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정치자금 전달' 한만호씨 동료 '거짓 증언 종용' 폭로
수감자 최모씨 "검찰 위증교사 조사해달라" 진정서 제출
한명숙 재판 법정 정식 증인 의혹 제기는 '최초'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법 수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수감자 최모씨가 검찰의 회유와 압박으로 거짓 증언을 했다며 최근 법무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 전 총리가 지난 2017년 8월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법정 증인에게 거짓 증언을 종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검찰의 위법 수사를 주장한 것은 한 전 총리 재판에 출석했던 정식 증인으로서는 처음이다.
한 전 총리는 대법원에서 지난 2015년 8월 유죄가 확정됐지만, 최근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이 언론에 공개된 데 이어 한 전 총리 재판 증인의 추가 폭로가 나오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29일 KBS 보도에 따르면 한 전 총리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진술했던 최모씨가 지난달 검찰의 '위증교사'를 조사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최씨는 진정서를 통해 한 전 총리 수사 당시 검찰의 증거조작 등 부조리가 있었다는 내용을 적었고, 법무부는 지난달 17일 진정서를 대검찰청에 이송했다. 현재 수감 중인 최씨는 KBS와의 접견에서 "검찰의 위증교사가 있었다"며 법무부 조사가 시작되면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
최씨는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한 전 대표와 수형 생활을 함께한 동료로, 2011년 3월 한 전 총리 1심 공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해 한 전 대표로부터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최씨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은 한 전 대표의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검찰 측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최씨 외에도 한 전 대표의 동료 수감자 김모씨가 한 전 총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 진술이 맞지만 법정에서 이를 뒤엎겠다'고 말하는 것을 한 전 대표에게 들었다고 증언했다.
한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한 바 있다. 최근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가 공개한 한 전 대표의 비망록에는 한 전 대표가 추가 기소의 두려움과 검찰의 회유 등으로 검찰에서 허위로 진술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동료 수감자 '죄수 H' 연이은 폭로…"검찰, 진술연습 시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동료 수감자 '죄수 H'가 뉴스타파를 통해 검찰의 '거짓 증언 종용' 의혹을 폭로했다. (사진=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한 전 대표의 또 다른 동료 수감자 역시 감찰의 '증언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최씨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지난 25일 뉴스타파가 공개한 '죄수 H'와의 인터뷰에서 죄수 H는 한 전 대표의 동료 수감자 최씨와 김씨와 함께 검찰에 불려가 거짓 증언을 종용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죄수 H는 최씨와 김씨와는 달리 검찰의 협조를 거부함에 따라 법정에서 실제 증인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죄수 H는 한 전 대표가 2010년 12월 20일 한 전 총리 재판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한 뒤 검찰이 한 전 대표의 동료 수감자 3명을 불러 허위로 증언하도록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위증했다'고 증언하도록 연습을 시켰다는 것이다.
죄수 H는 인터뷰를 통해 "검찰이 작성해놓은 대로 연습했고, 자신과 김씨, 최씨가 함께 모여 말을 다 같이 맞췄다"며 "검찰이 PC에다 써주는 대로 베꼈고 그것을 확대하고 재생산해서 만든 것들"이라고 털어놨다.
나아가 죄수 H는 검사실 출정을 거부하자 검사가 자신을 검사실로 불러 직접 삼겹살을 구워주며 회유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고발장에는 "2011년 4월 26일 조사에 응하자 1128호 엄희준 검사실에서 양념 삼겹살을 초벌구이한 고기와 부르스타에 불판까지 준비한 후 고기를 구워주고 담배도 제공하면서 'H씨는 증인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저의 추가 사건을 참고인 중지해준다고 회유한 사실도 있었다"고 적혀있다.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죄수 H는 한명숙 사건에 관계된 검사들과 증인 등 18명을 고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9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죄수 H가 최근 변호인을 통해 뉴스타파에 보낸 고발장에는 당시 한 전 총리를 수사했던 수사팀과 지휘라인 전원이 포함됐다.
죄수 H는 이들에게 직무유기·직권남용·모해위증·모해위증 교사·모해위증 방조·협박·강요 등 다수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즉각 반박…"한명숙 유죄 증거로 사용 안 돼"
◆…검찰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서 거짓 증언 종용 의혹이 불거지자 수감자들의 주장이 허위 사실이라며 즉각 반박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수감자를 이용해 거짓 증언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보도되자 "객관적 사실과 명백히 다른 허위 주장"이라며 즉각 반박했다. 한 전 총리 수사팀은 죄수 H 보도가 나가자 A4 5페이지에 달하는 반박자료를 냈다.
검찰은 "한 전 대표가 법정 진술을 번복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3명의 수감자를 불러 한 전 대표의 위증 경위를 조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중 2명만 법정 증인으로 신청해 진술을 들었고, 그마저도 한 전 총리 유죄 인정의 증거로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최씨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한 전 대표에게서 들은 부분을 증언한 것(전문진술)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어 한 전 총리의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어 "법정에서 증언한 수감자 중 한 명은 당시 이미 출소했고, 별도 혐의가 없어 별건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유도할 수 없었다"면서 "나머지 수감자에게도 특정 진술을 유도하거나 한 전 총리의 공소유지에 필요한 질의답변을 강요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한 전 대표의 동료 수감자들이 장기 수형자 신분이라는 점도 이들 주장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근거로 삼았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중형을 선고받고 장기간 복역 중인 두 사람이 최근 같은 시기에 같은 맥락으로 객관적 사실과 명백히 다른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명숙 사건 재조사 요구 목소리↑…수사팀 형사처벌·재심 가능성도
◆…국회에서 지난 20일 열린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사건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의 '증언 조작' 의혹이 추가로 폭로되면서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만약 검찰의 거짓 증언 종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한 전 총리 수사팀 검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지는 상황이다. 한 전 대표의 동료 수감자들은 2011년 3월경 법정에 출석해 증언했는데, 직권남용의 경우 7년의 공소 시효가 지났지만 모해위증교사죄는 공소 시효가 10년으로 내년 2월까지 기소할 수 있다.
나아가 법무부 진상조사가 이뤄져 재심 요건이 마련된다면 유죄로 확정된 한 전 총리 사건이 재심으로 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형사소송법은 기존 판결의 증거나 증언이 허위인 것이 확정판결을 통해 증명되거나, 수사에 관여한 검사가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씨가 검찰의 회유와 압박을 받아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재조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재심으로 가는 길이 열려있는 셈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한 전 총리 사건 재조사와 관련해 지난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고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 만큼 검찰 수사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 총리 사건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추 장관은 "공수처는 검찰이 제대로 사법 정의를 세우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것"이라며 "검찰의 권력 유착이나 제 식구 감싸기 등 과오가 있었던 사건들이 우선적인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