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함께, 작은 정부와 재정 책임 불가능해
재정지출로, 경제붕괴 막아 기업과 노동자 보호해야 해
예산 삭감시, 보건의료 서비스와 저임금 노동자 큰 타격 받아
OECD 국가들, 부채비율 GDP의 20~30%로 높일 예정
높은 국가부채와 세금은 확정적...누가 더 부담하냐의 문제
◆…(사진 연합뉴스)
통념은 당대 널리 인정된 상식을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경제 통념에선 낮은 세금과 적은 재정지출이 기업활동을 장려하고 국민의 부담을 줄여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팬데믹이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일으켜 각 나라 정부는 기업파산과 노동자 실직을 막기 위해 증세와 막대한 재정지출을 꾀하고 있다.
| 작은 정부와 재정 책임 |
과거 작은 정부로 대표되는 경제 통념이 팬데믹 이전 세계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마틴 샌드부는 지난 4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팬데믹이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한 경제 통념을 무덤으로 인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샌드부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1980년대 국가부채 증가로 '재정 책임'이라는 반향이 일어났다며 이로 인해 정책 방향이 재정적자와 부채를 온건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대규모 공공 지출을 위한 세금 인상도 멈추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관점이 팬데믹 이전부터 지배력을 잃기 시작했다며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여파로 전문가들이 과거보다 부채에 더 관대해지고 공공 지출 감소에 의한 피해를 더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팬데믹과 함께 재정 책임 불가능해져 |
샌드부에 따르면, 앞으로 재정 책임이라는 관점이 더는 유지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3월부터 각국 정부는 경제 붕괴를 막아 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이 결과, 국가부채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OECD에 따르면, 회원국 대다수가 GDP의 20~30% 수준으로 부채를 늘릴 예정이다.
샌드부는 팬데믹이 전 세계 정부에 이런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바라봤다. 이어 정부들이 부채를 온건한 수준으로 낮추기보단 무기한 부담하려 할 수 있으며 그 대신, 재정균형과 부채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계속 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재정 책임이 더는 선택사항이 아니며, 재정 책임을 위해 부채와 세금 둘 중에 무엇을 올릴지 선택할 수 있더라도 이는 최상의 상황에서만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우리는 높은 국가부채와 세금을 유지한 채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할 수 있다며 경제가 팬데믹 이전 상황으로 회복하지 못하거나 감염 파동으로 다시 봉쇄하면 이는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샌드부는 정부가 세입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겠지만 이는 부채비율을 낮추려는 게 아니라 더는 늘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채무가 많던 일본의 증세 사례를 들며 다른 선진국도 이를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OECD에 따르면, 2000년대 일본은 GDP 가운데 세금 비율이 25.8%로 OECD 평균보다 8% 낮았으나 팬데믹 전까지 31.4%로 끌어올려 OECD 평균의 3% 이내로 들어왔다.
지난 6월, 일본은 GDP의 40%에 이르는 2,60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미국도 GDP의 14%에 이르는 3,40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집행했고 이달 1,200조 원의 추가 부양책을 두고 의회에서 협상 중이다. 통과 시 GDP의 22%에 이른다.
| 세금과 국가부채 증가 확정적 |
샌드부는 정치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적극적인 정책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우며, 재정 책임이라는 통념이 누구에게 가장 이득이 됐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자본을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자산가에게 적합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공공 차입이 민간 부분의 자금조달비용을 비싸게 만들어 민간 투자를 밀어내고, 높은 세금이 기업의 수익을 낮추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며 각국 정부가 국가부채를 줄이려고 노력하던 모습에서 오래된 통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샌드부는 팬데믹 이후, 공공예산 삭감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팬데믹 상황에 예산을 삭감하면 전염병을 막을 보건의료 서비스와 생계가 막막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큰 타격이 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예산 부족분은 세금 인상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얼마나 세금을 올리고 누가 더 부담할 것이냐를 두고 치열한 싸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마틴 샌드부는 파이낸셜타임스 유럽경제 분석가이며 하버드, 콜롬비아, 와튼 스쿨에서 연구원으로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