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기업인 제일모직의 주식가치를 높여 그룹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의도가 인정되어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분식회계 혐의를 받게 됐다. 이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마저 회계부정에 연루되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한국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겠다며 글로벌스탠다드인 IFRS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했지만 회계부정은 그치지 않고 있다. 기존의 한국기업회계기준에 비해 원칙중심의 애매한 회계기준을 가진 IFRS의 경우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부실회계의 유혹은 줄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례를 보면 기존 한국 기업회계기준에서는 자회사나 종속법인의 주식가치는 취득가격을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어있어 불합리한 점은 있었으나 회계부정의 여지는 적었다. 그러나 IFRS는 공정가치로 평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 점을 악용해 종속법인의 주식가치를 미래수익성을 감안한 공정가치로 평가하는 회계기준을 적용할 여지가 있어 회계부정이 이뤄지게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기업인 제일모직의 주식가치를 높여 그룹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의도가 인정되어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분식회계 혐의를 받게 됐다. 이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마저 회계부정에 연루되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게 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IFRS는 국제적인 재무제표작성 기준을 민간의 합의로 정함에 따라 나라별 기업환경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아 적용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런 점을 감안해 자국의 기업회계기준과 함께 적용하고 있다.
종전의 기업회계기준과 IFRS의 또 다른 큰 차이점은 영업권이나 무형자산의 평가에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M&A로 인해 발생한 영업권에 대하여 기존 기업회계기준에서는 일정기간동안 정액 상각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IFRS에서는 미래의 수익가치를 감안하여 매 기말 손상차손으로 비용을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손상차손을 별도로 산정하도록 함에 따라 미래가치를 임의로 해석하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4차산업 기술시대에 늘어나는 거액의 연구개발비에 대한 무형자산 인식과 손상차손의 평가는 실무적으로 회계처리에 어려움이 많아 부실회계를 키울 가능성이 많다고 회계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일반 기업회계 실무에서 과거에는 기준에 정한대로 회계처리하면 외부감사에서 별 이견이 없었다. 반면 IFRS에서는 회계담당자의 판단에 더해 외부 전문가의 IFRS관련 자문이 필요함에 따라 회계처리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재무제표의 주석사항에 IFRS적용기준에 맞춰 과거보다 많은 분량의 설명을 부기하여 공시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전문가들은 과거 재무제표의 주석사항에 있던 사업의 특수성이나 업종간의 비교자료는 상대적으로 적어져 오히려 공시내용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투자전문가들의 평가이다. 다시 말해 주석사항의 부피만 컸지 투자에 참고할 만한 자료는 더욱 부실해진 셈이다.
대부분 기업의 외부이해관계자들은 재무제표보다 주석사항에서 많은 정보를 취득하여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즉, 주석사항 등 공시정보는 많은데 과거보다 해석상 모호한 정보제공으로 감사보고서에 대한 신뢰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 한국기업회계기준의 경우 역사적 취득원가에 의한 재무제표나 회계정보의 제공으로 기업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적합성 상실'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공정가치 우선의 원칙기준 IFRS 적용은 해석상 애매함과 모호성으로 이 또한 재무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저해하는 꼴이 된 셈이다.
이는 회계처리비용과 회계감사비용이 증대하는 데 비해 불성실 기업이 상대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회계투명성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회계감독 당국과 회계전문가들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합리적인 회계처리기준이나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업분석가들의 의견이다.
미국 엔론 회계부정엔 징역 30년, 대우중공업 분식회계엔 징역 9년
과거 미국 사법당국은 엔론 월드컴의 분식회계 사건에 대해 60세가 넘은 고령의 책임자에게 징역 30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 분식회계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범죄라며 단호함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대우중공업의 거액 분식회계 사건으로 관련자에게 최고 징역 9년을 선고하였다. 관련 분식회계를 묵인한 회계법인과 회계사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처분을 하였다.
한국의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은 신라젠의 도덕불감증에 잘 나타나고 있다. 신라젠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면서 BW의 자본확충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대주주가 무자본으로 BW를 발행하고 신주인수권을 행사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이러한 내용은 주석사항에 자세히 공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약개발 실패에 관한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대주주 등이 주식시장에서 대량의 주식을 매도하여 이익을 챙기고 일반 소액투자자들이 덤터기를 쓰게 하는 악덕 기업인의 행태를 보였다. 이 회사 문은상 대표는 850여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사모펀드의 경우 자본시장법의 테두리 안이라는 명분으로 투자자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공시하지 않아 라임사태 등 금융사기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전문가들은 분식회계나 자본시장의 반시장적인 행위에 대하여 철퇴를 가하지 않으면 회계투명성 확보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데에 학계나 실무계의 통일된 의견이다. 대형로펌의 A 변호사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처벌수위를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한다”며 입법부의 역할을 기대했다.
회계감독기구 독립해 회계투명성 높여야
금융위원회 산하의 증권선물위원회는 민간기구인 회계기준원이나 회계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여 분식회계나 부실회계 등을 판별하고 있다.
재계의 일각에서는 증권선물위원들이 회계기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려운 IFRS의 원칙에 대하여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증권선물위원회의 구성에서 회계전문가는 1~2명이 참여하고 있어 회계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선위 업무의 특성상 회계전문가들로만 모두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자본시장 감시와 회계감독 업무의 2개의 큰 업무를 축으로 하고 있어 회계감독 업무에 특화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 회계법인의 심리실장 L씨는 “증선위 회의에 가끔 참고인으로 참석해 보면 일부 위원의 비전문성으로 회의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금융시장 감시기능과 회계감독업무는 분리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책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금융감독위원회나 증권선물위원회에 비해 금융감독원은 회계감독국을 설치하여 기업의 회계처리 적정성과 회계감사인의 감사업무의 적정성을 감독하고 있다. 기업의 외부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을 감독하고 있는 셈이다.
회계실무자들은 IFRS에 대한 유권해석은 민간단체인 회계기준원의 해석을 참고로 할 따름이고 그 옳고 그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할 수 없어 외부감사인의 자문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감사인과 기업회계실무자 사이의 결탁으로 부실회계가 이뤄질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
회계학계의 K교수는 “기업의 가치평가의 적합성을 높이고 회계의 글로벌 스텐다드를 위해서 IFRS도입은 적절한 것이다”라며 “그러나 IFRS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오히려 기업회계에 혼선을 줄 수 있어 기준의 제정과 운영, 감사와 감독에 대한 체계적인 라인업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민간의 회계기준 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전문성을 갖춘 회계감독기관이 적절한 유권해석과 엄격한 정보공개를 유도한다면 회계투명성과 회계의 적합성 회복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자문했다.
“현재의 회계감독 체계로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와 업계의 실무자와 전문가, 기업분석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별도의 회계감독기구를 신설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회계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증권선물위원회의 업무 중 회계감독업무와 금융감독원의 회계감독국을 합쳐 IFRS기반의 회계기준의 제정, 유권해석, 회계감사 감독, 지정감사법인의 선정 등 회계에 관련된 독립적이고 전문화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번 코로나19대응에서 마스크는 식약처에 담당하고 역학조사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방역지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서로 전문영역을 나누어 대처하여 큰 효과를 보았듯이 증권선물위원회의 영역을 나누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회계와 금융전문가들 “21대 국회에서는 좀 더 밀도 있는 논의를 거쳐 모든 기업과 단체에 필요한 회계기준과 감독체계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며 “분식회계나 부실회계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회계감독청을 별도로 설립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높여야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