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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오사카는 어떻게 '상인의 도시'가 되었을까?㊤

조세일보 | 안광복 2020.10.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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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상인에게 배우는 가업 상속의 비결
"업(業)에 대한 자부심부터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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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상인의 도시'로 유명하다. 100년을 훌쩍 넘는 노포(老鋪, 시니세)들이 즐비할뿐더러, 마쓰이(三井) 재벌, 히야(樋屋)제약 등 400년 가까이 된 기업들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때문에 오사카 상인들은 '가업 승계'를 설계하는 사람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곤 한다.

오사카가 상업의 중심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아가, 여러 대(代)에 걸쳐 가업을 성공적으로 상속하는 비법은 무엇일까?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6~1598)은 바늘장수 출신이었다. 때문에 상업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전쟁도 돈 줄이 없으면 하지 못한다. 나아가 장사꾼이 없다면 필요한 물자도 구하기 어렵다. 상업은 이 둘을 해결할 열쇠였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중심지를 오사카로 삼고 큰 성을 지었다. 그리고 성 부근에 천하에 유명한 상인들을 불러 모아 상가를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상인들은 오사카의 선착장인 센바(船場)에 뿌리를 내렸다.

오사카는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전국의 물자는 오사카로 모여들었다. 나아가, 지방을 다스리는 다이묘들이 교대로 오사카에 있는 막부 근처에 와서 근무를 해야 했다. 이른바 참근교대제다.

때마다 큰 규모로 사람들이 이동해야 했기에, 오사카에는 늘 엄청난 상품 수요가 있었다. 오사카 상권은 나날이 커 나갔다. 이 가운데서 오사카 상인 특유의 정신도 피어났다.

"사무라이에게 무도(武道)가 있다면, 상인에게는 상도(商道)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오래된 상권은 많다. 서울 남대문 시장만 해도 역사는 6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오사카처럼 수 백 년을 이어가는 가게는 거의 없다. 왜 그럴까?

답은 오사카 상인들의 업(業)에 대한 자부심에 있다.

일본도 조선처럼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도가 굳어져 있었다. 상인은 천한 신분이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먹고 살 형편만 되면 족보를 사서라도 양반이 되려했다. 반면, 오사카 상인들은 자신의 업으로 사무라이(士 )들을 눌러버렸다.

"사무라이는 자신이 다스리는 땅에서 의식주가 나오고, 상인은 벌이에서 의식주가 나온다." 오사카 출신의 상인 철학자,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의 말이다. 사무라이가 하는 일이나 상인의 생업이나 본질에서는 다를 게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장사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묻어있다.

나아가, 오사카 상인들은 "사무라이에게 무도(武道)가 있다면, 상인에게는 상도(商道)가 있다"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천하가 두 쪽 나도 노렌(布簾)을 지킨다."는 말은 일본에서 속담처럼 쓰인다.

노렌은 상가 입구에 거는 무명천이다. 무사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가문의 표시인 가몬(家紋)을 앞세운다. 마찬가지로, 상인들은 자기 가게의 상징인 노렌을 사무라이의 깃발처럼 내건다.

노렌에는 업계 최고의 품질이라는 자존심, 절대 속이지 않는다는 신용에 대한 과시, 언제나 고객을 마음으로 모신다는 정성 등등이 담겨 있다. 천하가 두 쪽 나도 노렌을 지키겠다는 결기는 여기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이러한 자부심으로 오사카 상인들은 사무라이들을 사실상 자신의 발아래 두었다.

"오사카 상인이 화나면 천하제후도 벌벌 떤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서열은 사실 허울뿐이었다. 사실 상인은 사무라이들 머리 위에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쉬운 처지에 있는 자가 돈 가진 이에게 굽실거리지 않을 방법은 없다.

사무라이들은 늘 돈이 궁했다. 체면을 차리느라 돈 들어갈 곳도 많았고, 사치도 심했던 탓이다.

반면, 장사로 다져진 오사카 상인들은 실리(實利)를 중요하게 여겼다. 절약하며 열심히 일하는 그들에게 돈은 늘 쌓여갔다. 사무라이들은 상인들에게 돈을 빌리며 절절 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상인들이 자신의 업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일을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수 백 년 가업을 이어가는 오사카 상인들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하편에 계속)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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