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감염폭발, 현지 분석은 "한국처럼 안한 탓"

같은 기숙사, 좁은 방에 함께 지내는 거주 환경
이주노동자 사이에 감염자 나왔으나, 접촉자만 검사해
한국 신천지 사태와 비슷하나 서로 다른 방역방식
싱가포르 정부, 이주노동자의 환경 개선 약속해

◆…싱가포르가 격리조치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모습 (사진 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으로 꼽혔던 싱가포르가 지난달 중순부터 감염자가 수십 명씩 늘기 시작하다가 이번 달 18일부터 천명 단위로 신규확진자가 늘고 있다.

신규확진자가 지난 20일 1,426명 이르렀으며 어제 21일 조금 줄어든 1,111명에 달했다. 지금까지 총 누적확진자가 9,125명이고 사망자가 11명이다. 신규감염은 주로 이주노동자가 거주하는 기숙사와 작업장에서 발생했다.

포춘은 싱가포르 정부가 좁은 환경에 머무는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감염자가 발생했음에도 이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검사를 시행하지 않아 지금의 결과를 맞이했다고 지난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신문은 싱가포르가 이런 반전을 맞이한 까닭을 지난 2월 6일에서 찾았다. 이 시기 싱가포르는 강력한 봉쇄조치 없이 코로나19 발병을 효과적으로 막아 전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방글라데시에서 온 39세 이주노동자가 코로나19 증상을 보였다.

몸이 아픈 이주노동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여러 번 내원했지만 매번 집에 되돌려 보내졌다. 그의 집은 이주노동자 기숙사로 한 방에 10명이 생활하고 화장실과 요리시설도 함께 쓴다. 그는 이주노동자 동료들과 같이 쇼핑센터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 뒤 2월 7일, 그는 병원에 입원했고 그다음 날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는 도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저임금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처음 확인된 42번째 감염자였다. 지금까지 싱가포르에선 9,125명이 감염되었고 이 가운데 70%인 6,400여 명이 이주노동자이다.

신문은 많은 나라 정부들이 우왕좌왕하다가 의심환자를 바로 검사하고 격리조치 하지 않은 채 집에 되돌려 보내, 귀중한 초기 방역기회를 놓쳤다고 꼬집었다.

일부 보건 전문가들은 한국과 다르게 싱가포르는 2003년 발병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경험으로 만든 대응지침을 수정하는데 더디었다고 밝혔다. 기존 싱가포르의 대응지침은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공중보건대학 제레미 임 교수는 "사스와 달리 코로나19는 전염성이 강하면서도 증상은 가벼운 편"이라고 말하며 "오래된 대응지침을 바꿔야 하지만 전염병 확산 상황에서 빠르게 바꾸기란 쉽지않다"고 밝혔다.

신문은 이번 '싱가포르 42번 확진자'는 '한국 31번 확진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신천지 사태 이전까지 한국도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을 추적해 검사하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신도 20만 명이 서로 가깝게 붙어 예배드리는 종교 집단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재빨리 감염자 접촉과 관계없이 종교단체로부터 신도 명단을 받아 그 모두를 검사했다.

신문은 한국이 코로나19가 사스와 다르다 보고 지역 사회에 광범위한 검사를 해 감염자가 많이 늘어났지만, 그에 비례해 빠르게 줄어들었다고 말하며 결국 봉쇄를 시행할 필요가 없었다고 전했다. 반면 싱가포르가 42번 확진자가 나타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가 사는 지역에 광범위한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싱가포르는 42번 확진자와 접촉한 17명을 검사하고 기숙사를 운영하는 회사들에 더 청결한 환경을 유지하고 체온을 검사하도록 요청했을 뿐이었다.

신문은 싱가포르 보건부가 42번 확진자 뒤에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가 검사를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이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전하며 부처 공무원의 말을 추측건대 대규모 검사가 꽤 늦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4월 14일 기자회견에서 감염된 이주노동자 수 백명이 매일 발견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부 케네스막 의료 담당관은 "지금까지 1,500명이 검사받았고 앞으로 5,000명을 더 검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하루 2만 원 버는 저임금 노동자가 싱가포르 인구의 20%인 백만 명을 차지한다고 전하며 이들 대다수가 지역 사회와 떨어져 있는 곳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인구는 2018년 기준 560여만 명이다.

전염병이 이들을 덮친 적이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8년 모기로 감염되는 치쿤구니아 바이러스(뎅기열과 비슷)에 이주노동자들이 감염됐다. 당시 기숙사엔 더운 공기를 식힐 환풍기가 부족해 창문을 열어야 했지만 창문엔 방충망이 없어 감염이 쉽게 확산했다.

신문과 인터뷰한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법학과 교수 유진 탄 교수는 "정부가 기숙사 감염을 줄이기 위한 검사를 왜 늘리지 않았는지 설명하기 힘들다"며 "공공 보건 관점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지역 사회의 일원인데도 초기 방역 시 이주노동자들을 고려치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각), 리셴룽 총리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가벼운 감염증상을 보인다”며 “앞으로 이들의 건강과 복지를 챙기겠다"고 밝혔다.

지금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노동자에 적극적인 검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을 위한 기숙사 건설도 진행하고 있으며 필수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위해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하는 임시 주택시설을 제공했다.

지난 16일, 42번 확진자는 페이스북에 "두 달 동안 인공호흡기를 매단 채 중환자실에 있었다"고 말하며 "이제 안정적인 상태에 돌아왔으나 병원에 있는 동안 첫 번째 자녀가 태어나는 것을 놓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