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이 23일 '고가 아파트를 사들이는 부동산 법인 전수 검증 착수'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 국세청)
지방의 병원장 A씨는 20대 초반인 자녀 명의의 광고대행·부동산 법인(자녀 100% 지분보유)을 만들었다. 이후 자신의 병원에 대한 광고 대행료 명목으로 자녀 부동산 법인에 수 억원의 광고료를 줬다. 이러한 광고 수입이 전체 매출액의 96%를 차지할 만큼, 그야말로 빈껍데기 회사였다. 자녀는 부동산 법인 명의로 20억원대 강남의 대표적인 고가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사실상 편법적으로 증여한 자금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한 국세청은 부동산 법인 이외에 병원의 탈루 혐의에 대해 샅샅이 살펴보고 있다.
국세청은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는 부동산 법인에 대해 전수 검증에 착수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증대상은 1인 주주 부동산 법인 2969개, 가족 부동산 법인 3785개다. 법인 설립 과정에서 자녀 등에게 편법적인 증여 여부, 고가 아파트 구입 자금의 출처와 이 자금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세금 납부 여부 등을 살펴본다.
이러한 검증 과정에서 고의적 탈루 혐의가 발견된 27개 법인의 대표자 등에 대해 세무조사가 들어간 상태다.
국세청의 조사 결과,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B씨는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발표(2017년 8월)되자 가족 명의의 부동산 법인을 다수 만들었다. 양도소득세 중과 등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회피할 목적에서다. 이후 보유 중이던 고가 아파트를 현물출자 형식으로 부동산 법인에 모두 분산·이전시켰다.
부동산 법인은 현물 출자된 자산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갭투자에 나서면서 300억원대 부동산 투기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사업소득 신고누락, 배우자와 자녀들의 부동산 취득거래 전체에 대해 자금출처·편법증여 여부를 조사 중에 있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회피를 위해 부동산법인을 설립한 사례, 사진 국세청 제공)
'1세대1주택 비과세'를 적용받기 위해 부동산 법인에 매도한 것처럼 가장한 사례도 있었다.
병원장 C씨는 배우자 명의로 고가의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부동산대책 발표 소식에 아파트를 팔기로 하고, 매각차익으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 납부를 하지 않기 위해 부동산 법인을 이용했다.
먼저 아파트 1채를 가족지분 100% 부동산 법인에 저가로 양도하면서 양도세를 내지 않았다. 두 달 뒤에 남은 1채를 매도하면서 1세대 1주택으로 신고했고 비과세 혜택을 적용받았다.
C씨는 상가·토지 등은 개인 명의로 보유하면서, 주택만 부동산 법인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규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배우자의 고가아파트 취득자금 출처, 병원의 수입금액 탈루 등 관련제세 탈루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세무조사는 부동산법인의 대표와 가족을 포함해 부동산 구입에 회사자금을 편법적으로 유용한 경우 해당 사업체까지 조사 대상을 확대할 정도로 강도가 높다. 국세청은 차명계좌 이용, 이면계약서 작성 등 고의적으로 세금을 포탈한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다.
또 다주택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부동산법인을 설립한 경우에도 아파트 양도차익에 대해 중과세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제도개선 방안을 기획재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동산 법인을 가장해 부동산 투기규제를 회피하려는 모든 편법 거래와 탈루행위에 대해 철저히 검증해 나가겠다"며 "부동산 법인을 설립한다고 해서 세원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격하게 관리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