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뇌부 지시로 순차 하달…계열사 임원 교사에 해당돼"
변호인 "자기 사건 관련 증거인멸은 처벌 안 돼"
재판부 "계열사 임원들, 증거인멸 '교사범' 여부 큰 쟁점"…검찰 석명 요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계열사 임원들의 '증거인멸 교사' 여부를 놓고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서 공방이 펼쳐졌다. (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하거나 인멸을 교사한 혐의를 받는 삼성 전·현직 임원의 재판에서 '그룹 수뇌부 차원'의 지시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함상훈 부장판사)는 25일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 전·현직 임직원 7명의 증거인멸 및 증거인멸교사 혐의 속행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원이 그룹 수뇌부 차원에서 지시를 받아 '타인의 형사 사건'과 관련한 자료 삭제를 지시했는지를 놓고 검찰과 삼성 측이 공방을 벌였다.
먼저 재판부가 검찰에 계열사 임원들의 '증거인멸 교사 여부'와 관련한 석명(사실을 설명해 내용을 밝히는 것)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김모 삼성바이오 전무의 경우 보안 담당 직원을 통해 증거인멸을 지시해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도 '공동정범'이 아니라 '교사범'으로 기소돼 있다"며 "피고인 측은 자신의 형사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교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실행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검찰 의견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했을 경우 성립하는 범죄인데, 임원들이 '자신의 형사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인멸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처벌이 성립하지 않아 이에 대한 의견을 요구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검찰은 그룹 수뇌부가 결정한 사안이 하달돼 조직적이고 순차적으로 하달된 '전형적인 순차 교사'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양모 삼성에피스 상무 등은 '자신의 사건'을 인멸했다고 주장하지만 '자신 사건에 대한 인멸' 논리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들 임원의 증거인멸 경위와 배경을 보면 지금까지도 자신이 처벌받을 수 있어 (자료를) 지웠다는 진술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인의 논리대로라면 양 상무는 당시 회계부정을 인식했다는 것"이라면서 "변호인의 논리대로라면 양 상무 등이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본안 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삼성 측 변호인은 양 상무와 김 전무가 '자신의 형사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인멸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양 상무 측 변호인은 "증거인멸은 자기의 사건과 관련해선 처벌하지 않는다"며 "양 상무가 회계부정을 인정한다는 취지는 아니며, 어찌 됐든 회계와 관련돼 수사받을 수 있는 여지만 있다면 그런 자료를 지워도 처벌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원들의 증거인멸 행위와 관련해서 검찰은 수뇌부의 지시로 이뤄진 '전형적인 교사'라고 주장한 반면, 변호인 측은 '자기의 형사사건'을 인멸한 것이므로 처벌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증인신문 과정에서도 임원들의 '증거인멸 교사' 여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검찰은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바이오의 보안 업무 담당 김모 팀장과 피고인 신분인 이모 삼성바이오 재경팀장에게 삼성그룹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의 지시로 실행에 옮겼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두 명의 증인 모두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 모른다는 취지로 대답했고, 사업지원 TF 개입을 인지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김 전무가 부하 직원에게 자료 삭제를 지시한 것은 '윗선'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묻자 김 팀장은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이에 변호인이 "김 전무 지위 정도 되면 회사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쉽게 구별해서 의사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고, 김 팀장은 "저라면 그렇게 입장을 표할 수 있지만, 김 전무 입장은 말하기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재판부 또한 계열사 임원의 교사 여부를 재차 확인했다. 재판장은 "검찰 반대신문을 보면 '양 상무가 직원들에게 자료 정리를 지시했지만, 이행하지 않아서 직접 다 점검했냐'는 질문에 증인이 '네'라고 말했다'"면서 "이것은 교사냐, 정범이냐"고 검찰에 물었다.
검찰은 "그룹 차원의 지시가 내려와서 계열사에 직접 이행하는 상황이었고, (양 상무의) 직접적인 실행행위는 있지만 그룹 지시를 이행하기 위한 관리자의 전형적 행태"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계열사 임원들의 증거인멸에 대한 '교사' 여부가 큰 쟁점"이라며 "향후 증인신문 등을 통해 공동교사인지, 순차교사인지를 안 따질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한 다음 재판은 다음달 29일 보안 담당 직원 등에 대한 증인신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는 금감원 감리가 진행 중이던 2018년 5월경 공장 통신실 바닥을 흡착기로 들어 올리는 방식을 통해 메인·백업 서버 3대를 은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삼성전자 사업지원 TF와 보안선진화 TF 등 삼성 수뇌부가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들에게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컴퓨터 및 휴대전화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1심은 삼성전자 재경팀 이모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김모 부사장과 보안담당 박모 수장에게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삼성 수뇌부의 지시를 받아 자료 삭제를 이행하거나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나머지 5명에 대해선 집행유예의 징역형이 내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