뽑아 주는 거래금액이나 계정금액을 단순히 합산해서 장부의 숫자와 일치하는지를 비교하는 등의 지극히 단순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참았다. 내가 누군가? 그 어려운 국가고시를 통과한 공인회계사 아닌가? 이건 일반 경리직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라는 불만도 생겼으나 꾹 참았다. 며칠이 지나면 좀 더 차원 높은 일, 일다운 일이 배정되겠지 하고 기대하며 묵묵히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주가 지나고 2주가 또 지나도…, 변화는 별로 없었다. 계속해서 비슷한 일들이 주어졌다.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복사를 해서 이어 붙이는 따위의 일이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회계사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사구도(監査構圖)나 핵심절차 등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감(感)은 전혀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거대한 조립(assembly)공장에서 하루 종일 단순작업만 반복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 공장의 일개 부품으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거기에다 이 감사팀이 동일회사를 계속하여 감사를 하다 보니, 변동이 없는 과거의 자료나 증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재정상태나 영업실적 추이에 큰 변동이 없으니, 감사의견이나 형식도 달라질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전년도 감사보고서의 자료를 잘라내고 복사해서 붙이고 합쳐 당년도의 감사보고서를 모자이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선배로부터 감사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감사팀의 선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갑 회계사, 회계사 즉 CPA가 뭘 뜻하는지 이제는 감을 잡았지?"
갑 회계사가 머뭇거리자 선배가 말했다.
"회계사는 과거 문서를 자른 후(cut), 그걸 풀칠해서(paste), 다른 문서에 붙이거나(attach) 또는 합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CPA라고 부르는 거야, 하하."
물론 선배는 농담으로 한 말이다. 실무에서 많은 회계사들이 과거의 감사자료와 감사보고서를 복사한 후 연도만 바꾸어서 작성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그런 행동을 풍자한 말이다.
하지만, 감사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하게 된다. 시험 전에 심오한 감사이론과 과학적인 감사절차에 대하여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건만, 막상 회계사가 되어 책에서 배운 감사업무를 제대로 적용해 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감사팀을 피곤하게 하는 일은 많다. 한두 가지 예를 더 보자.
회계감사 시에는 반드시 연말에 재고자산을 파악하고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그러자면 고객의 공장이나 창고 등에 실제로 직접 들어가서 재고량을 파악하고 가치를 추산해야 한다. 실재 재고수량을 파악하고 재고품의 훼손여부 등을 측정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수조사는 아니다. 표본조사를 통하여 전체 물량을 추산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공장은 그 구조나 재고자산의 특수한 형상 등으로 인하여 감사인이 실물조사를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필수절차를 꼭 시행해야하기 때문에 이를 생략할 수는 없다. 군화와 작업복에 포복자세(?)로 기어 다니면서 실물조사를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심지어 화학공장의 경우에는, 방독면을 착용하고 조사를 할 수도 있다. 감사인들에게 이게 보통 일이겠는가?
거기다가 회사가 장부에 계상한 재고수치를 적힌 그대로 신뢰할 수만은 없다. 화학공장의 예를 들어 보자. 기업이 재무상태를 좋게 보이기 위하여, 실제로는 없는 재고를 빌려서 갖다 놓을 수도 있고, 혹시 산같이 쌓여 있는 화학물질의 내부를 돌덩어리(?)로 채워 놓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과거에 실제 그런 사례가 있었다. 감사인의 눈으로 의심을 하자면 끝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공장이 한 곳에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경우도 많다. 감사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진실된 숫자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감사인의 재고조사는 전수조사(全數調査)가 아닌 표본조사(標本調査)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표본이 잘 못 추출되면 그 표본 값이 전체 모집단의 그것을 크게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감사인 업무에는 항상 이런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감사인의 마음은 무거운 경우가 많다. 물론 기업업무가 전산화되어 있는데다가 기업의 내부통제제도가 강화되고 있어 위험들이 크게 줄어들고는 있지만 말이다.
또 연말에 감사를 해야 할 감사고객 (audit client)의 수가 한 둘이겠는가? 그 수가 몇 십 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감사인은 전국의 공장, 지점 등을 다 휩쓸고 다녀야 한다. 이렇게 많은 감사나 재고조사를 연말 또는 연초에 집중 수행해야 하니 이들이 얼마나 바쁘겠는가?
특히 직급이 낮은 회계사 초년병들은 더 힘이 드는 일들을 하게 되니 그 몸이 얼마나 지치겠는가? 이런 busy season에는 어쩌다 한 번 집이라고 들려도 가족 얼굴보기도 쉽지 않다. 다음날 새벽 눈을 뜨는 순간 다시 새벽 출근이나 새벽 출장을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감사는 3D라는 자조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야기를 종합하면 회계감사는 현재나 미래의 기업경영문제를 다루는 경영자문이나 당장 현금이 걸려 있는 조세문제에 대한 자문과는 달리, 그 속성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재무제표에 대한 검증이고, 또한 회사의 재무상태 등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업무가 단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업무의 성격이 젊은이들에게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많지 않다.
따라서 초년의 회계사들은 감사가 자기의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자기의 진로를 한 번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물론 감사의 성격이 이렇다고 하여 젊은 회계사들이 감사업무에 대한 자기의 적성여부를 성급히 판단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회계사의 주 업무는 회계감사이기 때문이다.
회계법인들의 주 수입원도 감사보수이다. 어떤 직업이든 그 숙련화의 기간 및 단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혹독한 밑바닥 경험이 미래의 대가(大家)를 탄생시키는 법이다. 나중에 훌륭한 감사인이 되려면 이런 과정을 잘 견뎌내야 한다. 초기의 그런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고 감사업무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젊은 회계사들 중에 이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전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한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야 나중에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여 관리자가 되더라도 감사업무를 능숙하게 지도하고 관리를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고위 관리자가 되면 주로 자기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치 현장에 직접 나가 있는 것처럼 감사업무를 훌륭히 감독할 수 있는 것이다.
'좌견천리 입견만리(坐見千里 立見萬里)'라는 말이 있다.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본다는 말인데, 젊어서 온갖 힘든 과정을 통해 업계 고수(高手)가 된 회계감사 파트너들의 직관(直觀)들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