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일보

검색

글자 크기조절

글자 크기가 적당하신가요?

[철학과 행복상속]

재산과 지위 지킬만한 도덕성과 자질 갖추었는가?

조세일보 / 안광복 | 2020.06.10 08:20

상속받을 자의 자격㊦

조세일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해야 양반이다."

조선시대 양반(兩班)은 묘한 신분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신분은 법적으로 양인(良人)과 천민뿐이었다. 양반은 분명 지배계층이고 상속되는 신분이었다. 그렇지만 '핏줄의 힘'만으로만 정해지는 특권도 아니었다. 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분에 걸맞은 규범을 지켜야 했다.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에는 양반이 따라야 할 '생활 규범(매뉴얼)'이 잘 나와 있다.

"…절대로 비루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옛사람을 본받아 그 뜻을 존경해야 한다. 새벽 오경에 일어나 무릎을 꿇어 발꿈치는 궁둥이 위에 올려놓는다. <동래박의(東萊博議)>를 얼음 위에서 박이 굴러가듯 술술 외울 줄 알아야 한다. 배고파도 참고 추위도 견디며 가난하단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고문진보(古文眞寶)>나 <당시품휘(唐詩品彙)>를 깨알 같은 글씨로 한 줄에 100자씩 베껴서 쓴다. 손으로 돈을 만지지 않고 쌀값도 묻는 법이 없다.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않고, 맨상투 바람으로 먹지 않는다… 화로에 손을 쬐지 않고, 말할 때도 침을 튀지 않게 한다…"

부자가 양반의 지위를 돈으로 사려하자, 정선군수가 매매 증서(證書)에 적어놓은 양반이 지켜야 할 목록들이다. 군수는 문서에서 정해놓은 100가지 행동을 지키지 못할 때는 관청에서 혼찌검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실제로도 조선에서는 출신이 좋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도 양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나보다. 지역의 양반 모임인 향안(鄕案)에 행실이 바르지 못한 자는 초대받지 못했다. 마땅히 해야 할 행동들을 바르게 처신해야 제대로 '지배계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나를 도둑으로 만드실 작정이오?"

그러나 현실의 양반들은 다들 이렇듯 모범적으로 살아갔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부자가 양반이 지켜야 할 항목들을 듣고 기염하자, 군수는 양반의 '특권'도 일러준다.

"양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는 홍패(紅牌)는 두자도 못되는 크기지만, 여기에는 100가지 물건이 따라온다. …시골 선비로 궁하게 살아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웃집 소를 가져다 자기 밭을 갈고 마을 주민들을 시켜 내 밭을 김매게 해도 어느 누구도 욕하지 못한다. 잡아가 상투를 틀어매어 벌준대도 아무도 원망하지 못한다."

아마도 권력층이던 양반들의 실제 모습에 가까웠을 법한 설명이다. 하지만 군수의 말을 들은 부자는 언짢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만두시오. 저를 도둑놈으로 만드실 작정이오?"

돈과 권력을 쥐고 있다 해서 절로 권위가 생기고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걸맞은 생각과 처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세상이 인정할 것이다.

만약 군수가 말한대로 마음대로 행동하며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자신의 부귀영화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상속받는 자의 '자격'은 무엇이어야 할까?

영조는 손자인 정조를 낳은 혜경궁 홍씨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아이를 잘 키우되, 사치스러운 비단옷을 입히지 말고 무명옷을 입혀라. 늘 검소함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복을 지키는 도리다."

부유한데도 검약하게 사는 이에게 재산이 모이지 않을 리가 없다. 감정을 다스리며 주변 사람들을 예의로 대하는 사람이 인간관계가 나쁠 리 없다.

결국 부와 명예는 한 사람의 삶의 자세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존귀한 사람이 마땅히 할 법한 처신을 꾸준히 하면 존경을 받고, 자산가가 부(富)를 일굴만한 행동을 꾸준히 실천하면 결국 큰 재산이 모이게 된다.

그렇다면 상속받는 자의 '자격'은 무엇이어야 할까? 단지 내 핏줄이라는 이유로 가진 것을 물려준다면, 아무리 큰 재산도 얼마 못 가 먼지처럼 흩어져버릴 지도 모른다.

상속 받는 이는 자신이 받을 지위와 재산에 걸맞은 삶의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걸맞게 살아야 간다. 오래 가는 명문 가문에는 나름의 도덕과 규범이 살아 있다.

상속할 몫과 세금을 따지기에 앞서, 상속을 주고받는 당사자들이 재산과 지위를 지킬만한 도덕성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볼 일이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조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화끈한 토픽·쏠솔한 정보 조세일보 페이스북 초대합니다.

관련기사

Copyrightⓒ 2001~2020 Joseilbo.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