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초과시 일반경쟁' 규정 피하려 '4천950만원'으로 쪼개 3일에 3대 수의계약도
법원 내 회계감사 기구 없어…업계에선 "법원 직원 접대해야 계약 따내" 주장도
법원이 예산집행 과정에서 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공계약 수의계약(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
감사원은 이미 2년 전 법원에 대한 재무감사에서 '쪼개기 수의계약' 문제를 지적한 바 있지만,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고,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감사원은 각급 법원의 2017년도 예산편성과 회계집행의 적정성에 대한 감사를 이듬해 벌여 부산지법 서부지원이 보안을 위해 청사 내 주요 출입구에 설치하는 엑스레이 검색기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규를 지키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2017년 7월 5일부터 사흘간 엑스레이 검색기를 매일 1대씩 모두 3대를 업체 1곳으로부터 사들였다.
정부 입찰과 관련한 법인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은 천재지변, 작전상의 병력이동, 긴급한 행사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공공기관이 5천만 원을 초과하는 물품을 구매할 때는 일반경쟁 입찰을 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원은 그러나 특정 업체가 제출한 견적서 가격(1대당 4천950만 원)을 토대로 검색기를 사흘간 매일 1대씩 사들이는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이 업체에 1억4천850만 원을 지급했다.
3대를 한 번에 계약할 경우 5천만 원이 넘어 관련법을 어기게 돼 이를 피하고자 분할 계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원은 "청사 이전을 앞둔 시기였는데 공사 지연 등에 따라 검색기를 구매하지 못하다가 이전일이 갑자기 확정돼 긴급히 구매하기 위해 수의계약을 체결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은 "신청사에 필요한 다른 물품은 지속해서 구매하면서 보안에 중요한 검색기 구매 절차는 추진하지 않다가 청사 이적이 임박한 뒤에야 일반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체결했다"며 법원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쟁입찰로 구매가 가능한 물품을 분할해(쪼개서) 수의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 조치했다.
◆…엑스레이 검색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듬해인 2018년도 감사에서는 전국 12개 법원이 또 다른 지적을 받았다.
엑스레이 검색기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방사선 발생장치로 규정돼 이를 생산·판매·사용하려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특허법원, 울산지법, 전주지법, 광주가정법원, 대구가정법원 등 12개 법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지 않은 3개 업체로부터 각각 검색기를 사들였다.
이렇게 설치된 안전과 성능에 대한 검증을 받지 않은 검색기는 모두 17대로 향후 안전·성능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검색기를 해체해야 할 수 있고 이 경우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법원의 예산편성과 회계집행 과정이 이처럼 허술한 이유는 감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자체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감사원도 지난해 10월 "법원은 조직·인력·예산 규모가 방대한 기관인데도 자체 회계감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기구와 관련 규정이 없으며 법원 전체 계약금액 중 60％ 이상을 집행하는 법원행정처에 대해서도 회계감사를 실시하지 않아 예산회계 관련 문제점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예산 담당 직원과 업체 간의 부적절한 유착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 지역의 한 가구업체 관계자는 "한 법원이 신청사로 이전할 때 가구를 납품하고자 해당 법원의 예산 담당 직원에게 접대한 사실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납품에 실패했는데 다른 업체가 더 세게 로비를 해서 우리 업체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사원 이미지 [감사원 제공]
다른 가구업체 관계자도 "가구는 고가일수록,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일수록 가격에 거품이 심하게 낀 경우가 많다"며 디자인 등에 매겨지는 가치는 전문가라도 정확히 책정이 어렵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인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가구는 가격과 비교해 품질이 낮기 때문에 입찰을 성사시키기 위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A지법 관계자는 "납품업체를 선정할 때 관련 직원이 접대나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