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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플레이에서 자살골 넣는 프로들

조세일보 / 이종열 박사, (전)법무법인 광장 고문 | 2020.05.22 09:36

조세일보

"Finding good players is easy, but getting them to play as a team is another story (훌륭한 선수들을 찾아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들이 한 팀으로 일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 Casey Stengelgk

"서비스란 100점 아니면 0점 밖에 없으며 1점이라도 마이너스가 있으면 그것은 0점이며, 그러면 손님이 떠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 디즈니랜드

세계는 넓다. 그러나 세계는 또 아주 좁다. 과거엔 자식이 뉴욕에 파견되면 전화 한 번 하기 어려웠고, 수시로 몇 주씩 걸리는 서신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모든 소통이 실시간이다. 전화에, 메시지에, 카톡에….

세상이 이러니 professional firm(프로법인)의 생활도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legal opinion (법률의견서)을 쓰더라도 그것을 미국이나 영국에 보내 놓고 그 다음 날 회신이 오길 기다렸다. 그 사이 최소한 하루 이틀의 휴식이 가능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그러다보니 한 편이 의견서를 써 보내고 상대방이 그것을 읽어본 후 다시 회신문을 작성해서 보내던 방식으로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날 수가 없다. 이제는 무슨 문제가 생기는 즉시 전화를 하고 그 자리에서 답을 알아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conference call, teleconference(전화회의) 또는 video conference(영상회의)가 일상화되었다. 거기서 고객이 각종 질문들을 동시 다발적으로 퍼붓는 것이다.

이런 회의에서는 언제 무슨 질문이 날아들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이를 피할 수가 없다. 날아 들어오는 질문에 바로 답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 국제적인 거래나 M&A의 경우에 이런 국가간 conference call이 아주 흔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요즘 변호사 등 전문직에게 유창한 영어가 꼭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conference call에는 보통 여러 나라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다국적기업의 각 나라의 거점 인사들이 함께 모여 토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중요 임직원들이 세계 곳곳에 여행하는 도중에 conference call에 참여해야 할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회사를 상정해 보자. 그 회사는 다국적기업으로서 한국에 큰 자회사도 있다. 이때 그 미국의 한국 자회사가 영국회사의 한국자회사를 M&A(인수합병)하려 한다고 치자.

이와 관련하여 그 미국기업의 인사들이 한국 로펌에게 conference call을 요청했다. 일종의 예비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이 conference call에는 미국 뉴욕의 headquarters(본부) 임원 및 사내변호사(in house counsel), 미국의 로펌과 accounting firm(회계법인), 홍콩 regional headquarter or office(지역본부)의 임직원, 한국 자회사의 임직원, M&A 상대인 영국회사의 headquarter, regional office 등의 임직원과 변호사, 회계사 등이 모두 참여할 것이다. 세계에 퍼져 있는 자회사나 자매회사를 순회 중인 양국의 임직원도 여행 도중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서울의 L로펌 대회의실. 15명 정도의 member 들이 모였다. 주로 M&A Group 멤버들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혼성집단이다. 인수합병변호사(M&A lawyers), 회사법 변호사(corporate lawyers), 자금조달 등 재무담당변호사(finance lawyers), 조세담당변호사와 회계사(tax lawyers/accountants), 노동변호사(labor lawyers), 공정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fair competition lawyers), 대정부인허가를 담당하는 변호사 (government relationship lawyers), 특허상표 변호사 (patent lawyers) 등이 참석했다.

물론 여기에서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요원이 있다. 즉, 한국법은 잘 모르지만 영어가 자국어인 미국인 변호사나 영국인 변호사들이다. 국제회의를 원활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다. 회의는 M&A 팀장의 인사에 이어 미국변호사가 주도한다.

한국의 회사법, M&A관련법, 정부의 인허가, M&A관련 조세법, 공정거래신고문제, 특허상표의 상호이전문제 등의 순서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곧 미국과 영국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한국의 노동문제로 넘어 갈 차례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민감한 이유는 한국의 양 노동조합이 너무 강성인 데다가 이들 노동조합이 본 건 M&A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중요한 시기에 L로펌의 노동법그룹에는 여러 명의 변호사들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최근 중견변호사 몇 명은 국제회의참석과 중요한 국제거래 건으로 외국에 출장 중이었고, 처음부터 이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던 이 그룹의 팀장은 갑자기 몸이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기 때문이다.

노동법팀장이 참석을 못하게 되자 M&A팀장은 크게 당황하였다. 누가 대안(代案)이 될 수 있을지를 놓고 여러 사람과 상의를 하였다. 그런데 다행히 그 팀에 노동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노동법 전문 박사 한 분이 계셨다.

그는 과거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노동부에서 간부로 오랫동안 근무하였다. 거기에다가 한국에서 법학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미국 로스쿨의 LLM코스를 거쳐 미국변호사 자격증도 취득한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 박사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L로펌에서는 그를 고객과의 회의에는 잘 참석시키지 않았다. 그의 주요업무는 내부에서 국내외 이론과 판례를 연구하는 것과 노동부와의 관계유지에 국한되어 있었다.

개성이 강해 이런 회의에는 적합한 인물은 아니지만 당장 사람이 없는지라 L로펌 경영층은 궁여지책으로 그 박사를 이 회의에 참석시키기로 최종 결정을 하였다.

회의를 이끄는 미국변호사는 저 쪽에 대기하고 있던 그 박사를 불러 옆에 앉히고 미국과 영국 측에 간단히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에서 날아오는 질문들이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 박사는 당당하게 질문을 받아 답변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있는 모습이었다.

