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법관 인신공격성 비난·신상털기 우려돼"
"법관 독립과 사법부 독립성 침해" 지적
청와대 국민청원·국무총리 등 정치권 비판 겨냥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가 31일 성명서를 내고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과 신상털기를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가 광복절인 지난 15일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과 신상털기를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대한변협은 31일 성명서를 통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변협은 "지난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법관을 해임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30만명을 넘어섰다"며 "정치권에서도 법관의 허가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고, 해당 법관에 대한 공격성 발언으로 인해 사법부의 독립성 침해 우려가 제기된다"고 말했다.
먼저 변협은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법원의 판단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변협은 "법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광화문 집회 허가 여부를 보다 신중하게 검토했어야 한다"면서 "감염병 확산 위기가 현실이 된 만큼 집회의 자유만큼이나 공공의 건강과 안전, 국민의 생명권에 대한 침해 가능성을 충분히 살펴보고 허가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변협은 "그러나 사법권의 독립, 특히 법관의 독립은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근간"이라며 "법원의 집회 허가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지속된다면 법관으로서는 소신을 지키기 어렵다. 여론에 영합한 판단을 내리게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변협은 "대한변협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독립은 엄정하게 보장돼야 하므로, 법관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과 신상털기를 즉시 멈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4·15 부정선거 국민투쟁본부(국투본)'가 서울시의 옥외집회 금지 통고처분에 대해 신청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이날 변협의 성명은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법관에 대한 해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정세균 국무총리의 발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4·15 부정선거 국민투쟁본부(국투본)'가 서울시의 옥외집회 금지 통고처분에 대해 신청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당시 재판부는 "집회 자체의 개최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이 사건 처분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필요 최소범위 내에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위법하다고 볼 소지가 작지 않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울 중심부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열흘 넘게 세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전국적인 확산세가 거세지자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8·15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 청원'이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31일 오후4시 기준 33만명이 동의한 상태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감염병 확산 시 집회와 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필요하면 법원이 유관기관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도록 하는 이른바 '박형순 금지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난 15일 "원래 신고한 내용과 다르게 대규모 집회가 진행될 거라는 정도의 판단은 웬만한 사람이면 할 수 있을 텐데 놓친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서울행정법원을 비판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또한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보수단체의 대규모 집회를 허용한 사법부의 결정을 지적했다. 추 장관은 "법 집행자가 법이 지향하는 공동선의 방향 감각을 놓치고 길을 잃을 때 시민과 사회를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뜨리는지 중대한 각성이 필요한 때"라고 꼬집었다.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시위를 허가해 준 판사만 최종처벌 받아야 하나"라는 반대 의견도 올라왔다. 작성자는 "(법원이) 특수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100명만이 참여한다고 약속해 시위가 허가돼 진행됐던 것"이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고 무질서한 시위로 우리를 더 아프게 만든 건 시위를 직접한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 작성자는 "질서 있는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거짓된 약속을 한 집단에 대한 제대로 된 법적 조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