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을 둘러싼 열 린우리당내 기류가 강공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원칙론과 현실론을 절충한 청와대의 '분리대응안'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논의의 흐름이 원칙론을 앞세운 박영선(朴映宣) 의원 안 쪽으로 물꼬를 되돌리고 있는 것.
다시 말해 금산법 논란의 핵인 삼성 금융계열사의 '5%룰' 초과지분 처리를 놓고 삼성카드 지분만 강제매각하고 삼성생명 지분은 의결권만 제한하는 '편법'을 쓰지 말고 두 회사 모두 '원칙대로' 지분을 해소하라는 의미다.
이 같은 원칙론은 삼성 소유.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분리대응안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는게 경제계의 분석이다. 만일 원칙대로 삼성생명의 초과지분까지 처분한다면 대주주 지분관계와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경영권 향배, 경영권 승계구도에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올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우리당이 검토중인 안은 박영선 의원 안보다는 어느정도 삼성측에 '숨통'을 터주는 측면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3∼5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삼성 스스로 '5%룰'에 적합하도록 해소방식과 시기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은 강제매각 외에도 증자 등을 통해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5% 이내로 떨어뜨리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셈이다.
그러나 증자 역시 대주주들의 자금여력이 충분할 지 의문인데다 전체 소유.지배구조에 예기치 못한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삼성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당내의 기류가 이처럼 바뀐 것은 일단 청와대 분리대응안에 대한 사회 일각의 비판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커보인다. 분리대응안이 금산법 취지를 살리면서 위헌논란을 탈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는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삼성 봐주기'라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게 여당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10.26 재선거 참패 이후 당의 개혁 정체성과 선명노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는 점도 금산법 개정논의의 중대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재야파 모임인 민평연과 신진보연대 등 당내 개혁진보세력은 최근 공개적으로 원칙론을 내세운 박영선 의원 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평연 소속 의원들은 20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영선 의원안을 지지할 예정이었으나 당 지도부의 설득 끝에 이를 취소했다는 후문이다.
여당의 이 같은 스탠스 변화는 재선거 참패이후 당의 정책노선이 실용에서 개혁으로 '코드전환'하려는 움직임과도 맞물려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당이 원칙론으로 당론을 몰아갈 경우 작년 정기국회때 종합부동산세법 개정때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당내 갈등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나치게 명분과 원칙만을 앞세워 국내 간판기업인 삼성그룹의 발목을 잡는 것은 어렵사리 회복국면을 타고 있는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 여파를 몰고올 것이란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한 경제통 의원은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반개혁적 인물로 낙인찍힐까봐 조용히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나 당론을 결집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관료출신을 중심으로 한 당 일각에서 정부 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 점도 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위헌논란을 내세워 삼성생명의 초과지분은 아예 '면죄부'를 주고 삼성카드의 초과지분만 의결권을 제한하자고 주장하고 잇다.
때문에 21일 제3정조위원회 주최로 열리는 정책소의총과 24일로 예정된 정책의총은 재벌개혁과 대(對)삼성 대응기조, 실용 대 개혁노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분출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