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시]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후 여론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13일 서울시가 운영 중인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별세' 온라인 분향소의 헌화가 100만을 넘어선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의 동의자도 56만을 넘어섰다.
논란이 커지자 박 시장의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박홍근 의원은 “소탈하고 검소했던 고인의 평소 삶과 뜻에 따라 유족도 사흘간의 장례를 검토했으나 고인의 시신이 밤늦게 발견돼 하루가 이미 지나갔다는 점과 해외 체류 중인 친가족의 귀국에 시일이 소요돼 부득이 입관 시기를 고려해 장례 일정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식으로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모시고자 하는 심정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청원게시글에는 “박원순씨가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떳떳한 죽음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언론에서 국민이 지켜봐야하나요? 대체 국민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요.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통합당, 서울특별시장은 민주당의 공식 가해
조문 일정을 잠정 취소한 미래통합당의 김은혜 대변인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서울특별시장(葬)은 피해자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가해”라며 "고인을 잃은 충격을 이해하고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면서도 "진정으로 고인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민주당은 다시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말에 한 번이라도 더 귀 기울이고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며 "이것이 여성 인권에 앞장서 온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길일 것임을 민주당은 한 번 더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조문 여부에 대해 "비공개 가족장일 때 (당에서) 조문 입장을 밝힌 거였는데 상상이상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더해지는 현실을 보면 조문 가겠다고 표현하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조문 하지 않을 것 vs 지금은 애도할 시간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지난 10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조문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피해자의 편에 서겠다”고 밝혔고 이어 장혜영 의원도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문제를 제기했지만 수사를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며 "이 이야기의 끝이 '공소권 없음'과 서울특별시의 이름으로 치르는 전례 없는 장례식이 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은 “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하나”라며 “시비를 따질 때가 있고 측은지심으로 슬퍼할 때가 있는 법이다”라며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석현 전 의원도 SNS를 통해 “얼마나 괴로웠으면 죽음을 택했을까”라며 “지인이 죽으면 조문이 도리. 조문도 하지 않겠다는 정당이 추구하는 세상은 얼마나 각박한 세상일까”라고 덧붙였다.
시민을 위한 인권운동가였던 박시장…
빈소를 찾은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취재진에게 "잘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에 그렇게 (한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며 "인간이 다 비슷비슷한 건데 너무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면 다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고인이 된 박 시장은 여성인권변호사로도 유명했다.
특히 1992년 우리나라 최초로 제기된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아 6년의 법정 공방 끝에 승소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발전기본법(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성희롱 개념이 법제화됐고 이를 발판으로 '직장 내 성희롱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끌어냈다.
1994년에는 '참여연대'를 설립해 국회의원 낙선운동, 소액주주운동, 권리찾기운동 등 시민을 위해 앞장섰고 1998년에는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고인에 대해 "서울시장 이전에 오랜 기간 시민운동을 개척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켰던 활동가로 참여연대 운동의 토대를 굳건히 세우고 다양한 시민운동 영역에서 한국사회 개혁과 혁신을 위해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가세연, 장례식 금지 처분 vs 법원, 각하 결정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측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 형식으로 치르는 걸 막아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각하된 가운데 13일 다시 장례식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가세연 측은 '성범죄 박원순 장례식 금지 가처분 재신청'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장례식 금지 가처분을 재신청했다"고 밝혔다.
영상에서 가세연의 강용석 변호사는 “서울특별시장 자체가 절차나 법률상 근거가 없고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다”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시에서 집합금지명령을 내리고 교회 등 모임을 막았는데 서울광장 앞에 1만 명을 모아놓고 분향하는 것 자체가 자기들이 발령한 집합금지명령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 시장이) 2차 피해도 유발하고 성범죄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에게 서울특별시에서 10억 원을 들여서 5일장을 치르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덧붙였다.
앞서 11일 강 변호사는 “서울시가 법적 근거 없이 박 시장에 대해 서울특별시장으로 장례를 진행하는 것은 절차에 문제가 있고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집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각하 결정을 내리며 “지방자치법 상 감사청구를 한 주민만이 주민소송을 제기하도록 규정하는데 이번 가처분을 신청한 시민들이 이에 앞서 감사청구를 한 바 없음으로 신청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며 “뒤늦게 신청인 측에서 감사청구를 하더라도 이 사건은 보전의 필요성을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며 채권자(신청인)가 제출한 모든 자료를 종합하더라도 이 사건 보전의 필요성이 소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피해자 A 씨 입장 전문과 2차 가해행위에 대한 추가 고소장 제출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A 씨가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날 A 씨는 참석하지 않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이 참석해 A 씨가 직접 작성한 입장문을 대독했다.
입장문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미련했고 너무 후회스럽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처음 그 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다”며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고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라며 “안전한 법정에서 그 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고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라며 “아직도 믿고 싶지 않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끝으로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하는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며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힘들어했다.
김 변호사는 “박 시장이 A 씨를 상대로 4년 동안 성추행했으며 음란한 문자 발송 등 가해행동이 갈수록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이) 피해자에게 즐겁게 일하기 위해 둘이 셀카를 찍자며 사진을 촬영하면서 신체적인 밀착을 했고 피해자의 무릎에 나있는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입술을 접촉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피해자가 사직한 것으로 나오지만 피해발생 당시 뿐 만 아니라 현재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다”면서 “공무원으로 임용돼 서울시청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어느 날 서울시청으로부터 연락받고 서울시장실에서 4년여 근무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비서직으로 지원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하며 “범행이 발생한 시기는 비서직 수행 4년의 기간이며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이후에도 지속됐다”설명했다.
또한 “인터넷에서 고소장이라며 떠돌아다니는 그 문건은 저희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문건이 아니며 내용에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서울지방경찰청에 해당 문건을 유포한 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해 처벌해 달라고 고소한 상태”라고 밝혔다.
아래 A 씨의 입장 전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다. 맞습니다. 처음 그 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 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하는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