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변호사와 미국회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 이미 오래다.
필자가 알고 있는 미국의 자격증 시험 응시자격요건 및 연수과정 등을 설명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다만, 응시자격요건 등은 항상 변동하는 것이니 정확한 내용 등을 알고자 하는 독자는 별도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회계사의 경우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도 일정한 과목(회계학과 경영학 관련 과목 등)에서 일정 학점을 이수한 사람은 미국에서 미국회계사자격시험을 볼 수 있다. 즉, 미국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도 미국사정기관의 시험자격사정(査定)을 거치면 미국회계사회(American Institute of Certified Accountants: AICPA)에서 실시하는 회계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시험문제는 전국 공통이나, 시험자격이나 절차 그리고 합격 후의 연수절차 등은 각 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일단 시험에 합격하면 2년간의 연수과정을 거친 후 미국회계사 자격증을 받게 된다.
변호사도 외국인들이 시험을 치룰 수는 있으나, 회계사와는 달리 미국이나 미국이 인정한 외국의 law school(3년)을 졸업하거나 law school에서 LLM course(1년)를 마쳐야 한다.
한국에서 법학과목들을 이수한 사람들은 미국에 가서 LLM과정을 거친 후 미국변호사회 (American Bar Association: ABA)가 실시하는 미국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미국변호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시험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어려운 시험이라고 생각을 하는 듯하다. 특히 영어로 치른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한국의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들이 보는 변호사시험(또는 과거의 사법시험)이나 한국의 회계사시험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시험 자체가 자격증을 수여하기 위한 시험이다. 시험에서 일정한 점수만 받으면 합격자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지 무조건 다 합격시키는 것이다. 일정한 점수를 얻더라도 그 때 그 때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합격자수를 조절하는 우리나라의 시험들과는 많이 다르다.
따라서 합격선의 성적만 받으면 무조건 합격시키다보니 매년 합격자로 배출되는 변호사나 회계사의 수가 엄청나다.
문제는 영어다. 시험은 당연히 영어로 치러야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시험문제로 나오는 영문 그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다.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춘 한국의 대학졸업자들이라면 연습문제만 자주 풀어보면 시험문제들의 형식에 익숙해 질 수 있다. 시험문제 형식에 익숙해지면 시험을 치는데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다만 미국의 시험들이 상당히 빠른 영어독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상당 기간의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기출문제(旣出問題) 등을 통해 시험문제를 푸는 연습을 많이 해 놓아야 시험장에서 문제의 분량에 당황하지 않고 시간에 덜 쫓기게 된다.
이런 시험연습은 한국에 앉아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미국의 책이나 기출문제 등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격증 취득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취직이다. 미국 시험에 합격했다 해서 한국의 로펌이나 회계법인의 취직이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자격증이지만 미국에서의 취직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professional firm들의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합격자들은 고급 영어에 미숙하고 미국의 문화에 익숙하지 못해 고객 상대가 쉽지 않으므로 채용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외국인의 취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미국에서 취직의 기회를 찾기란 지극히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미국자격사를 지나치게 선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자격증을 폄훼(貶毁)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로펌이나 회계법인이 아닌 일반 기업에 취직하려 할 때 자격증이 도움을 준다.
특히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이나 외국인투자기업(예를 들면, Google, Microsoft, GE 등)에 취직하려 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된다.
한국법뿐만 아니라 미국법에 대한 지식, 또는 한국의 회계기준뿐만 아니라 미국의 회계기준까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서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므로, 기업측에서 우대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특히 영어로 보는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입사지원자가 영어능력을 이미 인정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자격증은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의 전문법인(professional firm)보다는 기업에 취직하려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 날아가 미국변호사나 미국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돌아오면 로펌이나 회계법인의 취직이 가능했다. 미국법을 잘 아는 사람 또는 영어를 잘 하는 영어실력자가 귀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영어실력과 영어 전문용어(terminology) 때문에, 이들이 국제거래계약서와 같은 번역(飜譯) 일 등에서 활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기업인들이 이들의 미국자격증 명함만 보아도 "wonderful"을 외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미국자격증 소지자가 적어서 희소가치가 제법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업무에는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대외 활동에는 제법 도움이 되었다.
필자도 오래 전에 미국자격증을 하나 취득하였다. 귀국하였을 때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한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미국에 가서 바로 미국자격증을 따 올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어떨까? 한국 학생들의 영어에 대한 열의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어려서부터 영어공부를 하는 탓인지 한국 학생의 영어수준이 급격히 향상된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한국의 변호사나 회계사의 영어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
한국의 변호사나 회계사들이 웬만한 영문이나 회화 정도는 스스로 해 낸다. 거기에다 많은 로펌에는 영어를 모국어(native speaker)로 쓰는 미국인 변호사와 교포변호사들이 이미 상당히 많이 진출해 있다. 회계법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이들이 왜 한국에 와 있을까? 한 그룹은 한국이나 아시아에 관심이 많아서 자발적으로 넘어 온 사람들이다. 또 한 그룹은 미국에서 취직을 하고 싶어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한국으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눈 여겨 볼 것은 이들 중에는 이미 미국 굴지(屈指)의 로펌이나 회계법인에 취직이 되어 상당기간 근무를 한 사람들도 많다. 그 좋은 직장을 떠나 한국에 온 것이다. 왜일까?
미국에서 백인 등 미국의 주류층과의 경쟁이 너무 버거워서 중도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진정한 실력자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이들 중에는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법과 국제법에 대한 조예가 깊은 훌륭한 전문가(professional)들도 많다. 과거와는 달리 한국의 로펌과 회계법인에는 이미 이런 외국의 프로들 다수가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정통의 영어법률문서를 즉각 독파하고 외국인을 만나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런 유능한 미국변호사와 미국회계사들이 한국 로펌과 회계법인에 넘쳐나고 있어,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미국에 가서 시험만 합격하고 돌아온 미국변호사나 미국회계사에게 줄 수 있는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법은 나라마다 다르므로 미국 법이론이나 지식이 한국에서 즉각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회계이론의 경우에도 한국의 회계사들이 이미 국제회계기준을 잘 알고 있고,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미 미국회계사자격까지 따 놓고 있어 미국회계사에게서 도움을 받을 일이 많지 않다.
요즈음은 많은 한국의 변호사나 회계사들이 미국의 시험에도 도전하여 미국의 자격증까지 따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되어 있다. 업무에는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지만 대외 겉치레(?)용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일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자격증 취득자가 한국에서 전문직으로 취직하기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 같은 이유인지는 몰라도, 일본 사람들은 미국자격증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이 글을 오해하여 미국변호사나 회계사 자격증에 대한 기피현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필자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프로법인 취직문제와는 무관하게 미국자격시험 자체는 한 번 도전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 시험과정 자체가 실력(영어+미국법학/회계학 지식)을 키우는 아주 좋은 계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언급한대로 기업 등에 취직하려 할 때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다만 전문법인(professional firm) 취직이 그 주목적이라면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