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1심 실형→2심 무죄
재판부 "위법수집증거 탓에 이 전 의장 공모 혐의 인정 못해"
"공모 가담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는 아니다" 판시
◆…'노조와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0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 전 의장을 제외한 삼성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들은 1심의 유죄 판결이 유지됐지만 일부 피고인들은 형량이 감형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배준혁·표현덕·김규동)는 1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전자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압수수색이 상당수 위법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CFO 보고 문건'과 관련한 자료가 위법수집증거가 되는 바람에 이 전 의장의 공모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삼성전자를 압수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PC 하드디스크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것이다.
다만 "만약 문건의 증거 능력이 인정되면 결론을 달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 의장에게)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하지만 결코 이 의장에게 공모 가담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이른바 '다스' 사건에 대해 1차 압수수색을 진행한 과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검찰 수사관은 2018년 2월 다스 사건에 대한 1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 사무실'로 이동했다가 인사팀 직원의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인사팀 직원이 자신의 차량에 은닉한 인사팀 PC 하드디스크를 확보했지만 해당 직원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검찰은 압수한 하드디스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한 자료를 발견하고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2차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관련 파일을 압수했다.
이와 관련해 1심은 검찰의 1차 압수수색이 적법한 장소에서 이뤄졌고, 영장 제시가 없었다는 절차 위반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고 예외적으로 압수한 자료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반면 2심은 영장에 기재된 수색·검증장소를 엄격하게 해석해 하드디스크가 있던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 사무실 등은 영장에 기재된 수색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압수한 하드디스크를 보관하고 있던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 사무실은 영장에 기재된 수색·검증장소인 '해외지역총괄사업부, 경영지원총괄사업부, 법무실, 전산관리실'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위법은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관련 1심 선고가 내려진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 등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날 재판부는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과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에게는 원심보다 2개월 감형된 징역 1년4개월과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는 2심에서 2개월이 줄어든 1년4개월을 선고받았고,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1심과 같은 징역 1년이 선고됐다.. 원기찬 삼성라이온즈 대표,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는 형량 또는 집행유예 기간이 조금씩 줄었지만 1심과 같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 6월 열린 2심 결심공판에서 이 전 의장과 강 부사장, 최 전 전무, 목 전무에게 각각 징역 4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에게는 징역 5년을, 다른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 등에게는 가담 정도에 따라 징역 10개월~3년을 각각 구형했다. 양벌규정으로 함께 기소된 삼성전자에는 벌금 2000만원을, 삼성전자서비스에는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또 검찰은 이들에게 뇌물을 받고 도운 전직 경찰 김씨에 대해서는 피고인 중 가장 무거운 징역 7년에 벌금 1억5000만원을 구형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전·현직 임직원들은 삼성전자 미래전략실(미전실) 인사지원팀 주도로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를 와해하려는 이른바 '그린화 전략'을 세워 이를 실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결과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이 시도되던 2013년 6월 종합상황실까지 마련해 신속대응팀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전 의장 등이 협력업체 폐업과 조합원 재취업 방해하고 차별대우 및 심성관리를 빙자한 개별 면담 등으로 노조탈퇴를 종용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노무컨설팅 업체와 정보경찰을 이용하고, 노조 탄압에 반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염호석씨의 부친을 불법행위에 동원한 혐의도 받는다.
이러한 '그린화 전략'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피고인만 총 32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 임원과 이들의 지시를 받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사장들, 한국경총 직원, 정보국 경찰 등 다수의 관련자가 사건에 연루됐다.
1심은 이들의 혐의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이 전 의장과 강 부사장, 박 전 대표 등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목 전무와 최 전 전무 등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고위 임원 등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삼성전자 법인과 일부 직원, 하청업체 대표들은 무죄가 선고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