반면 미국변호사에게는 그 박사의 답변들이 세련미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더욱 걱정인 것은 그가 까다로운 질문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자꾸 "안 된다"는 답변만 하니, 고객이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난해한 이슈이기 때문에 로펌을 찾는 것인데 그저 "안 된다. 하지마라"라는 식의 교과서적인 답변을 계속하니 고객의 그런 반응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런 답변은 보통 담당공무원이 무사 안일하게 쉽게 주는 답변이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재하던 미국변호사가 당황한 듯 말렸다.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하라고 귓속말로 전했다. 더 연구해서 나중에 답을 서면으로 보내 주겠다고 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영어로 답변하기 까다로운 질문은 자기와 한국어로 잠깐 상의를 해주면 자기가(뉴욕 변호사 답게) 미국식 답변을 대신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무시하고 자꾸만 독단적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미묘한 뉘앙스가 있는 복잡한 질문에도 한국식 영어로 무미건조한 답변을 하다보니 민감한 내용에 대한 표현이 매끄럽지 못했다. 회의를 이끌어 가는 미국변호사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하면 이 한 사람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변호사가 아주 잘해온 conference call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러자 M&A팀장도 당황하였다. 마침내, M&A팀장도 신경이 곤두섰다.

"저렇게 복잡하고 미묘한 질문에 독단적으로 척척 답변을 해 버리다니… 저 사람 큰 일 나겠네… 한국인의 영어로 설명이 곤란한 것들은 미국변호사에게 중간 중간에 설명을 하여 미국변호사가 미국식으로 설명을 하도록 하여야 하는데… 자기의 한국식 투박한 영어로 계속 답변을 해 대니…. 미국 손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이들이 왜 불안해하는지 여러분도 바로 짐작하였을 것이다. 고객들은 대개 로펌이 쉽게 답을 줄 수 있는 질문들은 잘 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고민을 하고 또 해도 답을 못 찾을 때 비로써 로펌 등에 찾아오는 것이다.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이슈들을 들고 오는 것이다.

그런 질문들은 조금만 잘 연구하면 법의 경계선을 넘지 않을 수 있고, 또 조금만 잘못하면 그 선을 넘어버리는 것들이어서 아주 미묘한 사항들이다. 이에 대한 전문직의 대답은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그리고 질문이 까다로우면 답변을 보류하고 충분한 연구를 한 후 결론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노동담당 박사는 그저 쉽게 교과서적인 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안 된다는 답변은 누가 못하랴?

세상 일들은 안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뭔가를 하려 할 때 문제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한 것이다. 전문가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자문을 해주어야 한다.

고객이 어떤 프로젝트를 가지고 프로법인을 찾는 주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문제없이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즉, 그 프로젝트는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다).

둘째는 추진은 하되 부수적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크고 작은 위험성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들이 무엇이며, 그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답변이 무엇일까? 그것은 "안 된다"는 부정적 답변이다. 안 하면 항상 문제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박사의 즉각적인 영어 답변도 문제이다. 미묘한 문제일수록 장점과 단점 또는 찬성과 반대요소들을 일일이 짚어 보면서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전문직의 자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영어라면 "나도 이 정도는 한다"는 식으로 계속 자기의 영어로 세련되지 못한 답변을 해 댄 것이다.

결국, 미국 변호사가 끼어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현 상황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M&A팀장과 잠시 의견을 나눈 후, 미국과 영국의 참여자들에게 말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지금까지 제시된 노동질의에 대하여는 내부적으로 연구 검토를 더 한 후 서면으로 다시 정리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박사는 머쓱해졌다. 그리고 그날 conference call은 종료되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노동팀은 모든 질문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혹시 어설픈 답이 나갔으면 서면으로 수정해서 다시 보내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후, 미국고객에게서 conference call을 주재했던 미국변호사에게 email하나가 날아 들었다. 노동팀이 서면의견서를 한창 작성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그 동안의 도움에 감사를 드린다. 미안하지만 이 M&A건은 다른 한국 로펌과 일을 하기로 하였다."

프로젝트, 즉 큰 일감을 빼앗긴 것이다. 법인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왜 이 사람들이 자기들 법인을 선정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봤다.

알아보니 경쟁로펌이 금일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경쟁로펌이 conference call을 잘 해 냈고, 특히 노동팀의 답변과 설명이 자기들 로펌 보다 훨씬 신중하고 우수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한 고참 변호사가 말했다.

"그 박사는 과거 고급공무원의 권위적 습관에 젖어 자만심이 좀 강한 사람이었으나 실력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로펌에 와서는 그렇다 할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conference call 참석 기회를 이용해,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만 자살골을 넣어 버린 것 같다."

축구에서와 같이 각 선수는 주장이나 다른 선수들과 열심히 교감하면서 볼을 상대편 골문으로 최대한 가까이 드리블하여야 한다. 그런데 팀플레이를 무시하고 자기 실력만 과신하면서 무조건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 노동법 박사가 그런 것이다. 회의 진행자인 미국변호사, 그리고 M&A팀장과 열심히 교감을 하면서 답변을 이어갔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회의에서 한국 전문가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몇 가지 금기사항이 있다.

첫째는 가능한 한 단정적인(특히 부정적인) 답변을 피하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고객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좋은 방법을 찾아 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인의 영어 문제인데, 아무리 영어에 자신이 있더라도 그 영어는 한국식 영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native speaker가 답변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랑스럽게 해 댄 한국식 영어가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광장
이종열 고문

[약력] 서울대학교(경영학과) 졸, 세종대학교경영대학장·경영대학원장, 안건(현 안진)회계법인대표, 김&장법률사무소(부문)대표, 미국UC HASTINGS 법학대학원 방문교수,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조세분과 회장, 미국 및 호주회계법인 간부 등, (전)법무법인 광장 고문(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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